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이 ‘호텔 파이루즈’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다른 곳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에게 자신의 다음 여행지를 이야기했을 때, 그 여행자는 자신이 묵었던 곳이라며 호텔 파이루즈를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정현은 특별히 예약해 둔 숙소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미리 수집해 둔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그 곳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홈페이지는커녕 인터넷 카페 하나 없이 입소문으로만 영업을 한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덕분에 기차에서 내렸을 때 그녀가 가진 것은 그 여행자가 그려준 어설픈 약도 하나였다. 주변에 이렇다 할 큰 건물은 없었다는 그의 말을 반영하듯, 약도라고 해 봐야 하얀 종이 위에 직직 그어진 몇 개의 선일뿐이었다. 기차역을 빠져 나와 ..
2010년 9월 이후로 내가 읽은 책들을 그냥 목록으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코멘트 달아 둔 것 :) 1. 성미산학교 도서관 (2010.09.01) : 설정 자체는 흥미로우나 소설로서의 매력은 떨어짐 박사가 사랑한 수식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오가와 요코 / 김난주역 출판 : 이레 2004.06.28상세보기 2. 다함이에게 빌린 책 (2010.09.08) :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려움. 흥미진진. 그러나 한 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헝거 게임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수잔 콜린스(Suzanne Collins) / 이원열역 출판 : 북폴리오 2009.10.31상세보기 3. 성미산학교 도서관 (2010.09.11) : 청소년 용으로 가볍게 풀어낸 매카시즘 이야기. '고전'과 그렇지 않은 책..
모순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양귀자 (살림, 1998년) 상세보기 ※ 양귀자 씨는 이 책을 쓰면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이 전부 '첫 독자'이길 꿈꾸었다 했습니다. '소설에 관해 유포된 어떤 독후감에도 침범당하지 않은 순수한 첫 독자의 첫 독후감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존중하기 위해, 아직 을 읽지 않은 분들은 이 글을 읽음으로써 소설의 '순수한 첫 독자'가 될 기회를 빼앗길 수도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 ■ 왜 읽었을까? 사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벌써 3년 전, 친구 ㅊㄷㅂ양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소설이란 몹시도 취향을 타는 것이라 누가 강력히 추천을 한다 해도 덜컥 믿고 읽을 수는 없지만, '비슷한 감수성의 친구'는 그래도 비교적 믿을 만한 ..
■ 업그레이드 현미두유떡 냉동실에 고이 모셔 놓은 생현미가루를 처치해 보고자, 수요일에 만들었던 현미두유떡을 좀 업그레이드시켰다. 이전 버전은 현미가루와 두유로만 만들었더니 일단 간이 너무 심심하고, 심하게 찐득했거든. 현미가루 + 두유 + 베이킹파우더 + 소금 요렇게 섞은 다음 휘휘 저어서 찜통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찌면, 머핀 비슷하게 생겼고 식감은 백설기에 가까운 현미두유떡이 탄생한다 =_= 한울벗에서 사람들이 요즘 시중 백설기에는 계란에 우유까지 들어가더라고(물론 소량이지만) 충격에 휩싸여 있던데, 역시 파는 음식에 뭐가 들어갔는지 100% 알기는 어려운 법. 뭐 그렇다면 직접 만들어 먹는 수밖에... ㅠ_ㅠ 나는 알레르기 반응 같은 거 없으니까 계란 우유 조금 들어간 시중 백설기라고 못 먹는 건..
핑퐁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박민규 (창비, 2006년) 상세보기 ■ 왜 읽었을까? 을 처음 본 것은 창비에 연재될 당시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내가 펼친 부분은 '핑퐁'이 끝도 없이 나열된 그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박민규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레벨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다시 에 손을 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4년에 가까운 시간이 훌쩍 흘렀고, 종강 이후 읽을 책을 고르면서 일종의 '지평의 전환'을 불러 일으킬 만한 책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손에는 이 들려 있었다. 어쩌면 나는 2005년 여름,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을 읽으며 받았던, 그런 충격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 어땠냐고? 일단은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박민규..
클래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프랑수아 베고도 (문학동네, 2010년) 상세보기 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깐느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탔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2008년이었네요, 그러면 제가 프랑스에 있었던 때인데 당시에는 관심이 없었나;) 프랑스에서 알게 된 J언니가 편집한 책이라고 해서 관심이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4월 1일이었나 그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을 했기에 처음에는 영화를 보러 갈까 생각하다가 영화를 먼저 보면 소설을 읽는 데 아무래도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책 먼저 읽기로 했지요. 읽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중간 중간 과제, 공부 등의 다른 일을 해야 해서 단숨에 읽지 못 했는데도 총 3일을 넘기지 않았으니까요. 막상 문제는 읽은 다..
씁쓸한 초콜릿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미리암 프레슬러 (낭기열라, 2006년) 상세보기 과외하러 갔다가 책장에서 발견, 빌려서 후딱 읽어버렸다. 청소년 추천 도서 이런 걸로 지정되어 있던데, 과외돌이에 의하면 '청소년의 수준을 살짝 넘어서는' 소설이라고... 아마도 중간에 보기에 따라 약간은 민망할 수도 있는 성적인 내용이 나와서인 것 같은데, 고1인 녀석이 그 정도 가지고 무슨! 훗- 줄거리는 에바라고 하는 십대 소녀가 자신의 뚱뚱한 몸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에 주변 사람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힘들어 하다가, 우연히 만난 미헬이라는 소년과 사귀게 되면서 점차 자신의 몸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나가게 되는 내용이다. 내용이 너무 가볍지 않으면서 책장도 술술 잘 넘어가고, 소재도 청소년들이 관심있을 만한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공선옥 (문학동네, 2009년) 상세보기 오늘 점심 무렵부터 시작해서 병원 다녀오는 지하철 내내 읽고,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손에서 놓지 않고 읽은 끝에 방금 마지막 장을 덮은 소설. 제목과 표지(내가 가지고 있는 책의 표지는 위에 나와있는 것과 조금 다른데, 어쨌거나 둘 다 좀 소녀틱해서 마음에 쏙 들지는 않는다)를 보고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꽤 다른 내용이었는데, 그 다르다는 것이 좋은 방향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스무살의 로맨스 같은 거려나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하나 둘 속살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에 나는 때때로 책을 덮고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했고, 깊게 숨을 들이쉰 후에야 다시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이 책에 정확한 년도가 나오지는 ..
