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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일들을 볼 때면 
바로 이런 것이 '우연을 넘어선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렇게 거창한 말로 이야기를 꺼내고 나니 조금 부끄럽지만,
이번에 제가 세이브더칠드런의 '해외아동 결연후원'을 하게 된 것은 그런 신기한 '우연'들이 모여 이루어진 일입니다.

맨 처음 세이브더칠드런을 알게 된 것은,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 몇 주를 머물렀던 삼촌 댁에서 '모자뜨기 키트'를 발견하고서 였습니다. 전부터 뜨개질을 배워보고 싶기도 했고, 손으로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픈 열망도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자를 뜨게 되었지요. 제가 열심히 모자를 뜬 것은 물론 '아프리카의 신생아들을 살린다'는 좋은 취지에 동감을 했기 때문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잉여스러운 나날에 조금이나마 할 일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렇게 모자를 뜨던 중, 실타래가 하나밖에 남지 않아 급히 인터넷으로 모자뜨기 키트를 주문했지만 배송이 되려면 하루 정도는 기다려야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마침 저는 그 날 서울에 올라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동서울 터미널에 내려 근처에 있는 뜨개질 가게에 들러 실을 하나 정도만 사서 모자뜨기 키트가 배달될 때까지 버티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이집트로 돌아오기 전까지 뜬 모자들

이 매끈한 아이들은 엄마의 작품이구요

이건 남은 실로 뜬 조각 담요의 한 조각이지요

제가 뜬 건 자세히 보면 안 됩니다 흑


그런 생각으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강변역 테크노마트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제 눈에 띈 것은 바로 세이브더칠드런 부스와 모자뜨기 키트였습니다. 저는 거기서 하나 정도 구입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홍보 부스로 다가가 모자뜨기 키트를 살 수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직원 분께서 그 키트들은 판매용이 아니라 후원신청을 하는 분들께 선물로 드리기 위해 가지고 나온 것이라고 대답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어떤 후원을 하면 되냐고 다시 물었더니 지금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은 해외에 있는 아동과 일대일로 결연을 맺어 그 아동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해외아동 결연후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사실 전에도 결연후원을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매달 몇 만원의 돈을 감당하는 것은 제게 꽤 부담이 되는 일로 느껴졌기에 다음에 직장을 얻어 돈을 벌게 되면 해야겠다고 미뤄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혀 예상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에서 세이브더칠드런 부스를 마주치고 결연후원에 대한 소개까지 듣고 나니, 어쩌면 '저기 하늘 위에 계시는 분이 이 부스를 딱 여기다가 갖다 놓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나 보고 계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집트에서 시골인 룩소르로 가게 되면 돈 쓸 일도 없을테니 한 달에 3만원이면 크게 무리가 되지 않을 거라는 나름의 계산과, 부스에 놓인 모자뜨기 키트의 실 색깔이 너무 예쁘다는 어이없는 욕심까지 작용하여,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저는 후원 신청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P

네 여기까지가 사건(?)의 전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집트로 돌아오기 며칠 전 저와 연결된 아동의 자기소개서를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려 2000년도(!)에 태어난 에티오피아의 '아두냐 디리바 왁지라'가 저의 동생이 되었답니다 :) 어렸을 때 읽었던 '키다리 아저씨' 소설이 떠오르면서, 저도 그냥 3만원만 후원하는 '후원자'가 아니라 종종 편지도 쓰고 아두냐(근데 이게 이름 맞는 걸까요?)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에서 동물들을 돌본다는 아두냐, 귀여워요 히힛. 저도 얼른 제 소개를 보내야겠어요.


앗 그러고보니 이게 이집트에 돌아와 처음으로 하는 포스팅이었는데, 내용은 이집트와 별 상관이 없게 되어버렸네요 :)
조만간 생생한 이집트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 해외 아동 결연 후원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세이브더칠드런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