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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8일 월요일 ~ 8월 14일 일요일


업무

이번 주부터 초급 회화 수업을 새롭게 시작했다. 저녁 8시 수업이라서 7시 40분쯤 집을 나와 천천히 걸어 학교에 가는데, 왠지 예전에 집 근처 언어 과외하러 갈 때의 기분이 난다. 지난 주에 말했듯 Korean made easy for beginners라는 책을 교재로 삼아 기초부터 다시 복습을 하고 있다. 첫 시간에는 1과 '안녕하세요? 저는 폴이에요.'와 2과 '아니요, 회사원이에요.'를 공부했는데 역시 쉬워서인지 한 시간 30분만에 뚝딱 끝나버렸다. 두 번째 시간에는 학생들이 1, 2과의 대화문 외워온 것을 확인한 다음 내가 따로 마련해 간 자료를 가지고 이름, 직업, 국적 묻고 답하는 데 30분 정도 걸렸고, 나머지 시간은 3과 '이게 뭐예요?' 진도를 나갔다. 학생이 세 명밖에 되지 않아 꼼꼼히 발음 확인하고, 억양도 체크해 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우리 학생들은 이상하게 평서문도 의문문 억양으로 읽는다. '저는 은파에요.'를 '저는 은파에요?'라고 말하는 셈. 이거 고치는 것에 요즘 힘을 쏟고 있다.)

사실 내용 자체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보니 이해 시키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데, 회화 연습을 시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학생들이 말할 내용을 생각한 다음 입을 열게 하려면 그만큼 교사의 준비가 필요하다. 최대한 영어의 개입 없이 한국어로 바로 생각하고 말하게 만들고 싶은데 아직 거기까지는 못 갔다. 이번 회화 수업을 하면서 배우고 느끼는 점들은 새로 들어올 1학년 수업(아마도 회화 위주로 전개될)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이런 자료를 이용해서 이름, 국적, 직업 묻고 답하기 연습을 했다


수업을 하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자유'가 있다는 점이다. 내가 가르치고 싶은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수업 준비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한결 의욕을 갖게 된다. 만약 누가 나에게 이런 거 저런 거 하라고 시키는 상황이라면 과연 내가 지금같은 모습일 수 있을까? 아, 나에게 주어진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끼고 있다.


생활

이번 주에는 거의 매일 걷기 운동을 했다. 세 번 정도는 새벽 5시 반에 나일 강변을 걸었고, 나머지 세 번은 학교까지 걸어갔다 오는 식으로 저녁에 운동을 했다. 친구의 블로그에서 '어떤 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데는 66일이(나...) 걸린다고 해서 작심삼일 스물 두 번, 66일 동안 운동을 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 나도 운동을 하는 좋은 습관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일단 지금은 걷는 것밖에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여행 다녀와서 피트니스 센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 생각.

화요일에는 다음 주 여행비의 일부를 지불하러 여행사에 다녀왔다. 드디어! 다음 주면 나도 룩소르를 떠나 홍해 바다를 접하고 있는 후루가다로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는 것. 스쿠버 다이빙은 한국에서도 해 보고 싶었던 거라(여름마다 학교에 강좌 비슷한 것이 개설되곤 했는데 가격대가 좀 높았던 걸로 기억함) 이번 기회에 도전하기로 했다. 다음 주 금요일에 혼자 룩소르를 떠나 후루가다에 도착, 토요일부터 닷새 동안 다이빙 교육을 받고 중간에 합류한 일행과 함께 룩소르로 돌아올 예정이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여행사 사장이라서 후루가다의 좋은 숙소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아진 상황.

목요일에는 사모님 댁에 초대를 받아 점심으로 떡볶이를 먹었다. 한국에서야 '떡볶이, 그까이 거...'겠지만 여기서는 카이로에서만 공수할 수 있는 떡이 들어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떡볶이는 정말 귀한 음식이 된다. 그것도 고추장/간장 두 종류의 떡볶이를 준비해 주셔서 맛나게 먹고, 요즘 한국어가 엄청 늘고 있는 예쁜 꼬맹이 저스틴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조금만 있으면 두 살 되는 저스틴이 우리 학생들보다 한국어를 잘 하게 것 같아서 좀 슬픈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는 룻기를 읽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온 룻도 대단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닌 보아즈라는 사람에 더 눈길이 갔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받아들일 줄 알고, 편견이나 선입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관대하게 행동하며, 그 와중에 충동에 사로잡혀 행동하기 보다는 정해진 절차를 충실히 지키는 모습. 이런 사람의 도움이 있기에 결국은 '룻기'가 있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아, 이 날은 사모님이 짜장 떡볶이를 만들어 주셨다. 이틀 연속 떡볶이를 먹는 행운이라니 :)

토요일에는 영어교실에 가서 보조교사 역할을 했는데, 어째 나라는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명확한 역할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리고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나서는 것을 많이 꺼리는 타입이다. 그래서 이 날도 상당히 소극적인 모습으로 교실에 앉아 있었는데, 같이 이 자리에 있었던 H 오빠를 보면서 내가 좀 바뀔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는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스스로 내 역할을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스트레스 받지 말자. 뭐 이렇게 말한다고 짠하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서도...

