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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갑자기 빵을 만들고픈 충동을 느끼고는 재료를 찾아봤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통밀가루와 냉동실에 잘 보관되어 있는 통보리가루를 보고, 전에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통밀보리빵을 만들기로 결정을 했지요. 대신에 이번엔 무화과가 아니라 시나몬 가루를 넣어 향을 더하기로 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겁도 없이 계량도 안 하고 대강 짐작으로 반죽을 시작했어요.

재료 : 통보리가루, 통밀가루, 글루텐, 시나몬가루, 아가베시럽, 소금, 이스트

통보리가루를 통밀가루보다 더 많이 넣고, 글루텐을 적당히(?) 넣은 다음, 소량의 소금과 이스트를 넣어 미지근한 물로 반죽을 했습니다. 순서가 좀 뒤바뀐 것 같긴 하지만 반죽을 하다 생각이 나서 시나몬 가루를 적당히 넣어 주고, 단 맛을 내기 위해 약간의 아가베 시럽도 넣었어요. 열심히 반죽하다 보니 왠지 몰랑몰랑한 빵 반죽이 아니라 단단한 수제비 반죽이 되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물을 조금 더 넣고 또 5분 정도 치대주었습니다.

 

완성된 반죽

색깔은 살짝 회색, 부드러운 촉감

면보를 씌워 따뜻한 곳에서 1시간 정도 발효를 시키고 나니 약속 때문에 나갈 시간이 되어 이 반죽을 어찌할까 고민을 하다가, 냉장고에서 숙성 발표를 시키기로 했어요. 과연 발효가 잘 될지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10시간 정도를 밖에 두면 분명 과발효가 될 것 같아서… 그러게 아무 대책도 없이 빵 만들기를 덜컥 시작하는 게 아니었지 말입니다!

아무튼 다녀와서 살펴보니 걱정했던 것에 비해서는 상태가 괜찮아 보였습니다. 처음 반죽의 2배 크기로 부풀 정도로 발효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손으로 눌러 보니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있었거든요. 반죽을 네 덩이로 나누어 동그랗게 만들고, 위에 덧보리가루(통밀가루는 다 썼기에)를 솔솔 뿌린 다음 예열해 둔 오븐에 넣어주었습니다.

네 덩이로 나누어 동그랗게 만들어 주고

덧밀가루를 솔솔 뿌려줍니다

그냥 반죽과

덧밀가루를 뒤집어쓴 반죽

 
놀랍게도, 오븐에 들어가니 애들이 쑥쑥 커지기 시작, 처음에 비해 1.5배 정도의 크기가 되었습니다.
윗부분이 살짝 타 버리기는 했지만 제가 이제껏 만든 빵 중에는 가장 만족할 만한 빵이었어요. 제가 사 먹은 빵들과 비교해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 정도였거든요! 보리가루 때문인지 속은 살짝 촉촉하면서 찰기가 있고, 시나몬과 통밀이 내는 향은 너무 진하지 않은, 딱 적당한 정도였습니다 :) 재료 별로 무게를 계량도 안 하고 만들었으니 다시 이 빵을 만들 수도 없을텐데, 한편으로는 이 점이 아쉽고 또 한편으로는 ‘단 하나의 빵’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특별하게 여겨집니다.

 

구워져 나온 빵

윗부분이 타 버려 안타까웠어요

가까이서 본 모습

옆 부분은 적당히 구워졌습니다

반으로 자르니, 우왓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워요

성공적입니다 :)

씨앗이 든 조청잼도

무화과잼도 잘 어울려요


빵을 만들 때면 그런 느낌이 있어요. 손으로 무언가를 빚어서, 거기에다 생명을 불어넣는 느낌이랄까요 :) 그냥 가루에 불과한 밀가루가 물과 소금, 이스트를 만나서 부풀어 오르고, 그것이 다시 오븐에서 구워지는 과정을 거쳐 고유의 향과 맛을 가진 ‘빵’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닌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런 매력 때문에 제가 빵에 그렇게 끌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아마도 이 빵과 100% 똑같은 빵을 구울 수는 없겠지만, 자꾸 자꾸 굽다 보면 언젠가 비슷한 빵을 만나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런 희망과 함께, 저의 빵굽기 모험은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