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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주머니

언어과외의 묘미

곰파 2009. 5. 22. 13:44
전공이 국어교육이다 보니까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국어과외를 몇 번 했었다.

중3, 고1, 고2 등 학년도 나름 다양했고 내신 국어 / 수능 언어영역 다 해 보았는데,
첫째로는 말을 많이 해야 해서 별로였고 (설명을 어느 정도로 해 줘야 할 지도 모르겠고)
둘째로는 대체 뭘 중점적으로 가르쳐야 하나 잘 모르겠어서 스스로 국어과외를 찾게 되지는 않았더랬다.

그런데 요즘은 사촌동생(고1) 언어영역 공부를 좀 봐 주면서 언어영역 과외의 재미를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전에 과외 할 때는 틀린 문제 중심으로 문제 풀이 하고 넘어가는 정도로 했었는데 이번에는 시험 삼아 방법을 바꿔봤다.

먼저 문제를 풀고 나면 그 지문에서 모르는 단어 줄 긋고 사전에서 찾게 한 다음, 단락 별로 중심 내용을 설명하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설명". 그냥 중심내용을 한 문장으로 말 해라, 이게 아니고 이해한 것을 니 말로 풀어봐, 이런 거다.
애들이 참고서에서 보는 중심내용 요약에 익숙해서인지 그럴 듯해 보이는 중심문장은 잘 만들어내는데
다시 한 번 "응? 그게 무슨 뜻이야? 설명해 봐" 이러면 버벅버벅거리면서 단락에 나오는 키워드에 집착을 하더라고.
결국 쉬운 말로 바꿔 이야기하지 못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지 100% 이해하지 못 했다는 거다.
그러면 나는 자꾸 생각을 하도록 애를 괴롭히다가(냐하하 요게 재미있지) 좀 쉬운 말로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 준다.

이렇게 하면 한 단락을 꼭꼭 씹어 먹은 게 되는 거고, 이런 식으로 모든 단락을 보고 나서는 글 전체의 구성으로 넘어간다.
요즘 다시 읽으면서 느끼는 건데, 언어영역 지문들은 참 깔끔하다. 절대 딴 데로 새는 법이 없달까.
그런 글들이기 때문에 단락 하나하나의 역할이 분명하고, 그 흐름을 따라 가며 읽으면 당근 이해가 잘 된다.
이런 것도 처음부터 내가 다 설명해 버리면 재미가 없으니까(말도 많이 해야 되거니와) 일단 설명해 보라고 한 다음에
아는 부분은 확인해 주고 빠진 부분은 좀 집어넣어 주고... 요렇게 하면 한 지문의 독해가 완성 :)

이렇게 독해를 하고 나면 다음에는 문제로 넘어가서, 맞은 문제든 틀린 문제든 몽땅 풀이.
풀이도 당연히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사촌동생을 시키는데, 답이 딱 하나밖에 없는 문제는 그거만 찾고 넘어가면 되지만
다른 보기들을 지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문제들은 꼼꼼히 다 찾고 확인시킨다.
이렇게 하면 문제가 이상하지 않은 이상 100% 납득할 수 있는 문제 풀이/분석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착한 나의 사촌동생은 시키는 대로 잘 하고, 모르는 부분 설명해 주면 재미있어 하기도 해서 할 맛이 난다 :)
예전에 뉴질랜드에 있을 때는 IELTS 영어 독해를 가지고 이런 식으로 공부를 좀 봐 줬는데,
그 독해 지문들은 영어기도 하지만 언어영역 지문보다 더 독해서인지(내용이 아카데믹이다 보니, 흑.) 좀 어려워 하더니
요건 잘 따라오는 걸 보면 언어영역 지문들에는 거의 수준이 맞는 듯하다.
뭐 우리말이니까 100% 이해하는 게 당연할 것 같아도 전혀 그렇지 않고, 단어도 한 지문에 10개 정도는 찾아야 하지만...

아무튼, 결국 공부란 건 누가 설명하는 거 듣고 고개 끄덕 끄덕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거고
또 좋은 선생님이란 학생이 뭘 알고 뭘 모르는지 파악하면서 그 아이의  이해를 돕는 사람이라고 보는데-
아우 학교에서는 이게 정말 불가능할듯. (서른 명 넘는 애들을 데리고 독해를 이렇게 할 수는 없잖아? 있을까?)

제대로 읽고,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국어교육-은 진정 가능할라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