자기앞의 생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2003년) 상세보기 이 책은, 줄거리를 정리해 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의 전개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일어나지 않고, 주인공 소년 모모의 시점에서 본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욱 나열되는 식이라 과연 소설이 끝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는 하는 걸까 하는 의심을 할 정도였으니까. 이렇게 볼 때 서사에 중심을 두는 내 취향의 소설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읽는 것이 시간이 아까웠다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좀 특수한 카테고리에 들어갈 것 같다, 이 소설. 솔직히 말해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의 8할은 이 책의 작..
오늘은 오랜만에 '책'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 휴가를 받아 나온 현진, 요새 통 얼굴을 보지 못 했던 꼬- 특별히 문학학회라는 이름을 달고 만난 것도 아니었는데, 밥을 먹고 자리를 옮긴 이후로 우리 입에서 나온 얘기는 세미나에서와 다름없었던 것 같다. 아날로그적 인간들이라고 해야 하나. 책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 속의 사람들에 '공감'하는 것이 우리의 공통점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부터 어렴풋이 느꼈듯 우리의 '취향'은 참 많이 다르기도 하다. 나처럼 이야기, 서사 그 자체를 좋아하고 그 속의 의미에 집착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현진이처럼 눈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통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또 김연수씨에 대한 팬심을 글로 써야 했던 꼬 ..
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카를로 프라베티 (문학동네, 2009년) 상세보기 YES 24에서 책구경하다가 처음 보고 재밌겠다 싶었는데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자금난으로 잠시 보류, 그러다가 운좋게 책을 얻게 되어서 어제 오늘 지하철에서 술술 읽었다 :) 줄거리를 소개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이야기 못 하겠고, 이 책에 대한 감상을 한 줄로 줄이면 '기대만은 못 하지만, 가볍게 읽기 좋고, 재미있음'이 되겠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바, 세상에는 이것 혹은 저것으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고, 미친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의 본질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등등- 에는 마음 깊이 공감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136쪽짜리 책에 담아내려 하다 보면, 둘 중 하나가 되는 게 아니겠는가. 작가의..
요 근래 이틀 동안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프랑스 소설인 (물론 한국말로 된 거) 또 다른 하나는, 김형경의 심리여행에세이 (이건 e-book 다운 받은 거) 이다. 은 아직 다 읽지 못 했지만, 그래도 이 두 권의 책을 내리 읽는 동안 여러 생각을 했다. 첫째로 프랑스 소설 는 내 생각과 많이 달랐지만, 결론적으로 '괜찮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에는 '이 작가 이야기를 대체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냥 작가의 의도대로 잘 끌려다녔더니 마지막 순간, 숨어있던 반전의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사실 마지막 한 챕터는 앞 부분들에 비하면 긴장도 떨어지고 밋밋한 편인 것 같다. 게다가 나는 그 챕터의 전체적인 말투, 어미 자체에 묘한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던 터라..
와 마찬가지로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이다. 그렇지만 앞의 책에 비해서는 얄팍한 배경지식을 가지고도 읽어낼 수 있고, 소재라든가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좀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과 '악어' 두 편이 실려 있는데, 나는 '악어'를 더 재미있게 읽었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도 그럭저럭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결국에는 몇 사람을 가지고 이리 저리 이야기를 굴리다 끝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 사람이 살다보면 여러 우연한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그것으로 가득찬 소설이라니, 아쉽다. '악어'는 좀 더 잘 짜여진 추리소설에 가깝다. 특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콘트레라스'라는 인물에 감정이입한 상태에서 무엇 때문에 그런 사고가 일어났는지 한 조각 한 조각 퍼즐..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를 비롯한 나라들과 그 외의 수많은 지명들. 간혹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어느 구석에 붙어 있는지 조차 모르는, 그야말로 '다른 세계'인 곳. 루이스 세풀베다의 라는 책을 읽으며, 나는 배경지식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지 절감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 학기에 들었던 '독서교육론' 수업에서도 여기에 관련된 내용을 다뤘었다. 학습자의 독서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수자는 글의 종류나 전개 방식 등에 관련된 지식을 가르치거나 내용에 관련된 배경지식을 직접 알려주기도 한다는 것. 멀리 갈 것도 없이, 이것은 우리가 고등학교에서 수능 언어영역 공부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바로 이해된다. 선생님들은 그 글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지만, 과학이나 예술, 철학같이..
티에닝의 장편소설 언니가 빌려다 놓았길래 그냥 심심해서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무엇보다도, 소설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그냥 있을 법한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창예 시의 부시장인 푸윈저와 그의 아내 거페이윈. 푸윈저를 인터뷰하러 갔다가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 기자 타오요우자. 타오요우자의 외삼촌인 예술가 두즈를 사랑하는, 상처가 많은 치우예. 푸윈저와 타오요우자의 관계를 담은 사진을 손에 넣게 된 바이이허. 션티앙, 바이인, 타오요우쥔, 그 외의 인물들. 이들의 이야기는 엄청나게 심각한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피식 웃음이 나올 이야기도 아니다. 또 이들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만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쁜 인간도 아닌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큰 부담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