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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프랑수아 베고도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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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깐느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탔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2008년이었네요, 그러면 제가 프랑스에 있었던 때인데 당시에는 관심이 없었나;)
프랑스에서 알게 된 J언니가 편집한 책이라고 해서 관심이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4월 1일이었나 그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을 했기에 처음에는 영화를 보러 갈까 생각하다가
영화를 먼저 보면 소설을 읽는 데 아무래도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책 먼저 읽기로 했지요. 

읽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중간 중간 과제, 공부 등의 다른 일을 해야 해서 단숨에 읽지 못 했는데도 총 3일을 넘기지 않았으니까요.
막상 문제는 읽은 다음이었어요. 산뜻한 마음으로 책을 내려 놓을 수가 없어 계속 책장을 뒤적이게 되더라고요.


맨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제가 예상했던 내용은 이랬습니다.

파리 외곽의 그다지 좋지 않은 학군의 학교, 문제아들과 젊은 교사가 학기 초 서로를 만난다. 당연히 양측 사이에는 갈등이 발생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하는 데서 감정의 골은 깊어 가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자라나고 학생들은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네, 굉장히 상투적인 내용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교육현장을 다룬 많은 소설이나 영화가 이런 공식을 사용하지 않았나요. 훈훈하면서 희망을 던져주는 이야기 말입니다.

만약 이 책이 실제로 그런 내용이었다면 저는 "뭐야, 이런 건 소설에서나 존재하는 거지. 현실이 어디 그런가!"라는 식으로 반응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이런 내용이 나올 기미도 안 보이니까 슬슬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해지는 겁니다. 결국 제 기대를 채워주지 않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제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어요. "뭐야, 이거 다큐멘터린가..." 
동시에 책 앞 띠지에 있는 베르티칼 출판사의 평에 매우 동감하게 되었습니다. "현직 교사가 쓴 수많은 책 중에서 개인적인 판단과 잣대를 강요하지 않는 유일한 소설." '유일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이제는 전직이 된) 현직 교사가 썼음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시각이 별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교사인 화자가 주인공이지만, 자신이 겪는 사건에 대해 이렇다 할 이야기를 해 주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억지로 학생들의 입장이 되려고 하거나, 그런 척 하지도 않습니다. 이 점은 마음에 들었어요.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들었던 질문은 "이 애들이 문제아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책 속의 아이들은 학업 수준이 낮고, 그다지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때때로 교사에게 반항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모범생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요. '지식 전달' 만을 목표로 삼는 교실에서는 그야말로 '쓸 데 없는' 질문을 하고, 가르쳐 주는 내용을 받아들이기에는 전혀 준비가 안 된 이 아이들이 말썽꾸러기로 생각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실도 하나의 사회이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기에 앞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아이들의 행동이 크게 문제될 것도 없어 보입니다. 물론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필요한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 부분조차 완전히 아이들의 몫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이 책의 화자인 교사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성미산 학교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수업에서 가졌던, 그리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비슷한 것들을 이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성미산 아이들이 제가 보통 과외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비교하면 제 이야기에 귀를 잘 기울이지도 않고, 위에서 말한 '쑬 데 없는' 말도 많은 편이지만 저 스스로는 그것을 '말썽 부리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문제아'들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와 아이들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그리고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사람 사는 세상인데), 아이들 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만약 과외 학생이 그런 태도를 보였다면 저는 즉각 문제 있는 녀석으로 생각하고 과외를 그만두거나 했을 거에요. 과외는 학생에게 공부를 (또는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성적을 올리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활동이니까요. 그렇지만 성미산 학교에서 제가 하는 수업은 기본적으로 저와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필요로 하고, 그것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이 책에 나오는 교사들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여기 나오는 선생님들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기 위해 온 힘을 다 하는' 헌신적인 교사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더 학교에 나오기 싫어하고,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며 어떻게든 수업 시간을 좀 때워 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엇 이렇게 적다 보니 오히려 현실에서 제가 본 몇몇 선생님들의 모습과는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네요.)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교사의 모습일까요? 저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급여를 받은 만큼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맞겠지만, 다른 많은 직장인들도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서도 어쩔 수 없이 꾸역 꾸역 출근을 하고, 직장에서 일 열심히 안 하고 시간을 때우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교사라고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있나요! 교사라고 해서 성심을 다해 아이들과 관계를 맺고, 가르치려는 욕구가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재미와 즐거움이든, 보람이든 아니면 돈이든 어쨌든 동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돈이기보다는 다른 요소였으면 하는 것은 이상주의자인 제 바람입니다 :)


마지막으로 소설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겠군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이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의 장 자체가 수업 전체 일수인 136일을 방학으로 구분한 날짜 수로 되어 있는데요, 그러니까 이십오일, 이십팔일 이런 식으로 방학을 사이에 둔 수업 일수로 되어 있고 그 동안에 일어난 사건들이 기술되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인 소설과는 달리 위기나 절정 같은 것도 없고, 그저 아이들은 말썽을 부리고 교사들은 거기에 적당히 대처하는 사이 한 해가 다 지나갑니다. 결국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 책을 좋은 소설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옮겨오기보다는, 대표성을 가지는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드러내는 소설이거든요. 아 어떻게 보면 그런 기준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위의 물음들과 함께, 이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대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납니다. 어쩌면 4월 말 쯤 불어교육과에서 이 영화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해서 그 때까지 좀 기다려볼까, 아니면 그 전에 얼른 보러 갈까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저보다도 성미산 학교 고등과정 아이들이 이 영화를 한 번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아이들은 과연 이 이야기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볼까,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볼 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교사의 입장을 받아들이게 될 지-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해요. 저에게 그러했듯이요.

또 하나, 프랑스어 원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들이 상당히 속어와 은어를 많이 사용해서 그런 것들 배우기엔 매우 적절한 텍스트가 아닐까 해서요. 이것도 일단 프랑스어 수업하는 선생님에게 이야기는 해 놓았는데, 좀 기다려봐야겠어요.


아무튼 이 책,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 보면 상당히 재미있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꼬드겨서 세미나 하면 딱 좋겠는데, 과제와 다가오는 시험으로 팍팍한 현실이 원망스럽네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