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생각주머니

강연을 듣다

곰파 2007. 5. 18. 20:07
오늘 오전에는 대천에서 소설가 이혜경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는데,
소설의 느낌과는 또 참 많이 다른 분이었다.
소설 몇 편으로 그 사람이 다 설명되기야 하겠냐만은,
그래도 난 소설을 읽을 때 그걸 쓴 사람이 대충 어떤 사람일지를 생각해보곤 하니까.
소설보다도, 그 분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경험, 생각 등이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이거였다.

한때 현수막에 이름이 올라 부모의 자랑거리가 된 저 애들도, 시간이 지나면 도금이 벗겨지는 조악한 메달이나 트로피를 기념품으로 간직한 채 장삼이사가 되기 십상이다. 배운 도둑질이라고 무용학원을 차려서 어린아이들에게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비눗방울 같은 꿈을 주입하거나, 노래보다는 외모와 춤에 더 신경을 써서 립싱크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젊은 가수의 방송용 무대배경으로 하느작거리는 움직임을 지어내는 게 고작일 것이다.
어쩌다 배신당하지 않고 그 꿈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루어진 꿈은 이미 빛을 잃은 채 일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 이 분은 그런 경험이 있으셨던 걸까. 난 이걸 가장 묻고 싶었더랬다.
빛을 잃은 채 일상에 지나지 않게 된 꿈이, 나쁜 것은 아닐지라도,
그렇다면 그것을 대신할 반짝거리는 꿈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어쩌면 더이상 그러한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강연을 들으면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이런 거였다.

무언가를 가르칠 때, 지식을 가르치는 것 보다도 이해받고 있다는 것,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내가 교사를 평생의 일로 삼고 싶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는 이럴 자신이 없어서다. 답사를 통해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요즘의 나에겐 사람에 대한 애정어린 눈길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금 발견했다;ㅁ; 균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어, 정말로.

언어를 가르칠 때에 너무 똑똑한 사람은 오히려 잘 가르칠 수 없다는 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단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도록 하는 것.
학생의 입장에서, 절대공감. 그리고 부가적으로 (나 같은 학생을 위해) 필요한 한 가지는 스스로 다음 단계로 발걸음을 옮기도록 만드는 것.


덧.

어쩌면 요즘 나의 '공감하지 못 함'과 '소설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음'은 서로 통하는 것일까?
정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