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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주머니

모란이 질 때까지

곰파 2007. 5. 18. 22:48
7동 뒤, 14동 앞- 그 쪽을 관학림이라고 부른다.
관학림에는 여러 식물들이 있지만, 그 중 모란은 특별하다.

2005년 2학기, 처음으로 오병남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다.
핵심교양 '미학과 예술론'이었는데, 그 때 레폿 기한은 '첫눈이 내릴 때까지'였다.
덕분에 첫눈이 오는 걸 홀로 기피하는 슬픔을 맛보긴 했지만, 그래도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2006년 1학기, 다시 한 번 오병남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는데
그 강좌명은 '미학의 이해'였지만 사실 내용이 90%동일했고, 과제 방식도 똑같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겨울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한이 '모란이 질 때까지'였다는 점.
그 전까지 모란을 본 적도 거의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모란을 눈여겨 보고, 언제쯤 지는지 확인도 해 보고...
(그게 바로 레폿 기한이었으므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_-)
여튼 그 덕에 지금까지도 이 곳을 지날 때면 모란에 종종 눈이 간다.


이번 해에도 어김없이 모란이 피었고, 아주 잠깐 눈을 돌린 새 져 버렸다.
그래서, 영랑의 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은 금방 져 버리고 없어도 쓰레기통은 사시사철 남아 있고...


그리고, 내가 가끔 이 곳을 지날 때면 종종
정성스럽게 식물들을 돌보고 계시는 오병남 선생님을 보게 된다.
심어놓고 나몰라라 대충 크게 내버려두시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관심어린 눈길로 꽃과 나무들을 돌보는 선생님을 보면서-
그 아이들(꽃이랑 나무들..)이 얼마나 행복할까,
나도 선생님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덧.
수업하시는 선생님도 참 귀여우시지만(이런 말은 역시 실례인가-_-;)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서 세심하게 돌보시는 선생님은 정말, 너무 귀여우시다ㅠ_ㅠ 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