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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혜화에서 연극 한 편 :)
뭘 볼까 좀 고민하다가 그냥 제목에서 땡기는 '도덕적 도둑'을 보기로 했다.
현진군이랑 예매도 없이 무작정 가서 현장에서 표 사고 좀 기다리다 들어갔다.

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것은 일단은 영화와는 다른 '현장감'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에 시작되어 끝이 나고, 일단 눈 앞에서 공연되는 것은 단 한 번.
그러니 그만큼 그 시간 동안 집중하게 되고 또한 그 집중이 의미 있다.
영화는 호흡하는 재미 같은 게 덜하고, 집에서 혼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소설을 볼 때도 별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는 편이라
(오히려 긴 묘사가 나오면 넘기는 편. 어차피 작가가 생각한 것과는 다를텐데 쳇-)
영화에서 보여주는 멋진 화면들은 '와- 멋져'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연극 무대의 단순한, 때로는 상징적인 배경들이 더 좋다 :)

오늘 본 '도덕적 도둑'은 이런 면에서 보면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배우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연극이었고,
그다지 크지 않은 무대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공간을 담고 있었다.

그렇지만, 뭔가가 부족해.
'라쇼몽'에서처럼 어설프지만 그래도 사람을 웃게 만드는 기발함이라거나
'의자는 잘못없다'에서처럼 정말 별 거 아닌 걸로 이야기를 끌어내는 탁월함.
이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뭔가를 갖고 있기를 바랐다.

그냥 보는 동안에는 실컷 웃었지만, 그렇게 웃고 마는 게 연극의 전부는 아니잖아.
내가 이런 재미를 찾고 있었다면 개콘을 보러 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부조리한 현실을 극에 그대로 담아내길 바라는 것은 아닌데
다만, 배꼽 잡고 웃는 가운데도 어딘지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그런 연극이었다면.

바라는 것이 너무 많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