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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6일 월요일 ~ 6월 12일 일요일


업무

1.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방학 중 수업 계획을 짜는 정도가 업무의 거의 전부였다. 예전부터 고민했던, 아랍어-영어-한국어로 수업이 진행될 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충 수업에서는 최대한 그림카드를 활용해 볼 생각을 하고 있다. 사무실에 있는 한국어 그림카드를 사용하면 굳이 영어단어를 말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테니 학생들의 영어, 한국어 이중부담을 좀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라틴어를 공부할 때를 돌이켜보면, 라틴어 교재가 옥스포드에서 나온 거라 영어사전을 참고해가며 해야 해서 좀 불편하긴 했어도 대신 그 덕분에 라틴어와 영어 둘 다 공부를 하게 되어 좀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음 우리 학생들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겠다. 

2. 현장물품 지원 신청을 위해 인터넷으로 책 조사를 끝낸 후 한국에 견적의뢰서를 보내 책값을 확인하고 서류를 작성했다. 내가 YES 24에서 조사했던 것보다 책값이 조금 비싸게 책정되어 있어 이 점이 조금 아쉬웠다. 기관장(학과장)도 찾아가 신청서류에 사인을 받았고, 현지 서점에 가서 쓸 만한 책 몇 권 이름도 적어왔고... 이제 검토하고 보내기만 하면 될 듯! 그렇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책이 오는 것은 두 세 달 후나 될 테니 기다림이 길겠구나.


생활

월요일에는 룩소르 단원인 S언니 집에서 저녁에 도토리묵국수를 먹었고, 목요일에는 시니어 A선생님 댁에서 비빔국수를 해 먹었다. 룩소르에서의 사회 생활(사교 생활?)은 이렇듯 주로 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나는 이 점이 참 좋다 :) 사실 밖에서 먹는 밥이라고 해봤자 별 특별한 것은 없으면서 나처럼 풀 먹는 사람에게는 고르기 힘든 메뉴들이 많게 마련이다. 집에서 해 먹으면 좋은 재료를 쓸 수 있고, 내 입맛 따라 조절할 수 있고, 게다가 재료 값은 얼마 들지도 않으니(나처럼 취미로 요리를 하는 경우 음식 만드는 것은 노동이 아니므로 인건비 제외) 일거 삼득이다. 카이로에 있으면 밖에서 커피 마시고 밥 사 먹는 돈도 좀 들 것 같은데, 룩소르는 이런 면에서도 참 돈 쓸 일 없는 도시인 것 같다.
 
금요일에는 룩소르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아다이마'라는 곳에 다녀왔다. 그 동네에 있는 교회에서 행사가 있어서 목사님이 가시는 길에 몇몇 사람들과 함께 따라갔었는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얼마나 생활 수준이 높은 곳인지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기에 앞서 현지 사람의 집에 잠깐 들러 차를 마셨는데, 나름 응접실이라는 곳마저 우리나라로 치면 창고 같은 어두침침한 곳인데다 홍차와 함께 나온 설탕단지에는 개미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의 생활방식을 무시하고 하찮게 볼 생각도 없다. 다만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또 지금처럼 소수가 부를 독차지하고 있는 이집트에서 벗어나 진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뭔가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찾아보아야겠지만... 아무튼, 외국인이 왔다고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는 꼬맹이들, 아랍어로 잘 소통이 되지도 않는데 그래도 말을 걸어보는 무수한 사람들 덕분에 연예인이 된 기분을 실컷 느끼고 돌아왔다.

길에서 소를 볼 수 있는 진짜 시골

꽤 긴 설교였지만 열심히 들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토요일에는 카이로에서 돌아온 샘아저씨를 만나러 오랜만에 샘하우스에 갔다. 이 날은 아랍어 알파벳 중 하나를 골라서 그 글자가 들어간 단어를 거의 70개쯤 공부했는데, 머리를 쥐어짜내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생일이라고 들고 간 당근코코넛케이크도 (나에겐 한 조각 권하지도 않고!) 맛있게 먹어주어서 매우 기뻤다 :) 내 관심사가 그래서 그런지 아저씨랑 이야기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끝에는 꼭 먹을 거 이야기로 흐르는데, 이 날도 무슨 얘기를 하다 그랬는지 채식 코프타와 따메이야, '두까'라는 향신료 얘기가 나왔다. 결국은 '만들어 줄 테니 언제 놀러올래' → '그럼 월요일에 올게' 이렇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가끔 여기서 채식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지 걱정을 해 주던데, 난 오히려 채식을 하는 덕분에 이런 경우처럼 없던 먹을 복도 생긴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날 공부한 단어들은 다음 번에 시험을 보기로 했는데, 그 때 75점을 넘으면 상품으로 수박이 걸려있다. 열심히 해야겠다 :> (절대 수박 때문만은 아니다 ㅋㅋ)

일요일은 나의 스물여섯 번째 생일날.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다음 날이 내 축일이라 아이를 안고 있는 안토니오 성인이 제대 앞에 놓여있었다) 교회에 갔다가 사람들과 함께 스낵타임에서 점심을 먹었다. 목사님이 특별히 생일을 위해 기도도 해 주셨고, 직접 만들어간 블루베리 타르트도 사람들이 좋아해서 나는 그냥 신났다 :) 저녁에는 룩소르 단원들과 함께 인도 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케이크를 먹는 동안 중대 발표들이 이어져서 마음이 조금 복잡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단원 전원이 모인 자리라 좋았다. 여하튼, 타국에서 맞는 생일이지만 좋은 사람들 속에서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는 것이 참 행복하고 감사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일 선물로 받은 꽃, 비누, 초

윗층 자이카 단원 케이가 직접 만든 것

S언니가 선물한 오렌지 비누


이번 주에는 생일을 핑계로 케이크를 원없이 구웠다 :) 월요일에는 갑자기 시나몬롤빵이 생각나서 만들었는데, 내 손에서도 돌돌 말린 예쁜 시나몬롤빵이 탄생하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케이크로는 시험 삼아 만들어 본 사과크럼블케이크에다 당근코코넛케이크를 두 개 만들었고 블루베리 타르트도 만들었으니 총 4개를 만든 셈이다. 계란과 우유 없이도 (내 입에는) 맛만 있는 케이크가 나오더만...

돌돌 말린 모양의 시나몬롤빵

오븐에서 구워지고 있는 중

아이싱을 뿌려 완성

코코넛을 뿌린 당근케이크

당근맛은 거의 안 난다

이건 다른 데코레이션~ 곰돌이 :)

블루베리 필링을 얹은 타르트

손이 좀 많이 가긴 하지만 맛있었다


다음 주에는 기말시험이 있으니 이번 주보다는 조금 바쁜 한 주가 될 것 같다. 매일 40도를 넘다가 일요일에는 기온이 40도 아래로 내려갔는데,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것이 아주 살기 좋았다 :> 다음 주도 딱 그 정도만 되면 참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