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국경없는 의사회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엘리어트레이턴
출판 : 우물이있는집 2003.06.20
상세보기

■ 왜 읽었을까?
코이카 사무실에서 읽을 만한 책을 둘러보다가, 국경없는 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에 관한 책들이 눈에 띄어서 집어들었다. 전부터 이름은 많이 들어왔던 단체이지만 실제로 아는 것은 전혀 없는 듯한 생각에서였는데, 읽어보니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없었구나 싶었다.

■ 어땠냐고?
이 책은 먼저 읽었던 '국경없는 의사회' 책과 비교하면 훨씬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준다. MSF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오로지 인도주의적인 동기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 현장에서는 TV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 외에 불협화음도 종종 불거져 나온다. 이 외에도 잘 생각하지 못 했던 MSF의 부정적인 면모들까지 다루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꺼내놓는 점이 오히려 이 책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 주는 측면이라 생각된다.   

■ 무슨 생각을 했냐면...
아무리 내가 옳은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가치라 할 지라도 가끔은 그에 대한 의심이 들게 마련이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나쁜 선택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은 생각지도 못 한 때에 찾아와 머리를 어지럽힌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 대한 믿음이 옅어질 때 읽으면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또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분명히 이 세상에 있다. 그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는 이것으로 충분히 안심이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사랑이란 자기희생이다. 이것은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이다. - 레프 톨스토이

실제로 우리가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 하지만, 우리가 전달하려는 것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국경의 장벽을 없애고 싶어 합니다. (81쪽)

MSF 내부에서는 서로 동등하게 헌신하고 있음을 인지하도록 직함과 성을 생략하고 이름만 부르게 되어 있다. 사회적인 거리감, 친밀도를 높이고 팀워크를 강화하며, 사회에서 존재하던 위계질서에 대한 기억을 없애기 위한 연습이다. (85쪽)

MSF인이 된다는 것은 비인간화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반소외의 경험이다. 이곳에 속해 있다는 멤버쉽은 그들을 자유롭게 하고, 행동할 기회를 잡았을 때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해방감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순수성에 대한 강한 확신, 이 단체와 그들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과 더불어 나온다. 굳건한 신념과 강한 만족감이야 말로 그들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지탱해 주는 원천이다. (101쪽)

우리가 하는 일이 가정을 이루고 장사를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건 아니에요. 그 모두가 중요한 일입니다. 때때로 나는 여동생처럼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게 더 나은 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들 역시 가끔은 셀리나처럼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거예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일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생활이 좋아요. 그것이 또한 나 자신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116쪽)

문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 곳 사람들 스스로 이런 의약품이나 장비를 구할 수 없고 구매할 능력도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떠나면 자원들도 우리와 함께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잠시 긍정적인 효과를 보게 할 뿐이고, 우리가 떠난 뒤에 남는 것은 - 삶이 일시적으로 구원을 받았거나 풍요로워진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 새롭고도 뿌리 깊은 좌절감이에요. 이제 그들은 또 다른, 더 풍요롭고 안전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건 그들의 가난하고 황폐화된 터전에서는 결코 누려보지 못할 삶이기 때문에, 우리가 떠나고 나면 시기와 분노와 좌절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200쪽)

그러나 적십자나 다른 훌륭한 단체들의 정신은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호전시켜 보려는 것이지 전쟁을 끝내겠다는 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인도주의적인 원조가 전쟁을 더 오래 끌 수도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사실 그럴 여지가 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원조활동으로 전쟁 양상이 좀 더 공정해지고 덜 잔인해질 수 있다면 그 또한 충분한 명분이 되며, 인도주의가 지향하는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민간인들이 덜 굶주리고 덜 고통받고, 덜 고문당한다면 전쟁이 좀 더 길어지는 것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204쪽)

모리스가 말하는 가장 생각 없는 질문이란 이런 거다. "'그냥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싸우다 서로 죽도록 내버려두면 안 될까?'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믿는다면, 그런 태도로 인간의 고뇌를 보고 등돌릴 수 있다면 아마도 MSF에 있지 않을 겁니다. (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