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생각주머니

유럽, 그리고 한국

곰파 2007. 12. 1. 05:36

사실 이 곳에 오기 전까지 '유럽'하면 내가 떠올리던 것은 그저 유럽 여행이었다.

그래도 한 번씩은 가 본 중국이나 일본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일 것 같은 곳,
이름이나 들어 본 유명한 미술작품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는 곳이며
그래서인지 여름이면 배낭을 맨 학생들이 줄줄이 떼 지어 몰려가는-
그런 유럽만 떠올렸더랬다.

프랑스에 온 지 두 달.
아직 내가 유럽 곳곳을 돌아다녀 본 것도 아니고,
그저 앙제에 머물면서 파리 구경만 한 번 다녀왔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가 지금 생각하는 '유럽'은 예전과는 참 많이 달라졌다.
단지 여행지, 관광지로서 유럽을 바라보며 와 멋지다'ㅡ' 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국가, 터전으로서의 유럽을 생각하게 된다.


부러운 유럽

한국에 있을 때도 '유럽연합' '유로화' 이런 이야기야 많이 들었지만
그것을 체감할 계기는 별로 없었기에 그냥 '음 그런 변화가 있나 보군' 이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유럽의 각 나라들 사이에는 국경이 없는 것 같다.

일단, 마치 우리나라에서 한 가족이 이 지방 저 지방 흩어져 살 수 있는 것 처럼
여기서 한 가족이 유럽 이 곳 저 곳에 흩어져서 사는 것은 별 특별한 일도 아닌가 보다.
어학원의 한 선생님의 경우, 부모님은 스페인에, 누나(여동생?)는 이탈리아에 살고 있단다.
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이모는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어" 뭐 이런 얘기는 예사.
나에게는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프랑스' 는 다 각자 따로인 나라이고
다만 지리적으로 '유럽'이라는 동네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게 아닌가보다.

위에서 말한 듣기 수업 선생님은, 수업을 하다가 '애국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예전, 자기 아버지 세대라면 "프랑스! 삼색기!" 뭐 이런 식의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는 나라를 위해서 죽을 생각이 없고 (그건 직업 군인의 영역! 자신은 프랑스어 선생님일 뿐 kk)
또한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기보다는 '유럽인'으로서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더 부러운 것은, 이중언어를 쓰는 아이들이다. (꽤 있다=ㅁ=)
어제 저녁에 학교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게 영어로 된 거였다.
("브레이브 하트" 3시간 내내 어찌나 피가 튀던지. 말도 못 알아듣는 상태에서 보니 더 그랬다)
영화 시작 전에 우리 기숙사에 사는 한 애가 나와서 영어로 영화를 간단히 소개한다.
소개를 들으면서 '와~ 영어도 잘 하네 :D 짝짝짝' (참고로 악기도 두 개쯤 하는 애 'ㅅ') 이랬다.

그런데 오늘 어학원에서 돌아오다 그 아이를 만났다.
같이 기숙사로 돌아오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영어로 된 영화
(영국 영화? 내가 물어봤는데도 정확히 무슨 의미로 물어본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ㅅ-)
를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원래 영국 출신 집안 사람이라고, 그래서 당연하단다.
그러면 프랑스어 영어 둘 다 잘 하겠구나 했더니 그렇단다. T_T 좋겠다. 부럽다.
걔 말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갔던 다른 아이도 원래 아빠가 영국 사람이었다고 그러고,
또 기숙사의 한 아이는 여기 오기 전에 뮌헨에 살아서 독일어랑 프랑스어를 다 한다.

게다가,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는 프랑스어와 비슷해 배우는 데 그리 힘들지 않으니 참 좋겠다.
(간혹 수업에 스페인어권 아이들이 있는데, 걔들은 단어를 보면 대충 무슨 뜻인지 안다 'ㅅ' 쳇)



그렇다면 우리는?

