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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주머니

언어의 벽

곰파 2008. 3. 12. 05:44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느꼈던 언어의 장벽을 요즘 들어 새롭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5개월 전 느꼈던 그 장벽은,

아무 것도 못 알아듣겠다 + 아무 것도 못 말하겠다 + (글마저도) 거의 못 이해하겠다

이런 극심한 삼중고였다.

한국에서 한 프랑스어 공부라고 해 봐야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물론 이 곳에 오는 사람들 중에는 나보다 더 안 하고 온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뭐)

이 곳에 처음 온 나는 늘 어벙벙한 상태로 어버버하고 다녀야했다.

 

귀라도 뚫어보자는 생각으로 매일 듣기를 연습했고

단어책을 통해 매일 단어도 공부하고 독해도 조금씩 하고, 수업 예습 복습하고...

그러는 사이 수업에서의 듣기 능력은 많이 늘었고 (처음 시험 쳤을 때 20점 만점에 4,5 점이었다)

읽고 쓰는 것은 만족할 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면 늘겠다 싶긴 하다.

 

그렇지만 일상 생활에서의 듣기는 여전히 나를 낙담시키기 일쑤.

오늘도 보조금 관련해서 서류를 제출하러 갔는데 접수하는 분이 하는 말을 도통 못 알아듣겠는 거다.

그 분이 천천히 말해주었을 때야 비로소 몇 단어가 들려서 대충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완전히 알아듣는 것은 아니라도, 어떻게 그런 단어들을 바로 착착 알아들을 방법은 없는 걸까.

 

그보다도 지금 나를 절망시키는 것은 '말하기'다.

이제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쓰는 말 중에 단어를 모르는 것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한국어로 말 할 때를 생각해 보아도 늘상 어려운 단어들을 달고 사는 것은 전혀 아니니 말이다.

문제는 그나마 축적해 놓은 단어들조차 내 것처럼 이용할 수가 없다는 것.

말을 못 해서 어버버버 하다가 돌아서서 생각해 보면, 대체 그 쉬운 말도 왜 못했을까 한심할 정도다.

 

문제의 원인은

첫째로, 단어들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써먹어 본 적이 별로 없다는 거.

그래서 그 단어, 표현을 들을 때는 잘 알아듣지만 막상 내가 써 본 적이 없으니 끄집어 낼 수가 없는 것 같다.

두번째로, 말할 때 실수하지 않으려는 나쁜 버릇.

전에 선생님도 나에게 문법, 단어 이런 거 따지지 말고 그냥 술술 뱉어야 된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한국어로도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면 여러 번 생각해 보고서야 내뱉는 내가 외국어로 술술 말할 수 있을리가.

그리고 한 번 그 말을 뱉고 나면 그냥 에라 모르겠다로 일관해야 할 터인데

난 자꾸 내가 한 말 중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 할 말만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내뱉기에도 바쁜데 자꾸 이런 거나 돌아보고 있으니

결국에는 뭘 말하려고 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나고 축소해서 말하게 되어버린다. 엉엉.

 

오늘 이런 문제점을 심각하게 느끼면서,

어쩌면 이것은 내가 한국어로도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프랑스어보다야 백 배 잘하지만! 길게 말 해야 하는 언어 과외나 발표는 어려웠으니까)

자연스럽게 술술 말 잘 하는 사람이 부러운 것은 여기서나 저기서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

어쩌면 이런 점 때문에 라틴어를 배우면서 내가 그렇게 매력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즉각적으로 해석 반응해야 하는 여타 언어들과는 달리 천천히라도 읽고 이해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