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기숙사에서 5분 거리, 빵집이 하나 있었다. 한국의 체인점들처럼 화려한 조명으로 무장한 깔끔한 '매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시설이 낙후되었거나 지저분한 것도 아닌, 프랑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빵집. 한창 빵에 중독되어 있었던 때는 거의 매일 그 곳에 들르곤 했다.

빵집 주인 아주머니는, 내가 아는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처럼, 친절했지만 그 이상의 관심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프랑스어에 그리 자신이 있지 않았을 때는 해야 할 말을 정리, 점검하느라 몇 마디 오가지도 않는 그 짧은 시간에 가슴이 콩닥콩닥했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에는 무슨 빵을 먹을 지 마음을 정하지 못 한 탓에 아주머니와의 인사는 흘려 보내곤 했다.

가끔씩은 초콜렛이 들어간 패스트리 류의 뺑오쇼콜라(Pain au chocolat)를 고르기도 했지만 주로 내가 고르는 것들은 겉은 거칠지만 속은 보들보들하고, 달콤함보다는 담백함이 입 안 가득 느껴지는 빵들이었다. 빵의 나라답게, 내 눈에는 하나같이 바게뜨로만 보이는 녀석들이 각기 다른 이름과 가격을 달고 있었는데, 계산대 너머에 빵이 담긴 바구니들이 놓여 있는지라 매번 나는 그 다양한 빵들을 들여다보며 차이를 연구하기는 커녕 이름과 대강의 겉모습만 확인하고 그 날의 빵을 고르는 모험을 해야 했다. 그렇게 빵을 고르고 값을 치르고 나면 아주머니가 슥슥 종이로 말아준 바게뜨는 내 손에 들려 있었다. 꼭 딸기잼이나 누뗄라를 바르지 않아도, 칼로 슥슥 잘라 입에 넣으면 빵 자체의 바삭함 혹은 폭신함, 그 '맛'에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기숙사의 아침을 여는 것도 빵이었다. 새벽 6시 30분, 몸을 살짝 떨게 만드는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마당을 지나 식당으로 가면 이미 네모난 곽우유는 따끈한 물에 담겨 데워지고 있었고 네 종류의 잼과 버터, 코코아와 커피 그리고 홍차티백이 놓인 트레이는 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열댓 개 남짓의 바게뜨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같은 시각 배달되곤 했는데, 가끔씩 내가 얼굴도 모르는 빵집 아저씨 또는 아주머니가 지각하는 날이면 먼저 따끈한 우유에 코코아를 타며 담당 수녀님의 등장을 기다리기도 했다. 기분 탓인지 아니면 그럴 만한 과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 새벽 배달되는 바게뜨에서는 내가 빵집에서 구할 수 있는 여느 바게뜨들과 다른 특별함이 느껴졌다. 바삭한 겉과 부드러운 속, 바게뜨의 장점이 두 배로 느껴지는 탓에 내가 먹을 만큼 빵을 자르는 그 짧은 순간에도 어디쯤을 잘라야 할 지 늘 고민하곤 했다.

프랑스어, 파리, 에펠탑, 지하철, 달팽이, 휴가, 파업...
많은 것들이 내 기억 속의 프랑스를 구성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가장 그리워하고 있는 프랑스는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닌가 보다.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종종 마음이 텅 비어있음을 느끼던 그 시절을 함께 지나온 나의 양식. 언젠가 다시 그 곳에 가면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