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주 전, 4월 15일에 있었던 다섯 번째 수업의 후기를 이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수업 후에 바로 바로 남겨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것 저것 하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갔네요.
자고로 시간은 기억을 변형시키게 마련인데, 앞으로는 바쁘더라도 꼭 이틀 사흘 내로 쓰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4월 8일에는 반 전체가 강릉으로 여행을 떠나서 수업이 없었구요,
이 날 드디어 다시 5명과 수업을 하게 되어서 조금 기대를 안고 학교로 갔습니다.
참, 저와 2005년에 사범대 열린교실에서 만나 여전히 좋은 친구로 남아 있는 J도 수업을 보러 동행했어요.
 
아이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수업을 시작하려 하는데, 이 날도 어김 없이 문제 발생.
2주 전에 나누어 준 <잉여인간> 프린트물을 안 가져오거나 안 읽어온 아이가 다섯 중 셋이었던 겁니다.
그런가 하면 또 인물 정리와 느낀 점까지 다 써 온 아이도 있고 말이에요.
순간,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과 함께 좀 당황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함께 토론을 하는 것이 제가 생각해 놓은 방법인데 그것을 적용할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책을 읽어 오기로 애들이 '약속'을 했었는데, 막상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하자, 이런 건 없었기에
그 상황에서 제가 화를 내야 되는 건지, 아니면 왜 안 지켰는지 물어봐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더군요.

결국 프린트물은 복사해 오도록 한 다음, 안 읽은 아이는 읽게 하고, 다 읽은 아이는 글을 써 보게 하고,
글까지 써 온 아이는 글에 대한 피드백을 주면서 개별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방식이 크게 나쁘지 않았지만,
1시간 20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인데 복사하는 걸로 20분 정도를 홀랑 까먹는 것이 아까웠고
무엇보다도 각자 자기 할 것을 하다 보니 서로의 생각을 나눌 기회를 갖지 못 하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물론 제가 1:1로 제 생각을 이야기해 줄 수도 있지만, 제 말은 '선생님'이라는 권위로 무장할 수 있는 위험이 있잖아요.


이 날 수업에서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은, 제 머리 속의 아이들과 실제의 아이들은 다른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을 계획할 때, 나름 아이들의 수준을 고려하고 거기에 맞춰 짜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아이들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위의 상황과 같은 변수는 끝이 없어서 결국 실패하고 만 것 같아요.
이렇게 보면 일반학교의 국어 수업에서도, 교사가 미리 계획한 것이 실제 수업에서 그대로 진행되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전공 수업들을 보면 항상 교사가 수업안만 잘 짜면 좋은 수업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현실에 몇 안 되는 '이상적인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지요. 


돌아오는 길에 J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소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아이들에게 만화와 같은 좀 더 쉬운 다른 텍스트를 제공해 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구요.
그 아이들이 글읽기 자체를 싫어해서 읽어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수준에 맞는 텍스트를 만나면 동기부여가 될 것인지-
이런 것을 알아보는 일종의 실험을 해 보라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제가 의욕이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생각하면 해 볼 만한 가치가 있고 또 거기에서 얻는 것도 있겠지만,
저는 '가르치는 사람'인 동시에 그냥 '사람'이라, 기본적으로는 아이들이 아닌 저를 위해서 성미산 학교에 가는 것이고
어디까지나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 있고, 좋아하는 일, 그러니까 소설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생각을 나누고 싶은 것이니까요.

아- 아마도 이 문제는 계속해서 저를 괴롭힐 것 같습니다.
이전의 수업들과 마찬가지로, 이 날도 여러 면에서 '어렵지만 재미있었던', 그런 수업이었어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