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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러니까 4월 29일 목요일에 있었던 여섯 번째 수업입니다.
그 전 주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강을 했었던 터라, 또 오랜만에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었지요.

다른 학년들은 여행을 떠나서 학교 전체가 조용했습니다. 정말 적막 그 자체 +ㅁ+
교무실에 들러 나눠줄 프린트물 복사를 한 다음 교실에 들어갔는데, 느껴지는 분위기가 좀 그랬습니다.
다들 약간 처져 있고, 아침인데도 별 활기없는 느낌이랄까요. 저도 덩달아 조금 힘이 빠졌지요.

상황은 지난 차시 수업과 비슷했습니다.
즉 책을 읽어 온 아이, 안 읽어 온 아이, 책을 안 가져 온 아이, 글까지 써 온 아이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어요.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지난 주에는 제가 휴강을 하면서 그 시간에 감상문을 쓰게 해 달라고 선생님께 부탁했기 때문에
최소한 아이들이 책은 다 읽은 상태일 거라고 기대를 했었는데, 네, 여전히 저는 너무 낙천적인 전망을 가졌었나 봅니다.

게다가 이미 한 녀석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퉁퉁 부은 표정으로 앉아 있고, 다른 녀석은 "아 진짜 재미없어요"만 반복하고...
물론! 책을 잘못 고른 제 책임도 있지만, 그렇게 이 책이 자기 취향이 아니면
'이건 도저히 내 스타일이 아니니 나는 다른 책을 읽겠다',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해결이 되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책 탓만 하고 있으니 저도 슬슬 짜증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둘은 책을 읽으라고 하고, 좀 읽는 듯하다 자길래 결국 내버려뒀습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자는 애들 그냥 두는 선생님들 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그 입장이 되니 어느 정도는 이해 가능.
제가 잘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때는 더 이상의 감정 싸움을 할 에너지가 없었어요 =ㅅ=


아무튼 대강 상황은 그렇게 정리 되고, 남은 세 명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각자 단계에 맞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책 읽을 아이는 책을 읽고, 다 읽은 아이는 글을 쓰고, 글을 쓴 아이에게는 피드백을 주고 수정해 보도록 했는데
지난 번과 조금 달랐던 것은 그 과정에서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던 점입니다 :D 
정식으로 둘러 앉아 '독서 토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여러 생각을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 이번 주의 소설은 마크 해던이 지은 <어느 날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자폐증을 가진 소년 크리스토퍼가 주인공이자 화자이면서, 작가로 나와요.
그러니까 크리스토퍼는 소설 속에서 자신이 직접 이 책을 쓴 것이죠.

간단히 줄거리를 말씀드리면, 어느 날 크리스토퍼는 이웃집 정원에서 쇠스랑에 찔려 죽은 이웃집 개를 발견해서 
개를 죽인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탐정 활동을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를 둘러싼 비밀들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사건이 진행되는 중간 중간 일견 쓸 데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 문제에 대한 설명이나, 장래 희망인 우주비행사에 관한 이야기들이요.
책의 챕터도 1장, 2장 이런 순서가 아니라 2장, 3장, 5장 이런 식인데 바로 크리스토퍼가 소수를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바로 이런 부분이 자폐아인 크리스토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매우 참신하다고 생각했고,
또 이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폐증을 가진 사람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 좋았기에 추천했는데, 
막상 아이들의 반응은 영 아니었어요. 대체 왜 이런 것들이 끼어있어 읽는 것을 방해하느냐는 비판이 지배적 ㅋㅋ


이 날 수업에서 함께 한 세 명, 편의상 I, D, J라고 할게요,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볼게요. 
(아 혹시 이걸 보는 당사자가 이런 내용이 포함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해당 내용은 내리겠습니다!)

I는 책을 읽을 때 선입견을 강하게 가지는 편이라, 새로운 방식의 소설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는 듯합니다.
자신의 취향 대로 독서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지만, 아직 먹어보지도 않은 것에 대해 맛없다 평가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맛이라도 눈 질끈 감고 삼키는 것을 한 번 시도해 보도록 제안할 생각이에요.
아직까지 정식으로 글을 쓴 것을 보지는 못 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네요.

D는 이제까지 수업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성실히 책을 읽고, 글을 써 왔기에 개인적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쓴 글을 읽어보면 충분히 논리적이고 자신의 색깔이 묻어나오는데도 스스로는 만족스럽지 않아 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책을 읽으면 느낀 것들과 그것을 담은 글에 대해서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D가 좀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제가 좋은 길잡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J는 책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자체는 나쁘지 않게 읽었는데 특별히 마음에 들지도, 의문이 생기지도, 말 할 거리도 없다는 반응이었거든요.
글쓰기에 관련해서는 줄거리 요약을 특별히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힘들더라도 연습을 해 보도록 도울 계획입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로 알고 있는데, 책을 통해 쓸거리를 뽑아낼 수 있다면 더 풍부한 글을 써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수업을 마치고는 고등과정 담임 중의 한 분인 수리쌤이랑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수업 자체의 재미도 재미지만, 마치고 나서 다른 사람들과 이렇게 수업을 돌아보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저는 참 좋아요.
강사 모임 같은 게 있어서 다른 분들이 아이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지 듣고,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면
또는 아이들의 부모님과도 이야기를 나눠 볼 기회가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D

참, 다음 주는 고등과정 아이들의 중간 방학이라 휴강입니다!
나름 두 달을 꼬박 달려왔으니 이제는 달려온 길을 좀 돌아보고, 휴식을 취할 때가 된 것이겠죠.
이 때 이후의 계획도 조정하게 된다는데, 그러면 아마도 제 수업에는 두 명 또는 세 명만 남아 있을 듯해요.
그렇게 수업을 하게 된다면 좋긴 하겠지만 너무 제 성향에 맞는 사람만 골라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좀 찔렸는데
교장쌤도 다른 선생님들도 그것을 별로 문제 삼지 않으셔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전 이런 점에서 성미산이 좋아요 >_<)

그럼, 일곱 번째 수업 후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