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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4월 17일 일요일로, 오전에 현지적응훈련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12월 27일에 시작된 이집트 현지적응훈련이 거의 4개월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끝을 맺게 되었네요.
내일이면 모든 짐을 가지고 룩소르로 내려가게 되는데, 앞으로 20개월 동안 아무 탈 없이 활동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카이로를 떠나기 전 저에게는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이 곳에 사는 채식 블로거인 제니퍼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제니퍼는 이집트에 온 지 15년이 된 미국인으로, 인터넷에서 '천 개의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블로그, "알프 하나(Alf hana)"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에 오기 전 여기에서 두부나 두유 등의 채식 식품을 구하는 것이 가능한 지 궁금했던 저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던 사람이라, 카이로에 도착 후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한 번 만나기로 했었는데, 시위 때문에 계속 미뤄졌던 그 만남이 드디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 제니퍼네 집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해서, 토요일인 어제 공항 근처의 '헬리오폴리스' 지역 지하철 역 앞에서 만나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제니퍼의 하우스메이트, 이집트인 메리와도 인사를 나누고 일단은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제니퍼가 준비한 음식은 비건, 즉 고기 뿐만 아니라 우유나 버터 등의 유제품도 들어가지 않은 완전채식으로 만들어진 이집트 음식들이었어요. 기본적인 샐러드와 한국으로 치면 토란에 가까운 '타로'가 들어간 수프, 고기 대신 콩단백을 사용해서 만든 미트볼 '코프타', 하얀색 베샤멜 소스를 얹은 파스타와 현지식으로 조리한 밥까지 정말 풍성하고 하나 하나 맛있었습니다.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강한 저로서는 채식을 시작한 뒤에 이집트에 온 이상 음식 문화를 경험하는 데 따르는 제약이 조금 아쉬웠는데, 그런 아쉬움을 모두 날려주는 식사였던 것 같아요.   
  

예쁘게 차려진 식탁

모든 음식을 담아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메인음식!

알록달록한 색깔의 샐러드

이집트 스타일의 타로 수프

고기없는 미트볼, '코프타'와 이집트 방식으로 요리된 밥

베샤멜 소스를 얹은 버섯 필링 마카로니



밥을 먹고 난 뒤에 빠질 수 없는 것은 후식! 요리를 좋아하는 제니퍼는 후식 또한 세 가지나 마련해 놓았습니다. 첫 번째로는 사과와 시나몬, 건포도 등의 혼합물 위에 오트밀을 얹어 바삭하게 구워낸 것(이름을 모르겠네요!), 두 번째로는 이집트의 디저트인 '마할라베야'로, 장미수와 두유, 설탕을 사용해 만든 푸딩 같은 것이었는데 저에게는 조금 많이 달게 느껴졌지만 나름의 독특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초코칩 쿠키가 있었어요.

후식도 세 가지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일단 한 접시에~

사과와 시나몬, 건포도 위에 오트밀

푸딩 비슷한 '마할라베야'

모두가 아는, 초코칩 쿠키


제니퍼, 메리와 함께 거실에 앉아 이 맛난 후식을 먹으면서, 택시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계속된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제니퍼가 처음 이집트에 오게 된 것은 자원활동을 위해서였는데, 그 당시 음악교사로 일하던 기독교 사립 학교의 교장이 바로 메리였다고 합니다. 자원활동으로 2년의 시간을 보낸 후에도 계속 이집트에 머무르기로 결정을 해서 그 뒤로는 영어교사들을 총 책임하고 교육하는 자리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학교에서 나와 메리와 함께 퇴직한 노인들이 머무를 곳을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분명 제니퍼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채식'이라는 관심사 때문이었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신기하게도 '교육'과 같은 공통의 화제도 있고 가치관도 비슷한 덕분에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비록 영어로 '불교', '우리나라의 1980년대' 같은 이야기들을 해야 해서 좀 머리는 아팠지만 말입니다 :)


제니퍼는 메리 외에도 멍멍이와 야옹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멍멍이의 이름은 노르카(정확하지는 않지만 뭔가 이런 느낌의 러시아 이름?)였고 야옹이의 이름은 진저였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둘 다 정말 예쁜 녀석들이에요. 그런데 이 예쁜 야옹이가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영악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 얻어내고야 만다며, 제니퍼는 진저를 '몬스터'라고 불렀습니다. 저야 손님으로서 몇 시간 안 있었으니까 그 실상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요.  

덩치는 큰데 엄청 순한 멍멍이

러시아에서 왔다고 하는데 여우를 닮았습니다

파르르한 털이 정말 예쁜 고양이

'진저'라는 이름의 미묘이지만

실제로는 '몬스터'가 별명이래요



제니퍼는 멋진 점심을 준비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제가 전에 부탁했던 콩단백(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포스팅을!)까지 구해다 주었습니다. 다음 번에 혹시라도 룩소르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그 때는 제가 한국식으로 맛있는 채식 밥상을 차려 주고 싶습니다 :D

이렇게 제니퍼와 메리와의 아쉬운 만남을 끝내고, 이번에는 택시를 타고 유숙소가 있는 도끼 지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요 며칠 사이에 카이로의 날씨가 부쩍 더워져서, 한국의 여름날을 생각나게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룩소르에 가게 되면 이보다 더 심한 상황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오늘 마지막으로 카이로의 선선한(?) 밤공기를 즐겨야겠습니다. 그럼, 룩소르에서 다시 인사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