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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6일 월요일 ~ 5월 22일 일요일


업무

1. 예상보다 좀 빨리 이번 학기가 끝나게 되었다. 6월 중순에 기말고사가 있어서 원래는 6월 초까지는 수업을 할 생각이었는데, 학생들이 와서 다른 수업은 이번 주에 거의 종강을 했다고 하기에 공부할 시간을 줄 겸 이번 주에 종강을 하기로 했다. 수업을 안 한다고 과연 공부를 할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다른 과목 시험공부도 해야하니까 좀 봐줘야겠지. 

 

2. 방학 중 보충수업은 7월 초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지난 번에 적었듯이 언어는 안 쓰면 금방 잊어버리니까 방학이라고 그냥 놀 수가 없고, 9월에는 TOPIK 시험도 있으니 우리 학생들의 실력을 생각할 때 보충수업을 안 할 수가 없다. 중급 학생들에게 두 가지 시간대를 제시하고 하나를 고르라고 했더니 아침 9시에서 10시 반 수업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결국 월, 수, 토 세 번 9시~10시 반(중급) 11시~12시 반(초급) 이렇게 두 타임 수업을 하기로 정했다. 오전이라 좀 더울 듯하지만 그렇다고 저녁에 연강을 하면 집에 가는 시각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차라리 이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해 보고 너무 더우면 다시 조정을 해야겠다. 사실 내가 이번 보충수업의 타겟으로 삼았던 것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2학년 학생들인데, 의외로 4학년 학생들까지 참여하겠다고 해서 한글도 잘 못 읽는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좀 걱정이 된다. 그래도 일단 2번 지각=1번 결석, 3번 결석=아웃! 이라는 기본 규칙은 일러두었으니까 아예 공부할 태도가 안 된 학생들은 자연스레 떨어져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실하게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면 그래도 어떻게든 조금은 한국어 실력이 향상되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을 걸어볼 뿐이다.
 
3.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가르치는 사람의 기쁨 :) 4B반 관광한국어 숙제를 내 주었는데 내가 내 준 A4 학습지에 자리가 모자랐는지 다른 종이에 열심히 써서 제출했다. 사실 숙제를 걷을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숙제를 하느라 전 날 몇 시간 못 잤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학생들 수준에는 좀 어려울만 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유 잘 했어요~" 할 사람은 아닌지라 "그럼 여러분 한국어 숙제를 맨 마지막에 한 거예요? 다른 과목이 한국어보다 중요하군요?" 하고 얘기했더니 막 손사레를 치며 아니라고 했다. 여러분, 그냥 웃자고 한 말이었어요 =ㅅ=
 
4. 수업을 하다 보면 항상 시간이 부족한 것을 느낀다. 나름대로는 학생들이 읽고 쓰는 활동 시간을 반영해서 계획을 짜는데, 내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지 꼭 예상진도보다 느리게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수업 진도야 조금 천천히 나가도 큰 문제는 없는데 아직 초짜 선생님인 내가 학생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 것 같아서, 다음 학기부터는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5. 기말고사 시험지 출제를 마무리지었다. 사실 시험 문제 내는 것은 큰 일이 아니었는데, 그 이후로 학생 수 + 여분의 시험지를 복사해서 한 부 한 부 도장이 찍힌 아랍어 겉표지를 씌우고 봉투에 넣어 비닐테이프로 밀봉을 해서 캐비넷에 넣는 것까지가 일이었다. 이집트에 온 이후로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따라야 한 것이 처음이라 좀 신기하기도 했는데, 좀 궁금한 것은 그렇게 시험지를 꽁꽁 싸매놓아도 결국 원본은 선생님들 손에 있으니 문제 유출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흠. 

6. 중급 학생들과 뉴스를 가지고 한국어 수업을 해 보고 싶어서 하루 날을 잡고 자료를 만들었다. 사실 내가 프랑스어를 배울 때 TV5 MONDE 사이트에 있는 문제를 풀면서 실력이 꽤 늘었던 것이 생각나서 한 번 만들어 본 것인데, 뉴스를 골라 동영상을 편집하고, 빈 칸 채우기와 어휘 문제 등을 내는 것이 보통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TV5 MONDE 사이트를 보면, 일주일에 3개의 뉴스 영상을 가지고 초급, 중급, 고급 각 단계별로 2개의 학습활동을 온라인에서 직접 할 수 있는 데다, 오프라인에서 수업을 하고자 하는 교사를 위해서는 단계 별로 학생용 학습지와 교사용 지침서까지 제공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런 컨텐츠를 가질 수 있을까.  

