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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9일 월요일 ~ 5월 15일 일요일


업무

1. 3주차의 고민과 비슷한 것 같은데, 학생들이 한국어나 영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교사의 준비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 언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의미 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게 그림카드 등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다.

2. 4학년 학생들 중 한 명을 보면 참 성실하고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잘 듣는데, 기초가 없어서인지 똘똘하지 않아서인지 단어 시험을 봐도 읽기를 시켜봐도 그냥 저냥이다. 이런 경우처럼, 똘똘한 학생은 공부를 많이 or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내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고 따라오는 반면 그렇지 않은 학생은 열심히 하는 것에 비해 효과가 적은 걸 볼 때면 좀 슬퍼진다. 잘 못 한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못 하는데 마냥 칭찬을 해 줄 수도 없고...  

3. 학생들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전에는 수업만 딱 하고 일절 잡담은 안 했는데 이번 주에는 쉬는 시간에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4학년 학생들과는 스티커 주는 문제로 승강이도 벌였다. (뭐 말은 이렇게 썼지만 사실 나는 엄격한 김선생이기에 자기는 스티커가 별로 없다는 둥, 오늘 수업에서 읽기 잘 했는데 그건 스티커 없냐는 둥 하는 이야기를 단칼에 잘라버렸다. 기준과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스티커 없는 것이 자랑이냐 이 녀석아 =_=) 남자애 하나는 지각해서 못 본 단어시험을 스티커 받고 싶은 마음에 자기도 보게 해달라고 하더니만 막상 내가 칠판에 단어를 쭉 적으니까 자신이 없어졌는지 "Forget about it" 막 이래서, 내가 "으이그 너도 남자냐"는 식으로 자극했더니(한국에서였으면 내 입에서 결코 나오지 않았을 말이고, 이 때 하면서도 스스로 검열을 하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이런 식의 도발이 여기에서도 통한다는 것은 확인했다) 결국은 반도 못 맞출 시험을 보고 갔다. 가면서 이제 자기가 남자 맞냐고 해서 사무실로 돌아가 혼자 킬킬 웃었다 :) 학생들이 그래도 나름 대학생 나이인데 스티커 하나에 목숨 거는 것을 보면 참 애들은 애들이구나 싶고, 손톱만한 사탕 하나에 눈에 불을 켜고 발표하던 사대부여중 아이들이 생각난다. 그러고보니 벌써 1년 전이네.

4. 방학 때 보충수업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다. 언어는 잠깐만 손을 놔도 까먹는데 얘네들을 방학 동안 내버려두면 그 이후에 어떻게 될 지는 불 보듯 뻔하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룩소르의 한여름 날씨인데, 그렇다고 집에만 있으면 내 생활이 너무 피폐해질 것이므로 정신보다는 몸이 좀 힘든 편을 택하려고 한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7월에 한 번 수업해 보고 나면 몸보다는 정신이 힘든 편이 낫다고 금방 꼬리를 내릴 지도 모르겠다.


생활

수요일까지는 한국으로부터의 슬픈 소식 + 수업으로 정신없이 지낸 탓에 뭘 하고 살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흠흠 =_=

목요일에는 4학년 학생 보충수업을 해 주러 학교에 갔다가 집에 오기 전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윈터팰리스 호텔에 들렀다. 사실 수영장이 어떤지 보러 간 것이었는데 가격이 예상보다 높아서 그냥 물어만 보고 돌아 나오다가 우연히 아이쉬 굽는 모습을 발견하고 한참 구경하다 왔다. (포스팅 예정) 저녁에는 시니어 선생님 집들이로 저녁 초대를 받아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고 왔다.

보통 1시에 있는 영어 성경공부가 이번 금요일에는 목사님의 사정으로 아침 10시로 당겨졌다. 마침 내가 간식을 가져가기로 한 날이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포켓 샌드위치와 짝퉁 후렌치파이를 준비했다. 포켓 샌드위치는 격려품으로 받은 참치캔을 활용할 겸 야채+참치+피자소스를 섞은 속을 넣어 샌드위치메이커에 구워 만들었고, 후렌치파이는 슈퍼에서 파는 파이지를 잘라 잼을 얹어 굽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파이지가 한 번 녹았다 얼어서인지 도통 안 떨어지는 바람에 좀 애를 먹었다. 결과물에 있어서도 처음에 의도했던 '결'이 전혀 살아있지 않은 바람에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이번 시간의 주제는 아브라함과 하느님의 계약이었는데, 처음에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러이러한 것을 해 주겠다고 하실 때 아무런 조건도 걸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창세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이 몇 번인데 아직도 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은 걸 보면, 너무 대충 읽었었나...

토요일은 집에서 청소와 빨래를 하다가, 저녁에 목사님 댁에서 비빔밥을 얻어먹고 교회에서 열리는 이집트 사람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러 갔다. 노래하는 재주도 악기 다루는 재주도 없지만 그냥 그런 자리에 끼는 것만큼은 좋아라해서 덜컥 동참하게 되었는데, 그 날 인터넷으로 처음 듣고 간 노래라 틀릴까봐 살짝 떨렸다. 반주 없이 부르는 거라 네 명이서 구간을 나눠 불렀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그걸 화음으로 듣고(실제로 화음이 들어간 부분은 맨 마지막의 '아멘' 뿐이었다) '하모니가 너무 좋다'며 격찬을 해댔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결혼이라는 뜻깊은 자리에 우리들의 노래가 작지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면 참 다행이다 :)

+ 사진에 나온 꼬맹이는 목사님 딸 Justine인데 정말 정말 예쁘다! 결혼식이 좀 늦은 시각이라 많이 졸려했다.


+ 이 사진은 일요일 아침에 미사 드리러 갔다가 나오는 길에 찍은 성당. 성모성월이라고 제단 옆을 예쁘게 꾸며놓았다.

아, 원래는 토요일이 수영 가는 날인데 금요일에 A형 간염 2차 주사를 맞은 관계로, 몸을 아끼는 나는 집에서 쉬었다. 다른 것보다 수영장의 물 상태를 생각할 때 굳이 거기에 들어가고픈 생각은 없었다고나 할까. 이번 주까지는 깨어진 리듬 탓에 룩소르 가이드북 번역 등을 포함한 생활계획표를 그리 잘 지키지 못 했는데 다음 주부터는 다시 계획에 충실한 나로 돌아가봐야겠다 =_=

+ 이 주의 손수굽기(홈베이킹의 다듬은 말이라고 한다)는 이탈리아인 수사님을 뵌 후로 갑자기 생각나서 만든 '치아바타'와 월인정원님 레시피로 만든 '무반죽 다섯가지곡물빵'이었다. 치아바타는 그냥 강력분으로 만들어서인지 성공적으로 나와서 맛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다섯가지곡물빵에는 한국에서 소량 가져온 수수와 조, 쥐눈이콩에다가 이집트에서 산 흰콩과 렌즈콩을 넣었는데, 빵이 좀 짭잘하고 통밀빵 특유의 냄새가 있기는 하지만 한 입 먹을 때마다 씹히는 콩이 매우 고소하다. 다음 번에는 소금 양을 좀 조절해서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좀 힘이 없어보이는 반죽이었으나

오븐에 들어가니 빵빵해졌다

완성된 치아바타, 성공적 :)


겉보기에도 거칠고 뭐가 많이 박힌 '다섯가지곡물빵'

단면을 보면 각종 콩과 곡물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