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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 12월 23일 일요일


업무

사무실에 있던 내 물건을 정리하고, 후임단원에게 드릴 업무 인수인계 서류와 함께 학생들에 대한 설명을 쓴 문서를 프린트해서 책상 위에 가지런히 두는 것으로 모든 업무는 끝이 났다. 직접 얼굴을 뵙고 인수인계를 해 드릴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 좀 아쉽다. 


생활

월요일에는 룩소르 단원들끼리 모여 송별회를 했고, 화요일에는 아이샤와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예전 단원들이 떠나서 한창 심심했을 때 아이샤마저 없었다면 정말 쓸쓸했을 것 같은데, 이제는 내가 떠나는 입장이 되어 혼자 남겨두려니 외롭지 않을까 좀 걱정이 된다. 원래는 함께 크루즈로 덴데라에 다녀올 계획으로 휴가까지 신청해 두었지만 요즘 날씨가 많이 추워져 크루즈를 타기에 그다지 좋지 않고 가격도 많이 올라서 그냥 익숙한 곳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카이로로 떠나는 목요일 아침에도 건물 옥상에서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잠시 여행을 가는 느낌이라 그냥 평소처럼 웃으면서 언젠가 일본이나 한국에서 또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떠나왔다.

목요일에 카이로에 도착해서는 동기 언니들과 함께 지냈는데, 다른 언니들은 다 카이로에 살다 보니 가기 전 만날 사람도 약속도 많았지만 나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 뭘 하나 하던 차에 마침 샘이 카이로에 올라온다고 해서 금요일에 샘을 만났다. 카이로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라 평소와는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침 일찍 칸 칼릴리 시장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거리를 다니며 구경을 하고, '수하이미의 집'이라는 곳에 갔는데 방이 몇십칸은 될 법한 커다란 저택으로 내부가 꼭 미로 같았다.

아침 일찍 이집트식 차 한 잔

골목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House of Al-Suhaymi

구조가 엄청 복잡했다

이런 방들이 아주 많았다

천장까지 신경 쓴 모습

복잡한 무늬의 나무 창

햇빛이 들어오는 창

정원에 있는 정자의 천장

알록달록하니 예뻤다

이런 무늬가 곳곳에 있었다

창을 통해 본 정원의 모습

앉아서 토론을 했을 것 같은 곳


시내로 가서 이집트 음식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은 다음 코르니쉬(강변도로)로 가서 산책을 조금 하다가 다시 메트로를 타고 헬리오폴리스에 가서 그 주변을 둘러보다 약간 이른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룩소르에서는 이렇게 걸어다니거나 돌아다닐 만한 곳이 없어서 항상 샘하우스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카이로에 오니 볼 것도 갈 곳도 무궁무진하고 귀찮게 하는 호객꾼 하나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샘은 그래서 룩소르보다 자유로운 카이로가 더 좋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둘 중에 2년을 지낼 곳을 고르라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룩소르를 선택하지 싶다. 

구름이 잔뜩 낀 카이로 하늘

혁명 때 불탄 정부 청사

삶은 병아리콩 파는 곳

저녁으로 먹은 샐러드와

여러 종류의 마흐쉬

콩으로 만든 보싸라


이 날은 하루 종일 샘한테 얻어먹고 다닌 데다 카이로에 오기 전에 귀국 선물로 아랍어로 된 목걸이와 팔찌까지 받은 터라 일요일에는 샘을 마아디(Maadi)로 초대해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마지막으로 좀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도기에 색깔을 칠하는 카페에 가서 각자 하나씩 작품도 완성했다. 아이러니하게도 2년 동안 샘과 친구로 지내면서 했던 일들보다 이 이틀 동안 카이로에서 한 일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편으로는 룩소르에서가 아니었다면 샘과 이만큼 친해졌을까 싶기도 하다.
 

여기에서 물감색을 고르고

자리에 앉아 색칠 시작

각각 하나씩 완성

내가 칠한 눈사람 그릇

메리 크리스마스!

재떨이에 금연 표시를 그려넣었다

이집트 느낌이 나는 재떨이


사실 나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한국에서라면 삼촌 뻘인 샘과 '친구'가 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고, 또 성격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친해질 만한 사람들이 아닌 데도 어딘가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지금 돌아보면 참 신기하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접근을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거짓말로 실망시켰던 이집트 사람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샘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내 친구가 되어 있다. 가끔 잔소리도 했고, 의견이 맞지 않아 목소리를 높여 가며 싸울 때도 있었고, 한국어를 가르칠 때는 혼도 많이 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좋은 추억처럼 느껴진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