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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양귀자 (살림,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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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귀자 씨는 이 책을 쓰면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이 전부 '첫 독자'이길 꿈꾸었다 했습니다. '소설에 관해 유포된 어떤 독후감에도 침범당하지 않은 순수한 첫 독자의 첫 독후감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존중하기 위해, 아직 <모순>을 읽지 않은 분들은 이 글을 읽음으로써 소설의 '순수한 첫 독자'가 될 기회를 빼앗길 수도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

■ 왜 읽었을까?
사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벌써 3년 전, 친구 ㅊㄷㅂ양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소설이란 몹시도 취향을 타는 것이라 누가 강력히 추천을 한다 해도 덜컥 믿고 읽을 수는 없지만, '비슷한 감수성의 친구'는 그래도 비교적 믿을 만한 중매쟁이에 해당된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읽어봐야겠다 생각은 했으나 늘 그렇듯 까먹고 쭉 지내왔는데, 이번에 교육실습에서 양귀자 씨의 '원미동 사람들'을 가르치다 보니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말고도 우리 과 교생들 대부분이 한 달 내내 자기가 가르치는 문학 작품 외에는 거의 읽지 못 한 상태여서, 나중에는 무엇을 보아도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 작품으로 귀결되는 슬픈 상황이 발생했다. 2학년을 맡은 교생들의 입에서는 <기억 속의 들꽃>의 '명선이'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었던 것 같다 =ㅅ=)

■ 어땠냐고?
전체적인 느낌은, 일일연속극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 아마도, 요즘 소설들은 주로 특이한 소재를 끌어 와 사건을 전개시키는 반면 이 90년대의 소설은 평이한 인물들을 바탕으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일연속극이나 주말연속극에 어김 없이 등장하는 부잣집과 서민층 가정의 모습이 인물들에게 오버랩되었다. 제목과 작가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기 때문인지, 큰 감흥은 없었던 것 같으나 다만 소설에 담겨 있는 메시지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사실, 나는 두고 두고 이 책을 기억하게 될 것 같긴 한데 그 이유는 소설 자체의 내용이나 구성 때문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의 마지막 장이 찢겨있는 바람에 마지막 한 장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나절 만에 책을 독파하고 마지막 장을 펼쳤는데 갑자기 이야기가 끊어지는 황당함이란... (제발 문화시민의 기본 자세를 가집시다!!)

■ 무슨 생각을 했냐면...
1. 대체 무엇이 행복한 삶일까. 모순이라는 책 제목이 의미하듯, 행복만으로 가득한 삶이 오히려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272쪽) 안정된 삶, 거친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를 우리는 꿈꾸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면 더 이상 노를 저을 의지를 잃어버리고 마는지도 모르겠다.   
2. 흔히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할 때는, 그 두 사람 다 매우 괜찮은 사람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소설에 나오는 두 남자, 김장우랑 나영규는 둘 다 100% 멀쩡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아, 너무 현실적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서 '둘 중 누가 괜찮나' 보다는 '둘 중 누가 덜 이상한가(견딜 만한가)'를 자꾸 생각하게 되었는데, 나로서는 김장우의 희미함이 정말 참기 어려웠다. 읽다가 막 짜증이 나거나 버럭거리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왜 그런 점이 그렇게 싫은지는 알 수가 없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 (중략)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나의 인생에 있어 '나'는 당연히 행복해야 할 존재였다. 나라는 개체는 이다지도 나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서 꼭 부끄러워 할 일만은 아니라는 깨달음,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20쪽)

내가 누군가에게 정색을 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인지 그것조차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내겐 사랑에 꼭 필요한 맹목이란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막 맹목적이지 못한 사랑이 하나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탐색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며, 선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맹목적이지 못한 사랑의 대가일 것이므로. (91쪽)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 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210쪽)

그러나 나는 그런 김장우의 얼굴에서 문득 아버지의 얼굴을 읽어 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한 법이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 버린 아버지처럼. 김장우에게도 알지 못하는 생의 다른 길이 운명적으로 예비되어 있을지 몰랐다. 지금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사랑조차도 넘쳐 버리면 차라리 모자라는 것보다 못한 일인 것을. (254쪽)

어머니는 여전히 행복했다. 이젠 완전히 누운 채로 대소변을 받아 내게 하고 쉴새없이 헛소리를 해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지루하지 않게 했다. 면회갈 때마다 도무지 철들 기미를 보여 주지 않는 아들도 어머니의 삶을 지리멸렬한 것으로 떨어뜨리지 않게 도왔다. 부쩍 말수가 줄고 홀로 처박혀 있길 좋아하는 나, 안진진의 우울도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준다.
아버지 시중 때문에 결국 어머니는 가게에 점원 한 사람을 두었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에서 점원 월급까지 나가고 보니 그것 또한 어머니의 나날을 긴장으로 채워 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더욱 바빠졌고 나날이 생기를 더해 갔다. 아, 어머니의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