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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서영남 (휴,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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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읽었을까?
방학 하고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자꾸 집에서 뒹굴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그 여유로운 시간을 좀 더 가치 있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민들레 국수집을 발견했다. 민들레 국수집은 전직 수사인 서영남씨가 노숙인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으로, 인천에 있다고 했다. 홈페이지와 여러 블로그에서 민들레 국수집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니 이 곳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올해 초 방송된 인간극장을 다운받아 보았는데, 참 감동적이었다. 그 감동이 이 책을 읽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 어땠냐고?
에세이니만큼 어렵지 않게 술술 잘 읽히고, 내용도 재미있으면서 따뜻하다. 사실 나는 인간극장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거기에 나왔던 내용도 꽤 있어서 그리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처음 이 책을 읽는 분이라면 더 큰 감동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들레 수사님(전직 수사님이시지만 많은 분들이 이렇게 부르는 듯하다)은 TV에서 방영된 모습도, 글에서 느껴지는 모습도 한결 같으셨고 그 모습에서 배울 점이 참 많았다. 책이라는 것이 은근히 취향을 타서 가볍게 선물하기가 어려운데, 이 책이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 없이 선물할 수 있을 것 같다 :)

■ 무슨 생각을 했냐면...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착한 이들이 많았다. 더 많은 것을 쥐고 놓지 않으려는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대표격인 민들레 수사님은 아무 조건 없이 가난한 이들에게 정성스러운 식사를 대접하는 분이다. 나라면 민들레 국수집에 하루에 여러 번 들러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혀를 쯧쯧 차고, 반찬을 편식하는 사람들에게는 잔소리를 늘어놓게 될 것 같은데 민들레 수사님은 오히려 몇 번이고 와서 드시라고, 좋아하는 반찬을 더 퍼드리기까지 한다. 신앙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요, 그냥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받아들이고 아주 느린 변화라도 일어나기를 마냥 기다릴 뿐이다. 민들레 국수집을 돕는 많은 분들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가진 것의 절반을, 아니 그 이상을 뚝 떼어 내놓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내 것을 아주 조금 내어놓을 때도 그것이 아깝게 생각되고 자꾸만 계산하게 되던데.
세상의 많은 이들은, 사실 나부터가, 이런 착한 이들을 오히려 바보라고 낮추어 보곤 한다. 예전의 나는, 이런 식으로 아무 대가 없이 도와줘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며, 그런 노숙인들에게 밥 한 끼 주느니 다른 가치있는 일에 돈을 쓰겠다고 속으로 잘난 척을 했었다. (그래놓고 막상 '다른 가치있는 일'에 돈을 쓴 적은 없었다, 물론.)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들에게 밥 한 끼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알았고, 또한 그들을 사랑받을 수 있는 한 명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바로 그런 계산하지 않는 바보스러움, 조건없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나의 하느님이 지금까지 나에게 준 것을 모두 철저히 계산하고, 내가 잘못한 것들을 어디에 적어놓고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아, 그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조금씩이라도 더 나의 하느님을 닮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내가 쓰고 남은 것이 아니라, 나의 귀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나눔을 실천할 수 있어야겠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민들레의 집은 모든 것이 자유롭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떠났다가 다시 오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물론 자립해서 떠나면 제일 좋은 일이다. 일하라고 잔소리하지도 않고 필요하면 수도원 수준의 용돈도 드린다. 자신이 원하면 자취할 수도 있고, 민들레 국수집에 와서 식사할 수도 있다. 민들레의 집은 '홀로서기' 할 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려준다.
국수집 손님들에게 방을 얻어 자기만의 공간에서 따로 살게 해 주고, 철이 들어 스스로 잘 살아보겠다고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아주 서서히 변화하고,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26쪽)

"사람들은 나눔의 참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옆에서 월요일마다 달걀 두 판씩 가져오시는 우체부 아저씨가 우연히 전화 내용을 듣고 황당했는지 한 마디 하셨다. 여분의 것, 나에게 필요 없는 것, 남는 것을 주는 것을 나눔이라고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체부 아저씨는 우편배달 일을 하면서 매주 월요일 점심을 굶는다. 지난해부터 매달 점심 네 끼를 굶어서 저금한 2만원을 2년간 모은 24만 원과 거기에 붙은 약간의 이자까지 국수집에 내놓았고, 올해도 그렇게 모아서 또 1년치를 내놓을 거라고 한다. 어쩌면 이렇게 멋진 사람이 있는지!
나눔이란 자기의 귀한 것을 나누는 것이다. 내가 먹기는 싫고 버리기는 아까운 것을 생색내고 싶어서 주겠다고 하는 것은 나눔이 아니다. (32쪽)

하는 일마다 뜻대로 잘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세상이 될까! 그저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지상의 천국이 지금 여기에서 시작될 수 있다. 암세포를 생각하면 쉽다. 암세포는 하는 일마다 잘된다. "번성케 하소서"라는 말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암세포가 하는 일마다 잘되어서 더는 번성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죽음으로 치닫는다. (64쪽)

가난하게 산다는 것, 돈이 없다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 혹은 해야 하지만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모든 일에 돈이 있어야 하는 세상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고 불안하고 불편한 일이다. 현실이 그렇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왜 그런가.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이란 물질적인 빈곤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은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삶을 말한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삶을 가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게 되어 있으며, 아무리 가진 것이 없는 빈곤한 사람이라도 이웃과 나눌 줄 모른다면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가난한 삶을 사는 게 아니다. (209쪽)

처음에는 김장을 한 후 저장할 곳이 없어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좋은 김장김치 저장법을 알고 있다. 바로 민들레 국수집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 김장을 할 수 없는 분들께 김치를 나눠드리면, 하느님께서 잘 보관해두셨다가 다음 해에 또 모자라지 않게 주실 것이다. (233쪽)

이 글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은 엄격히 말해 성실하고 정갈한 사람들도 아니고 오히려 그를 이용하려 들기도 합니다.
"필요하믄 죽을상 하고 기어 붙는데 어떡할 겨……"
이렇게 물봉으로 여기곤 하는데, 사실은 사람 정확히 본 겁니다. 갈릴레아의 불구자 노숙인들이 예수님 보기를 '매달리면 거절하지 못하는 분'으로 여겼는데 두루두루 같은 족속들인 것입니다.
그래도 서영남에게는 그들이 천사들입니다. 자신을 하느님 손길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추천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