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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 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 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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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시를 포스팅하려고 했던 건 '내용' 때문이었다.
대학 온 이후로 '시'라고는 학회 세미나 때문에 몇 번, 수업 때문에 몇 번밖에 쳐다보지 않았는데
우습게도 프랑스에 와서 검색을 하다가 이 시를 발견하고 모처럼,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흘낏 쳐다보면 제목이나 내용 모두 너무 뻔하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막상 그 뻔한 감정을 자기가 느낄 때면 결코 뻔한 감정처럼 느끼지 않는 것이 사람이며,
또한 그 뻔한 감정이 잘 갈무리된 한 편의 시는 분명 특별하다.

그냥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처음에 이 곳에 와서 내가 적응해야 했던 것에는 언어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겠지만,
그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것이 있다면 바로 '혼자'에 적응하는 것이었을 거다.

여기에 와서 신기하리만치 한국 사람을 못 만났다.
아니, 못 만났다기 보다는 못 친해졌다.
심지어 프랑스인 신부님이 하시는 복음 공부에 갔던 것도 한국 사람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는데
한국 사람은 2명 정도일 뿐이거니와 그나마 딱히 친해지지도 못 했다.
기숙사에 한국 언니가 있어서 간혹 이야기를 나누지만,
또 사람마다 성격이나 취향이 다르다 보니 꼭 붙어다니는 단짝이 되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기숙사에서 프랑스인 친구를 사귀었냐 하면, 뭐 그것도 아니다.
일단은 말이 잘 안 되어서 밥 먹을 때 대화에 참여하기가 힘든데다가,
언어 문제를 제쳐두더라도 나는 재불재불 이야기를 잘 하는 성격은 아니다 보니 이건 참 어렵다.
가끔은 기숙사에서 이미 친구를 사귄 일본 애들 몇몇이 부럽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출발선도, 목표 지점도, 성격도, 생각도 다 다르니까 그냥 고만 부러워하기로 했다.

그럼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그나마 말 걸기도 쉽고, 만만한 건 어학원에 있는 (같은 처지의) 외국인 학생들이다.
처음에는 발음을 알아듣기 영 어려웠지만 이제는 뭐 그럭저럭 무슨 말인지는 알겠고,
피차 어려운 말을 잘 안 쓰니까 그래도 뭘 좀 알아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그렇지만 우리 수준이 '어디에 사냐' '주말에 뭘 하냐' 수준이니까 한계도 있긴 하다.
처음에는 중국 애들이 좀 많아서 약간 그랬지만 어차피 걔들도 나랑은 불어를 쓰니까 별 상관없고,
우리 반 일본 친구들 같은 경우는 (tu라고 불러서 애들 이라고 했지만 나이를 물어 보니 28, 29이라고)
성격도 점잖으면서 상냥해서 일단 호감이 가는 스타일.

아무튼, 한국에서도 혼자 수업 듣고, 공부 하고, 과외 가고, 혼자 뭘 많이 하긴 했어도
나에게는 '약속'이 있었고, 만날 사람이 있었고, 좋은 곳에 함께 갈 '친구'들이 있었다면
여기서의 나는 좀 더 혼자다.
다른 사람과 연결된 끈이 별로 없는 느낌.
그 끈을 통해 무언가를 공감하거나, 나누는 것이 별로 없는 상태.


그래서, 늘 불만이 많은 나는 또 당장 하느님께 불만을 늘어 놓았다.

아니 왜 나한테는 이런 걸 주시냐고, 이왕 여기 왔으면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좀 신나게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도와 주시지
여기까지 와서 '아 나는 혼자구나' 이런 것만 느끼고 있는 것은 좀 우울한 일이 아니냐고...


그런데 김재진 시인의 저 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친구가 있어도 내 마음을 100% 이해해 주는 것은 아니고
때로는 오히려 사랑하는 이들 때문에 마음을 다치고 혼자라는 것을 재확인하기도 하는데
그냥 여기에서 물리적으로 혼자이고, 외로운 것은 나에게 또 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내가 참 많이 사랑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이 참 감사한 일임을 느낄 수 있는 시간.
내게 주어지던 관심들이 그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시간.

또한 누군가에게 지금 당장 나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지 못 하더라도
나라는 존재와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물론 단점도)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리는' 시간.

+

이런 글을 보고 누군가는 조금 걱정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덧붙이자면,
그래서 결론은 여기의 삶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거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참 편했고, 늘 좋은 일만 있었고,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아니었듯
여기에서의 삶도 마찬가지,
너무 너무 살기 좋고 엄청 행복하고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고 - 뭐 이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것들을 구경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을 느끼고 있고
무엇보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에 덜 연연하면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 정말 좋다 :D
(성격 상 전혀 연연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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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만 포스팅 하고자 시의 원문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열심히 돌아다녔으나
도대체 시의 원본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시의 원문은 내가 올려놓은 것 같은 저런 산문식의 시가 아니다.
연, 행의 구분이 있고 쉼표도 마침표도 (아마) 있을 거다.
그런데 6~7개의 블로그, 웹페이지를 돌아다녀 보았으나 도통 알아낼 수 없는 원문.
각자 취향 대로(?) 연 행 구분을 다시 하셨고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심지어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부분이 "사랑하리라" 인 곳도 있었다.
(설마 원문이 '사랑하리라' 인 것은 아니겠지?)

모든 사람이 시집을 보고 포스팅을 하지는 않을 테고,
쉽게 쭉 긁어 붙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글이 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연과 행의 구분이나 한 글자 차이, 심지어 마침표나 쉼표 등으로도
느낌이 많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시이다 보니 아쉬움이 남았다.

어쨌거나, 이 시의 원문을 보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