사실 위의 것들을 아무리 부러워 한다고 한들, 그것이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났고, 내 모국어가 한국어인 이상 일단 출발선은 다른 것. 깨끗이 인정!
그렇지만 저것들을 단지 부러워 했다가 '뭐 아니면 그만이지'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20년 후, 30년 후 과연 우리나라는 어떤 위치에 있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교 20등쯤 하는 애가 있는데, 자기 성적을 좀 올리고 싶다.
1등하는 애는 집도 부자고, 과외를 하는지 좋은 학원을 다니는지 어쨌든 혼자서도 공부 잘 한다.
전교 10등 안에 드는 애들이 몇 명 있는데 걔들은 자기들끼리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스터디 그룹은 "3반 스터디"라서 5반인 얘는 그 그룹에 못 들어간다.
같은 반인 5반에도 공부 좀 하는 애들이 있긴 하다.
한 명은 아직 썩 잘 하지는 않아도 집도 좀 살고, 언젠가는 성적이 확 오를 것 같다.
또 다른 애는 이 반에서는 1등쯤 되는데, 얘한테는 옛날에 얻어 맞은 적이 있어서
같이 스터디 그룹 만들기에는 감정이 좀 껄끄럽다.

좀 우울하고 거친 비유이지만, 내가 여기서 느끼는 한국은 이런 모습이다.
국제 사회에서 명함을 내밀만 한 특별한 게, 없다 T_T
중국은 크기라도 크고, 일본은 유명하기나 하지, 그 중간에 끼인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딜 가도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하고 물을 뿐 '한국인이냐'는 질문은 없다.

이 곳에서 이와 같은 한국의 위치를 실감하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여기에 기분 상하고, 자존심 상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한국을 무시하고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자존심이 상해야 할 것은 이 상황이 그대로 가는 것을 지켜보는 거다.
그런데 슬픈 것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는 거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달라질 수 있을지, 도통 모르겠다.



또 다시 '교육'?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분명히 중요한 부분이고, 큰 희망이지만, 문제는 그게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안 보인다는 거다.

그렇지만, 앞으로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분명 교육일 거다.
아 그 이전에 우리나라 안에서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물론.
그것이 학교 교육이든, 가정에서의 교육이든, 사람을 달라지게 하는 것은 교육이니까 :D
(아닌가? 몰라. 난 그래도 국어교육과니까 그렇다고 믿을란다 히히)

사실 내가 다른 길로 도망나온 이유 중에 큰 부분은
교육이 이렇게나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도통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도 모르겠어서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 대신 더 나은,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제대로 된 성인을 길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찾아내고 그 쪽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또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이것이 그저 좋은 말을 나열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이런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또 나대로 고등학교나 중학교 아닌 다른 곳에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이렇게 뭉뚱그려 이야기한 교육만 생각해도 머리가 복잡한데,
실제로 그 교육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자면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남아나지도 않을 것 같다.
외국어 교육만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T_T
그래 거기 애들은 3개 4개 언어를 구사하는데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외국어 교육의 목표를 거기 맞출 수 있냐?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거냐? 뭐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엉?
하고 누가 묻는다면, 음 나는 그냥 조용히 '저는 국어교육과인데요' 라고 말하는 수밖에 (...)

간혹 인터넷에서 글을 읽다 보면
첨삭할 때 쓰는 빨간펜을 집어 들고 화면에 줄을 긋고 싶은 때도 있는 판국에
(주제는? 일관성은? 아니 다 그만 두고 가장 기본적인 거, 맞춤법은?) ← 까칠하다 'ㅅ'
영어나 중국어, 다른 외국어 교육을 위해서 국어 교육의 비중을 줄이자고는
내가 국어교육과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아닌 게 아니라 그런 거지 뭐) 도저히 이야기 못 하겠다 T_T


아우 아무튼 이건 너무 복잡한 문제다.
나는 일단 여기 프랑스어를 배우러 온 거니까 목적에 맞게 프랑스어를 열심히 배워야겠고,
부디 한국에 있는 훌륭한 교육학 및 교과교육학 전공자 분들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열심히 탐구를...

참 그나저나 대통령 선거는 어떻게 되어가나? 내 첫 투표권인데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