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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3학년 4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멘토링과 교생실습의 기억이 혼합된 듯한 꿈이었는데, 어쨌거나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나니 반갑더라구요.
교생들을 보내놓고 잘 지내고 있을지, 뭐 선생님들 말씀으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진다고 합니다만 ^_^

교육실습을 하는 동안 담임 교사의 역할을 해 볼 기회가 세 번 있었습니다.
그래봤자 담임 업무를 다 맡아서 할 수는 없고, 조례 종례를 하는 것이 전부긴 했지만 수업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종례 때는 이미 아이들의 마음이 학교 밖을 나선 상태이기 때문에 긴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서,
저희 반의 경우 주로 조례 때 10분 정도, 교생들이 준비해 온 이야기를 해 주는 식으로 진행을 했었습니다.

제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조례에서 했던 이야기는 바로 '버킷리스트'에 관한 것이었어요.

저도 조례를 준비하면서야 처음 찾아봤는데, 버킷리스트는 'kick the bucket'이라는 표현에서 왔다고 해요. 왜, 목을 매달아 죽을 때(아침부터 이걸 설명하려니까 좀 그랬어요=_=) 양동이를 거꾸로 엎어 놓고 탁 차서 꼴까닥하는, 그런 그림을 생각하시면 될 거에요. 이런 연유로 kick the bucket 하기 전에, 즉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바로 버킷리스트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첫 번째 조례에서는 먼저 아이들에게 '버킷리스트'라는, 잭니콜슨과 모건프리먼이 주연한 영화의 예고편을 보여 주면서 '버킷리스트'가 무엇인지 알아내 보라고 했어요. 다들 그것이 '죽기 전에 꼭 하고픈 일들의 목록'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채더라구요 :) 다음으로는 각자 자신의 버킷리스트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게 잠시 시간을 준 뒤에, 나누어 준 작은 종이에 적어 보라고 했어요. 부설여중 학생들은 '생활록'이라는 일종의 학교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고, 교생들은 실습 기간동안 그것을 검사하면서 학생들에 대해서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기 때문에 거기에 붙여 놓으라고 했지요. (나중에 몇몇 학생들의 생활록을 보니 정성들여 다섯 가지를 적어놓았더라구요. 세계일주, 사고 싶은 옷 다 사기 등등 학생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일주일 뒤에 있었던 두 번째 조례에서는 저의 버킷리스트를 공개했어요. PPT를 띄워 놓고 진행했는데, 다른 것들(이를테면 '책으로 가득한 나만의 서재 가지기', '괜찮은 책 한 권 쓰기', '엄마랑 삿포로 여행가기')은 그냥 적어 놓고, 1번만 물음표로 해 놓았지요. 그런 다음 그 1번에 들어갈 말을 이렇게 보여 주었어요.

(          )에 가서 (    ) 만드는 일 배우기.

첫 번째 괄호는 나라 이름이라고 힌트를 주었더니 미국, 일본, 중국 등등 다양한 나라가 나온 끝에 한 아이가 정답, '프랑스'를 맞혔습니다. 그러고 나니 두 번째 것은 다들 쉽게 알아채더라구요. 답은 '프랑스에 가서 빵 만드는 일 배우기' 였습니다 :)

이어서, 프랑스 빵집의 사진을 보여 주면서 왜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빵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은지 이야기를 했는데, 이 부분, 제 경험을 다른 사람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풀어놓는다는 것이 좀 어려웠어요. 저는 거칠고 곡물 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은 프랑스의 빵들이 좋고, 아침 일찍 갓 구운 빵을 사러 빵집으로 향하는 그 설렘이 좋고, 사는 사람이 마음대로 빵을 고를 수 없고 오직 빵집 주인의 손을 거쳐야 하는 시스템이 좋은데- 사실 이런 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느끼기 어렵잖아요. 공감하기는 더 어렵고. 그렇지만 어쨌거나 사진을 동원하고 '장인정신' '자부심' 등의 단어를 사용해가며 저의 꿈이 프랑스 빵집에서 물과 소금으로만 반죽하는 단순한 빵들을 만들어서 파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에게 던진 질문이 이것이었어요.
"그렇다면 왜 선생님은 지금 프랑스에 안 가고 여기에 있을까? 그게 꿈이면, 가면 되는 거 아닐까요?"
그랬더니 아이들, 예리하더군요. "돈이 없어서요~" (네, 맞습니다!) "학교 다녀야 해서요~" "선생님 해야 해서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맞아요 여러분. 선생님이 지금 프랑스에 가서 빵 만드는 걸 배우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프랑스어도 더 잘 해야 돼요. 그런데 선생님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거든. 그리고, 선생님은 오래 살 건데 지금 이걸 다 이뤄버리면 나중에 더 하고 싶은 일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건 좀 아껴 놓기로 했어요. 나중에 마흔 살? 그 쯤 되면 이걸 이루러 갈 보려고 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여러분들이 버킷리스트에 쓴 것들을 읽어 보았는데, 지금 당장 이루기 어려운 것들도 많이 있더라구. 내일로 학교 그만두고 세계일주 갈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없죠.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지금 해야할 일을 하면서 때를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버킷리스트에 적은 것들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올 거에요. 대신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잊어 먹으면 안 된다는 거에요. 가끔 주위를 보면, 돈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분들은 나중에 그런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모두들 자기 버킷리스트에 적은 것들을 잘 기억하세요. 알았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가 얼마나 의미있게 다가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로 하고 싶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사실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할 때,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눈이 반짝 반짝 빛나는 아이들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거든요. 저에게 있어 '배운다는 것'은 제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이고, 그런 만남을 통해 제가 변화되는 것이기에(이번에 저희 팀이 맡았던 3학년 국어 단원의 주제도 이것이었지요!) 그 시간은 다른 것에 비할 수 없이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인데, 슬프게도 아이들에게는 학교 수업이 그런 것 같지 않았어요. 꼭 국어 수업이 아니라 좋으니, 아이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꿈을 꾸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그런 생각에서 이 이야기를 했었답니다.

사실 위와 같은 조례를 할 때나 국어 수업을 할 때나, 저는 모두(100%는 아니지만, 80%정도?)가 제 이야기로 인해 변화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지도선생님인 홍쌤께서는 제가 실습록에 그런 조바심을 드러낸 것을 보고 이렇게 적어주셨어요.

'교육의 성과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요. 오늘 내가 해 준 사랑의 말이 먼 훗날 누군가의 마음에서 싹을 틔워 용기를 주는 씨앗일 수도 있습니다. 보이는 결과에 연연하면 교사는 자꾸 무기력해집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가르치세요.'

다시 읽어도 정말 멋진 선생님의 말씀 :) 
이런 선생님이 계셨으니 교육실습 기간 동안 제가 자꾸 교사보다는 학생의 마인드를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하지 않나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