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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포스팅에 뜸했던 곰파입니다. 생각할 것들이 많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달까요.
이제는 마음도 정리가 되고 다시 괜찮은 상태가 되어서, 이제까지의 저를 돌아보는 의미로 지내온 이야기를 간단히 적어봅니다.


10월 28일에 발단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늘이 11월 22일이니 벌써 근 한 달이 지난 셈이다.

처음 한 주 정도는 몸도 마음도 부은 것 같이 몽롱하고 의욕이 없는 상태였다.
이집트에 관한 책만 무작정 찾아 읽었고, 그 외의 시간은 시동이 걸리지 않는 낡은 차 마냥 덜덜거리면서 지냈다.

발단식 마치고 곧바로 찾아간 이태원 이슬람 서점에서 '사마르'라는 이집트 친구를 소개받았고,
그 친구와 일대일로 아랍어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 꼬부랑 글씨만 봐도 머리가 아프고 울렁거렸다.
그래도 가르치는 방식 자체는 마음에 들었고, 한국말도 잘 하고 성실한 친구라 조금씩 아랍어 공부에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1월 10일에 61기 국내훈련이 시작되고, 그 주부터 아랍어 현지어 수업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자리를 찾게 되었다.

아, 11월 11일에 페루 사람들의 출국이 있어서 그 날은 괜히 마음이 울적하고 하늘만 봐도 마음 한 켠이 싸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이제는 사람들 블로그에 들어가서 사진을 보거나 글을 읽어도 아주 조금만 마음이 아프니까 많이 괜찮아진 것 같다 :)
(그 때 공항에 나가서 웃으면서 손 흔들어 주며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한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페루 팀 >ㅁ<)

영영 익숙해질 것 같지 않던 아랍어 글씨도 자꾸만 써 보고 읽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대강 알기는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모음 부호가 없으면 여전히 버버버버 거리게 되니까 좀 답답한 심정.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나도 알고 있다!

사마르랑 하는 수업에서 사용하는, 영어로 된 이집트 아랍어 교재가 아주 괜찮아서 (늘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나라 어학교재들은 정말 좀 아니다. 진짜로 꾹 참고 인내심으로 공부할 사람이나 볼 수 있게 책을 만드는 듯) 국내훈련 외의 시간에는 계속 그 책을 공부하면서 지내고 있다. 사실 같이 이집트로 가시는 분들은 국내훈련 때문에 스케줄이 빡빡해서 제대로 공부할 시간도 없을 텐데, 나만 이렇게 따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좀 호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 때문에 괜히 스트레스 받지 않으셨으면 해서 수업 시간에 나서거나 하지 않으려고 자제하고는 있는데. 아무튼 좀 조심스럽다.

음, 어떤 사람들은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라고, 그냥 국내훈련에서 하는 아랍어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냐고 생각하겠지만,
글쎄, 그냥 나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한 것 같지가 않다'고나 할까.

'가서 먹고 살기 위해서 언어가 필요하다'는 실용에 따른 목적은 둘째 치고, 어떤 언어를 배우는 것은 나에게 무엇보다도 좋은 취미활동이며, 그 언어를 배워서 작은 것이나마 표현해 볼 때의 즐거움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아랍어가 좀 까다롭게 보이긴 하지만, 라틴어와 희랍어를 배운 뒤로 웬만한 언어들은 '그러려니~' 하는 좋은 태도가 생겼다 :P) 사실 한국어도 외국인에게는 꽤 어려운 언어일텐데, 나의 학생들이 될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라려면 나도 그들의 언어를 열심히 배우는 것이 도리 아닐까 :) 에이, 뭐 이런 변명같은 이야기 다 그만두고, 그냥 난 언어만큼은 배우는 것을 무작정 좋아라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두 번째 선택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집트도 내가 선택한 곳이고,
그렇다면 첫 번째 선택인 페루에 내가 쏟아부었던 열정만큼 이집트에도 정성을 들여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 페루의 궤도에서 이집트의 궤도로 무사히 옮겨와, 달라진 세상을 살고 있는 곰파, Antonia, Fairouz * (فيروز).

* 제 아랍어 이름인 فيروز는 아랍어로 '터키석'을 의미합니다 :) 발음도 '파'와 가깝고, 의미도 마음에 들어서 골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