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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국내도서>인문
저자 : 김정운
출판 : 쌤앤파커스 200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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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읽었을까?
엄마가 읽어보시고 재미있다고 강력 추천을 해 주셔서, 때마침 추석이라 집에 내려간 김에 짬짬이 다 읽고 올라왔다. 제목에서 왠지 거부감이 느껴졌었는데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남자들의 이야기일 것만 같아서-) 읽어보니 전혀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책이었다. 그냥 주절주절 적은 에세이가 아니라, 저자가 공부한 분야를 자기의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라 특히 좋았다.

■ 어땠냐고?
다 읽고 보니, 읽는 도중 책 귀퉁이를 접어놓은 것이 열 개를 넘었다. 즉, 공감가는 부분이 꽤나 많았다는 거다. 대체 왜 우리나라에는 재미없게 사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걸까, 그런 궁금증이 있었는데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어서 속이 좀 시원했다. 물론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찾아낸 이유들이기에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 하겠지만, 다른 사회학, 인문학 책에서 찾지 못 했던 이야기였기에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인생을 재미없게 살아가는 저 윗분들이 좀 많이 읽었으면!

■ 무슨 생각을 했냐면...
하나.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에서 나를 그토록 무너지게 했던 것의 정체를 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 근원적 불안을 야기했던 것임을. 대충 그렇게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그냥 '내가 나름대로 이유를 분석해 본 것'과 '어떤 분야의 권위자라는 사람이 글로 적어놓은 것을 읽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도 나는 그 때 내가 느꼈던 외로움이 내가 단단하지 못 해서 나타났던 거라고, 나의 약함을 탓하고 있었는데 그건 그냥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었다. 특히 95쪽을 읽으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적어 준 저자에게 감사하고픈 마음이 막 피어났다 :) 
둘. 이 책은 또 다른 부분에서도 내 삶에 지지를 보내는 느낌이었는데, 그건 바로 '재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나의 삶의 방향이었다. 나는 2005년에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은 이후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지, 나의 리듬을 찾기 위해 많이 고민했고, 이제야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조금씩 발견하고 거기에 맞추어 살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때로 주변의 흐름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프랑스에서 아침 7시 반에 빵을 사러 나가서 여러 빵 중에서 하나를 골라 값을 치르고 종이봉지에 담긴 빵을 들고 집으로 돌아갈 때 너무나 행복했지만, 이것을 나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얼른 직장을 구하고, 통장에 돈을 차곡 차곡 쌓아놓고, 결혼할 사람을 찾고, 가정을 꾸리는 - 이런 과정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느끼는 재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 어린아이 같지 않느냐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행복해지고 힘이 난달까 :)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차피 후회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짧게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심리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짧게 후회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확 저질러버리는 편이, 고민하며 주저하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건강하다. 후회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40쪽)

맛있는 게 뭔지를 알아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삶의 재미와 행복이 뭔지 알아야 즐겁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행복하고 재미있는 삶의 구체적 조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상품이 경쟁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명품'은 사람을 행복하게,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이는 단순히 상품 생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일궈나가야 하는 구체적 삶의 조건들도 '행복과 재미'라고 하는 가치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 좋은 것이 뭔지 도무지 아는 바가 없는데, 어찌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58쪽)

아, 심리적으로 한번 무너져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멀쩡한 사람도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 이렇게 한번 무너지면 정말 초라해진다. 처절하게 무너진다. 그리고 그 위기는 살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 심리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 교만하지 말지어다! 나도 내가 그렇게 쉽게, 우습게, 간단하게 무너질 줄 몰랐다. 두렵고 떨려서 차마 내 기숙사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밤만 되면 울며 베를린 밤거리를 헤맸다. 김 서린 창문 너머의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멍하니 서 있다가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95쪽)

이 끝없는 외로움에서 나를 구해낼 방법은 없었다. 외로움에서 시작된 내 두려움의 실체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지구 반대편의 낯선 이국땅에서 나는 생전 처음 내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황당한 상황에 부딪힌 것이다. 이 모든 고통의 근원은 도무지 내가 누군지가 확인되지 않는 것이었다. / 고국에서 내 존재는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내 아버지의 아들이고, 내 친구의 친구고, 내 형제의 형제이며,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였다. 내가 누군지에 대해,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 이곳 베를린에서는 전혀 당연한 거이 아니었다. 모든 외국인을 불법체류자로 의심하는 고약한 표정의 이민국 직원 앞에서 나는 내가 누군지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증명해야 했다. 내 모든 사회적 관계는 서류로 증명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내 외로움은 바로 이 확인되지 않는 내 존재에 대한 근원적 불안의 외피였을 뿐이었다. (96쪽)

불안하기 때문이다.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사는 까닭이다. 모든 결과는 '과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이 사실을 아주 자주 망각한다. 그리고 오직 '결과'만 가지고 서로 비교한다. 화장실에서 옆 사람의 그곳을 흘끔거리며 열등감에 젖는 것처럼, 타인의 사회적 지위나 연봉 따위와 자신을 비교하며 한없이 움츠러든다. 오늘을 살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결과'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108쪽)

나는 절대 스스로 확인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나와는 다른, 또 다른 어떤 것에 의해 확인되는 존재다. 그러나 나를 확인해야 하는 그 대상이 쉽게 사라지는 것이라면 존재불안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래서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는 것이다. (119쪽)

이들 세 집단의 표정은 한결같다. 사진만 봐서는 어느 집단인지 서로 구별하기 힘들 정도다. 모두들 아주 힘 줘, 입 꽁지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 공유 시스템이 한결같이 망가져 있다는 이야기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반성의 메타코그니션 또한 망가져 있다. 모두들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서로 딴소리 한다. 이 현상은 TV 토론 프로그램만 봐도 아주 간단히 확인된다. 어쩜 저렇게 토론 시간 내내 자기 하고픈 이야기만 할까 싶다. /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해 서로 목소리 높여가며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는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니, 남는 것은 동물적인 공격성, 분노, 적개심뿐이다. 분노, 적개심, 공격성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다들 '건들기만 해봐!' 하는 표정이다. 미칠 지경이다. 아니, 도대체 왜들 이러고 사는 것일까? (146쪽)

사는 게 재미없는 이들은 세상이 '뒤집어지길' 원한다. 2002년 월드컵처럼 온 국민이 나와 빨간 옷 입고 세상이 '뒤집어져야만' 재미있다고 느낀다. '엄청난 재미'에 대한 환상이다. (189쪽)

'순서 바꾸기'가 망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불안이다. / 자신의 이야기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불안 때문에, 계속 반복해서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 내가 하는 이야기에 나 스스로가 먼저 설득당해야 한다. 스스로도 설득당하지 않는 이야기에 상대방이 설득될 리 만무하다. (203쪽)

학교나 여가나, 그 본질은 한가로움을 즐기는 동일한 심리적 과정이다. 한가로움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라는 것을 그리스의 현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가장 즐거운 일은 공부하는 일이다.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왜곡된 공부만 했다. 그래서 공부가 재미없는 것이다. // 학교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공부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학교다. 적어도 미국이나 유럽의 학교는 이런 교육학적 이념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는 '남의 돈 따먹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으로 전락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 들어가, 높은 연봉을 받는 좋은 직장을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만 관심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녀도 평생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아간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로 존재를 확인할 뿐,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은퇴 이후 정말 황당해진다. (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