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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일 월요일 ~ 12월 9일 일요일


업무

이번 주 목요일에는 아인샴스 대학교에서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려서 몇몇 학생들과 함께 대회를 보러 카이로에 다녀왔다. 마침 대통령 선거 재외국민 투표 기간도 겹쳐서 나는 비행기를 타고 하루 일찍 올라가 대사관에서 투표를 하고, 다음 날 대회가 열리는 곳에서 학생들과 만났다. 우리 학생들은 직접 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이다 보니 나는 별로 할 일이 없었는데, 다른 한국어 선생님들은 리허설과 행사 진행 때문에 바쁘게 움직이셔서 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말하기 대회 포스터

행사장 입구

말하기 대회 팜플렛


이번 말하기 대회에는 초급 5명, 중급 4명 모두 9명의 학생들이 참가해서 한국어 말하기 실력을 겨루었는데, 특히 아인샴스 학생들은 발음이 정말 좋아서 내용을 알아듣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상위권 참가자들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로 다들 뛰어났지만 개인적으로는 모하메드라는 학생이 발표한 '오해'가 제일 재미있었다. '입학했을 당시에는 한국어과 선생님들이 모두 예쁘고 착하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 지각을 하자 선생님이 큰 소리로 혼을 내서 선생님을 무서워하게 되었고 한국어에서도 마음이 조금 멀어졌다. 그렇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이 자신을 미워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고 자신이 선생님을 오해한 것이었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인데, 유머도 있고 손동작이나 말투도 자연스러우면서 귀여워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대회 시작 전

2학년 학생 모하메드의 '오해'

학생들이 준비한 합창

트윙클과 강남스타일

포트사이드 유스센터 학생들

전국 노래자랑~


본 행사 뿐만 아니라 아인샴스 대학교, 헬완대학교, 포트사이드 유스센터 등에서 준비한 장기자랑도 아주 재미있었다. 합창부터 시작해서 트윙클+강남스타일 춤, 전국노래자랑 형식의 노래 메들리, 발음하기 어려운 한국어 문장 읽기 같은 여러 볼거리가 있었는데, 우리 학생들에게는 상당한 문화충격이 된 것 같았다. 하긴, 룩소르에서는 한국어를 이 정도로 잘 하는 학생도 없을 뿐더러 한국 문화 자체를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데, 여기에서 만난 학생들은 비슷한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하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주눅이 든 것처럼 보여 걱정이 되었는데, 다음 날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니 앞으로 한국어 공부를 하는 데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해서 함께 대회를 보러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과 함께 행사장 앞에서



생활

금요일에는 오전에 학생들을 만나 함께 카이로 구경을 다녔다. 먼저 피라미드에 갔는데, 학생들도 학교에서 배우기만 했을 뿐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호객꾼들도 우리 학생들이 룩소르에서 온 것을 아는 것인지, 말이나 마차를 타야만 피라미드를 볼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며 마굿간 쪽으로 데려가는데 학생들이 진짜로 믿으려고 해서 내가 막 말려야했다. 겨우 매표소를 지나 쿠푸 피라미드를 보고, 카프라 피라미드는 좁은 통로를 기다시피 들어가 내부 구경을 한 다음 멘카우라 피라미드로 갔다. 학생들은 처음부터 말을 타고 싶어하는 눈치라서 나도 결국 여기에서 같이 타게 되었는데, 다들 피라미드보다 이걸 더 재미있어하면서 30분이 넘게 말을 타고 돌아다녔다. 워낙 사기꾼이 많기로 이름난 곳이라 나는 계속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집트 학생들과 함께라서 그런지 아무 탈 없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직접 본 피라미드는 정말 거대해서 도대체 그 옛날에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만 계속 나게 만들었고, 신왕국 시대의 유적인 룩소르의 신전이나 무덤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멘카우라 피라미드 가는 길

카프라 피라미드를 설명하는 학생

어느 새 말을 잡아탄 학생들

왠지 지쳐보이는 말

결국 나도 올라타게 되었다

스핑크스의 옆모습

스핑크스 앞에서 한 컷

뒤에서 본 스핑크스와 우리 그림자


피라미드를 다 본 다음에는 칸칼릴리(Khan Al-Khalili) 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늦은 점심으로 코샤리를 먹었는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식당이 아닌 현지인 식당이었는데도 보통 2기니인 제일 작은 사이즈가 5기니나 해서 깜짝 놀랐다. 점심을 먹은 다음 '후세인'이라는 모스크에 들어갔는데 이집트 사람들에게 유명한 곳이라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모스크를 둘러본 다음 시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 덧 해가 질 무렵이라 학생들과 다음 날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후세인 모스크

이 주위에서 기도를 드린다

경건한 느낌이 드는 등

군옥수수 파는 아저씨

군고구마도 있는데 맛은 좀..

한글이 적힌 가방을 맨 사람 발견


토요일 저녁 8시 반에 학생들을 만나 9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탔는데, 2등석이라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좌석 앞 공간이 넓고 깨끗해서 (화장실은 제외!) 편안하게 올 수 있었다. 잠이 들었다 깼다 반복하다 보니 동 틀 무렵이 되었고, 아침 8시가 좀 넘은 시각에 룩소르 기차역에 도착해서 해산하는 것으로 카이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기차 여행에 신난 학생들

동이 틀 무렵, 창 밖 풍경

점점 밝아오고 있다


사실, 단원 생활을 마무리할 시기라 이것 저것 할 일이 많아서 이번에 카이로를 갈 지 말 지 좀 망설였는데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말하기 대회에서 학생들이 자극을 받고 카이로의 학생들과 교류를 하게 되어 앞으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 이번 기회에 평소에는 거리를 유지하던 우리 학생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것 등등 학생들도 나도 얻은 것들이 많은 여행이었다. 이제 더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겠다는 목표가 생긴 학생들을 뒤로 하고 떠나야하는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그런 목표를 세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