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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갔다.
방학 하고 나서 혜화역에 20번쯤 갔지만, 공연은 한 번도 못 봤는데..iㅁi
그러고 보니 연극을 본 것 자체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오늘 본 연극은 <썸걸즈>였는데,
영화 감독인 한 남자가 결혼을 앞두고 옛 애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된 줄거리다.
처음에는 이 남자가 뭘 하려는 건가... 의문을 품고 보려고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보면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그리고 그러기 귀찮아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연극을 보았다.

사실 연극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반응!
대략 7~80% 정도가 여성 관객이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는 관객들이 한 목소리로 주인공 남자한테 짜증냈다- 크크
정말 '으으~ 저 놈!' 이런 반응이 절로 나오는 주인공이긴 했어 뭐.

( ↓ 자, 여기서부터는 연극 내용도 나와요+_+ )

주인공 남자가 만나는 옛 애인은 모두 네 명이다.
이 네 명은 모두 다른 스타일이고, 만났던 시기도 헤어진 이유도 다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남자가 이 여자들을 만나려고 하는 이유는 똑같다.

자기가 거의 여자를 버리고 도망치는 식으로 헤어졌기 때문에,
자신이 했던 잘못들을 바로잡고(어떻게?) 깔끔하게 마무리 지으려는 것.
이라고 짐작을 했었는데...
네 번째로 나오는 여자에 의해 호텔방에 숨겨져 있던 비디오 카메라가 발견되는 장면에서,
아 도대체 어떤 것이 이 남자의 진실인 거야?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적당한 위로를 통해 자신의 죄를 씻어내려는 고해성사였는지
아니면 다음 번 영화를 위해 이야깃거리를 마련하려는 일종의 쑈였는지.
또는 자기가 버린 여자들이 결혼상대보다 확실히 못 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자신의 선택은 최상임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는지.
뭐 여러 가지를 적절히 함께 해결하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었겠지.

아무튼 남자가 끝까지 자기는 '좋은 놈'으로 기억되려고 발버둥을 쳤기 때문에
나중에는 관객들의 분통을 터지게 만들었던 거다.
상대가 받은 상처를 진심으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저 '미안해', '아직도 사랑해' 따위의 말로 적당히 넘어가려는 이 남자.

남자가 혼자 도망쳤을 때 홀로 이겨내야했던 상대는 거의 죽을 정도로 상처 받았다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암튼!) 마지막에 나온 여자의 말이...
문득 삼순이에 나왔던 대사를 생각나게 했다.

돌아온 희진이 자신을 쌀쌀맞게 대하는 진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거의 싸우다가) 던지는..

"적어도 죽지는 않았잖아! 나 그렇게 떠나고 너 죽었니?
 멀쩡히 살아서 니 할 일 하고 있잖니... 그럼 됐잖아. 그게 그렇게 화 낼 일이야?"

음, 주인공 남자와는 별개로, 난 이 여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도 당신들 안 죽었잖아요. 상처 받았지만, 죽지 않았잖아요.
저런 찌질한 남자 따위 내버려두고, 멋지게 살아요!



자, 결론적으로,
언젠가 누가 날 버리고 도망가면 한 번쯤 볼 만한 연극!
'그래 그 놈이 저런 찌질한 놈이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사람이 날 버리고 간 것은 결코 내 잘못이 아닌 거라고,
나는 충분히 다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임을 되새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