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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주머니

내 안의 풍경

곰파 2008. 4. 27.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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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주말과 다름 없는 평온하고 나른한 토요일이었다.

어김없이 무한도전을 다운받아서 혼자서도 낄낄 소리 내어가며 웃으면서 에너지를 충전했고

아침에는 부지런을 떨면서 11시 경 수영장도 다녀왔다.

오는 길에 맑은 하늘과 반짝이는 햇살을 보면서 문득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늘 그렇듯 빈둥거리기도 하고 프랑스어 공부를 하기도 하고,
게다가 여행 계획을 마무리하며 즐거울 5/6월을 상상해 보기까지 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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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어쩌다 싸이월드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교생을 나가는지 궁금해서, 그런 걸 찾아보려고 들어갔는데

싸이의 특성 상 이리 저리 파도를 타고 일촌들의 싸이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짝을 만난 사람들이 몇 있었고

여전히 뭘 하고 사는 지 모르겠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고.

그러다가 이상하게 기분이 저어기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 정말 이상했다. 대체 왜?

개중에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보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 해 아쉬움이 남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내가 한국에 있었다 해도 아마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었을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내가 한국에 남겨 둔 빈자리를 보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돌아가야 하는 자리를, 그 때의 어색함을 무의식 중에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한국과 프랑스라는 동떨어진 곳에서 6개월을 넘게 지내면서

이제는 내가 잘 인식할 수도, 나눌 거리도 없어 보이는 그들의 삶이... 그냥,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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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명의 싸이를 보다가, 오랫동안 들르지 않았던 누군가의 싸이에 들렀다.

이번에는 앞서 말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감정을 느꼈다.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했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 했던 데 대한 미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어리에 적힌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음에서 오는 가슴의 찌릿한 느낌.

그리고 너무나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구절...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부러워하지 않는 건
내가 선택한 길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기 때문

나는야 공부하는 사람
사람과 세상에 대해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그리고 결국엔
내가 하는 공부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거라 믿는
그런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

언젠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쉽게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고수들의 비법을 훔쳐볼 수 있는 기회

어쩌면 오랫동안 나의 역할 모델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사람이기에 당연한 것일지도...
오늘에라도 이걸 발견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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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다가 어느 순간에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밤으로 휩쓸려 든 지금

여행 동안 그렇게도 열심히 읽었던 <사람 풍경>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숨겨 온 불안과 공포, 질투와 시기를 돌아보았고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어두운 면들과 내 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도 스스로가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기애를 갖고 있었음을 조금 깨달았다.

또한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여성으로 생각하는 데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과 거부감을 갖고 있고

제대로 된 사랑은 언젠가 굴러들어올 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며, 인정과 지지에 목마른 사람이다.


책을 읽은 후에도 어떻게 변해야 할 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는 좀 더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의존성을 감추기 위한 자주성이 아닌 건강한 독립심을 바탕으로 세상에 서고 싶다.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내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내가 만날 짝(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나 역시 결핍감을 추진력으로 하여 살아왔을 것이다. 그 결핍감을 메우려는 욕망을 마음의 동력 장치로 삼아 현실적인 무엇인가를 성취해왔다. 질투는 나의 힘, 분노는 나의 에너지, 콤플렉스는 나의 추진력... 다 맞는 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나르시시즘적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욕구, 일상의 어려움이나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멀리 떠나고자 하는 방어의식...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내 삶을 이끌어온 게 틀림없었다.

삶이 막다른 곳에 부딪친 이유도 거기 있었을 것이다. 모든 정신 에너지는 양날의 칼이기에 외부로 나아가는 만큼 내면으로도 향하여 알게 모르게 나 자신에게 해를 끼쳤을 것이다. 감정을 무겁게 짓누르고, 정서의 생기를 빼앗고, 창조성을 억압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아무리 성취해도 만족감이 없었고, 이유 없이 몸이 아팠고, 어쩐지 삶이 자꾸만 퇴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생의 에너지와 추진력이 되어주었던 바로 그 힘들에 의해 몸과 마음이 무너지게 되었을 것이다. (352쪽)


물론 그 모든 심리적인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여전히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들으면 분노하는 '남성 콤플렉스'가 있고, 자신이 선하다는 나르시시즘이 있고,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영화를 보지 못하는 공포가 있다. 내면에서 맞닥뜨리는 질투나 시기심도 있고, 계속 소설을 쓰는 행위 뒤에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이제는 그것들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들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며, 그것들을 조절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인간 정신에 '정상'의 개념은 없으며,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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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서야 조금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 그는 몰랐다. (신경림, '갈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