PDF 파일로 학습지와 교사용 지침서를 제공한다

온라인의 초급용 문제로, 맞는 설명을 빈 칸에 끌어다 놓는 방식이다



생활

수요일에는 룩소르를 방문한 국회의원+보좌관 일행분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처음에는 '국회의원'이라는 존재 자체가 나와는 너무 먼 곳에 있는 느낌이어서 부담스러운 자리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다들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또 우리가 하는 활동에 관심이 많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는 마인드를 갖고 계신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함께 온 코이카 본부 직원 분은 스리랑카에서 활동했던 선배 봉사단원이셔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보좌관 분들의 이야기에서는 내가 전혀 모르던 세상을 조금이나마 접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식사 장소가 중식당이라, 단품을 주문하는 곳에 비해 눈에 띄지 않고 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  

목요일에는 샘하우스에 가서 아랍어를 배웠다. 책을 한 권 정해서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회화를 중심으로 단어, 관용어 등을 배우고 노래도 배우는 식이었는데, 평소 내가 익숙하지 않은 수업방식은 아니지만 의외로 재미도 있고 잘 맞았다. 중간에 샘 아저씨 손님이 올 때면 수업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대신 손님과 인사를 하면서 배운 아랍어도 써 먹고, 그 시간에 혼자 가져간 책을 볼 수도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수업받으러 가서는 코샤리에 수박을 얻어먹고, 돌아올 때 코리앤더니 파슬리 같은 야채랑 빵까지 얻어와서 두 손 뿐만 아니라 마음도 좀 무거웠다. 다음 번에는 맛있는 것을 좀 가져가야겠다.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먹은 수박, 씨가 크다

따메이야에 필요한 코리앤더, 파, 파슬리 3종 세트



금요일 성경공부에서는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 부분을 읽었는데, 이 이야기는 늘 머리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내가 아브라함처럼 하느님의 말씀에 한 번에 "네!"하고 대답하지 못하고 늘 끝까지 발버둥을 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발버둥 치는 정도가 많이 약해졌으니 나름의 성장이 아닐까. 일요일에는 9시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10시 반에는 교회에 가서 좋은 시간을 가졌다. 왠지 한국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빠졌던 주일미사를 여기에서 벌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달까.

이번 주에는 이집트의 전통 음식인 따메이야(팔라펠)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서 콩 불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코리앤더, 파슬리 갈아넣고 오븐에 굽는 기나긴 과정을 거쳤는데, 앞으로는 가게에서 반죽을 사다가 구워먹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사실 가장 간단한 것은 가게에서 튀긴 것을 사다 먹는 것이지만, 튀기는 기름을 눈으로 안 봤으면 모를까 직접 보고 나니 사 먹기가 좀 망설여져서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는... 어쨌거나 여기 있는 동안 이집트 음식들을 채식 버전으로 바꿔 시도해 볼 계획이었는데 이번 따메이야가 그 첫 시도로서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겠다.  레시피는 따로 포스팅 예정 :)

아, 그리고 한국에서 공수해 온 쥐눈이콩을 가지고 콩나물을 길렀는데, 파는 것처럼 통통한 콩나물은 아니었지만 특히 콩나물 대가리가 아주 맛나게 잘 자라났다. 또, 아보카도로 롤을 만드려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새싹채소를 구할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렌즈콩을 가지고 싹을 틔워서 며칠 키운 후에 하나 하나 뜯어서 새싹을 수확했다. 음, 슬슬 농부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비주얼은 그럴 듯한 아보카도 롤

내 손으로 직접 기른 콩나물로 국을 끓였다



이번 주의 손수굽기는 '세몰리나빵'이었는데 사실 처음 시도하는 레시피인데다 별로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없었던 탓에 사진이 없다. 세몰리나는 파스타의 재료인 '듀럼밀'을 곱게 간 것인데, 흰 밀가루보다 영양가가 많아서 통밀가루 대신으로 여기에서 구입했다(이상하게도 룩소르에서는 통밀가루를 구하기가 어렵다). 100% 세몰리나로만 구운 빵에서는 이탈리아 피자 도우에서 나는 특유의 향이 느껴졌는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고소한 빵의 냄새로 느껴지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먹기를 좀 망설이게 만드는 낯선 냄새로 생각될 듯. 아무튼 한국에서는 세몰리나가 엄청 비싼 데 비해 여기서는 2000원 정도면 1kg를 살 수 있어서 앞으로 이 레시피는 나의 식사빵 용도로 자주 사용될 것 같다 :) 


+ 사실 이 긴 내용을 한 번 썼다가 날리는 바람에 5주차 기록을 남길 것인지 말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쓰기 시작한 끝에 드디어 완성했다 흑. 틀린 곳이 있나 다시 한 번 읽어야하지만 도저히 못 하겠네... 암튼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