일요일에는 늘 그렇듯 성당과 교회를 갔다가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늘 가던 스낵타임과 맥도날드를 벗어나서 좀 멀리 떨어진 피자헛에 갔었는데, 내가 고른 메뉴는 토마토+모짜렐라 샌드위치였다. 빵이 흰 빵이라 좀 아쉬웠지만 (맛있는 호밀빵이 먹고 싶어라..)아삭아삭한 야채가 듬뿍 들어 있어 내 선택에 만족했다.

피자헛의 토마토+모짜렐라 샌드위치

야채가 듬뿍 들어있어서 일단 합격점


이번 주에는 부시맨 브레드를 만들어봤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통밀가루가 너무 거친 것이어서 그런지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속살이 폭신폭신한 빵이 아니라 상당히 쫀쫀한 빵이 되어 버렸는데, 어차피 내 입으로 들어갈 거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 듯! 사모님 댁에 가면서 선물로 가져 가려고 오트밀 쿠키를 좀 구웠는데, J언니도 사모님 댁 식구도 다들 이 쿠키에 엄청난 호응을 보내셨다. 나는 이 쿠키보다는 통밀스콘 같은 게 더 맛있던데, 역시 사람 입맛은 다 다르구나 :) 어쨌거나 앞으로 어디 선물할 일이 생기면 이 쿠키를 굽는 것이 안전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흑

그래서인지 완성 사진은 없다는...

오븐에 들어가기 전

이렇게 퍼질 줄은 몰랐다

식힌 후 나눠 담아서 선물!


아, 요즘은 무슬림들이 단식을 하는 '라마단'인 동시에 이집트 기독교인들이 음식을 가려먹는(동물성 식품을 피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슈퍼에서 '우유가 안 들어간 치즈'라든지 '고기가 안 들어간 소세지'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한 번 사 보았는데, 맛이 좀 떨어지는 소세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사실 소세지 맛이 가물가물해서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약 2년 째 채식을 하면서 고기가 먹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안 들었지만, 가끔 예전에 먹던 음식과 관련된 기억 때문에 그게 그리울 때는 있다. 그럴 때 가끔 자신을 속이는 용도로 사용할 만한 대용품이라고 생각한다.

콩 단백질로 만든 소세지와 햄

소세지는 이렇게 생겼는데

구워서 라자냐와 함께 먹었다



단상

1. 며칠 전 친구와 통화하면서 들었던 생각 하나. 대학을 다 졸업하고, 스물 여섯이 된 지금에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뭘 잘 하고 좋아하는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 입학할 때 자기소개서 썼던 것을 다시 읽어보면 엄청 부끄럽고 오글거릴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대학원에 갈 때 (또는 취직을 할 때) 비슷한 걸 쓰게 된다면 그 때는 좀 더 나에 가까운 나를 글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하나의 사건을 자세하게 묘사하거나 그 과정에서의 내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하는 것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것을 관찰하고 꼼꼼하게 기록하는 일이라든지 몇몇 사건에서 공통의 키워드를 뽑아 연결하는 일에 더 소질이 있는 듯하다. 작가보다는 기록자or 편집자, 랄까.

2. 나도 다른 사람들이 뭘 하며 지내는지 읽거나 보거나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전화 통화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난 통화 중간 중간 느껴지는 어색한 침묵이 싫다) 메일이나 블로그를 선호하는데 요즘에는 읽을 거리가 너무 적다. 내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각기 너무 바쁘거나,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거나, 아니면 쓰는 걸 그리 즐기지 않는 등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겠지. 그래 이건 그냥 나의 바람일 뿐인 것이다. 음 어쩌면 내가 무한도전을 좋아하는 것 이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르겠다. 올해로 6년째,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 꼬박꼬박 요즘 뭘 하고 있는지 보여주니까.

3. I have no intention to change the world. I just want to experience the change I want to see in the world within myself. (나는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세상에서 내가 보고자 하는 변화를, 내 안에서 경험하고 싶을 뿐이다.) 어떤 블로그에서 본 이 말이 나에게 참 와 닿았다.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를,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