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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3일 월요일 ~ 6월 19일 일요일


업무

1. 이번 주에는 이고스에서 한국어 기말시험이 있었다. 월요일에는 1, 3학년, 화요일에는 2, 4학년 시험이 있었는데, 그리 어렵지 않은 시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정말 가르친 것에 충실하게 냈는데!) 학생들이 써 놓은 답을 보니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를 수준이었다. 차라리 종강하고 바로 시험을 봤으면 그나마 수업 내용이 기억에라도 남아있었을텐데, 3주 쉬고 기말시험을 보는 지금의 방식이 더 마이너스인 듯. 결국 내가 맡고 있는 2학년에는 낙제할 학생이 하나 있고, 졸업할 4학년 중에도 출석까지 모두 합해 50점을 넘지 않는 학생들이 두엇된다. 으유 조금만 더 열심히 하지. 4학년 B반 시험은 조금 까다롭게 냈더니 아이들이 꼬박 2시간을 시험지에 매달려 있었다. 앉아있는다고 생각이 나는 것도 아닐텐데 그렇게 끈질기게 앉아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인내심 하나는 대단하다 싶다 :) 
 
2. 시험 결과를 학교 측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점수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 하도록 시험지 커버에 있는 이름은 떼고 번호를 부여해서 채점을 하게 만들었는데, 나는 이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답안지를 따로 만들어서 거기에 답을 쓰도록 했던 것이다. 학생들이 한글로 답을 쓰는 과정에서 지웠다 썼다 하면 나중에 어느 것이 답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것 같아 그렇게 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말았다. 결국 시험지 각 장마다 다시 답을 옮겨 쓰는 수고를 해야했고, 75점 만점인 시험을 그냥 50점으로 환산하려 했던 것도 안 된다고 해서 문제 배점도 다시 했다. 이번에는 처음이다 보니 시험 관련 학교 규칙을 잘 몰라 이런 저런 삽질을 많이 했지만 다음에는 더 깔끔하게 일을 잘 처리할 수 있겠지? 
 
3. 아직도 한국어 교실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았다. 정말 징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에어컨 안 달아주면 여름에 수업 안 할 거라고 협박은 하고 왔는데, 사실 지금도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다. 돈이 없어서 못 해 주는 것도 아니고, 전화 몇 통이면 될 일을 왜 이렇게 미루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4. 코이카 1차 반기보고서를 제출했다. 즉 이제 파견된 지 6개월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국내훈련에서부터 현지적응훈련, 룩소르에 와서의 일을 돌이켜보니 그 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다. 물론 중간에 한국에서 보낸 2개월 가량이 포함되어있다 보니 실제로 활동을 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잘 지내왔듯이 앞으로 남은 1년 반도 열심히 생활해야겠다.


생활

지난 주에 샘과 약속한 대로 월요일에는 샘하우스에서 채식 저녁식사를 했다. J언니와 W오빠까지 합류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돌아올 때는 따메이야 반죽에 이집트 전통 향신료까지 바리 바리 싸들고 돌아왔다. 이 날은 처음으로 샘하우스를 찾아온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났는데, 다들 카이로에서 만든 카르투쉬보다 룩소르 게 더 예쁘고 좋다며 아쉬워했다. 

마늘과 향신료를 뿌린 가지 튀김

마늘 맛이 나는 마카로니

감자샐러드, 야채샐러드, 감자수프


수요일 오후에는 사모님을 따라 독일학교에 특별수업을 하러 갔다. 독일학교라고 해서 학생들도 독일인인가 했는데 선생님들이 거의 독일인이었고 학생들은 주로 이집트인과 외국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은 학교인데다 지금은 임시로 큰 집을 학교 건물로 쓰고 있어서, 누군가의 집에 놀러간 듯한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은 단점이 있어 보였지만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 만남에서는 오히려 좋을 듯한, 한국으로 치면 대안학교 같은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 이 날 내가 한 수업은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과 함께 종이접기로 바다 속 생물들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종이접기를 한 것은 30분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예쁜 종이에 관심을 많이 보여서 보람이 있었다.
 

방을 교실로 사용하고 있다

독일어로 된 예쁜 동화책들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만들어 간 종이


금요일에는 성경공부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일이 있어서 많이 못 오는 바람에 매우 소규모 모임이 되었다.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불평을 하고 하면 안 될 일들을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하느님의 약속은 언제나 그 곳에 있었지만 그것을 믿는 것은 사람들의 선택이었으며, 그 분의 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해야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세상은 마침내 평화의 동산이 될 것입니다'라는 약속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지. 저녁 때는 곧 휴가를 떠나는 J언니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평소와 달리 한식으로 준비했는데, 다 만들고 보니 왠지 생일상 같네?

야채 듬뿍 들어간 잡채와 병아리콩밥

캐슈넛을 넣어 뽀얀 국물의 미역국

표고와 양송이버섯으로 만든 버섯강정


토요일에는 샘하우스에서 아랍어 공부를 했다. '자자'라는 제목의 이집트 영화를 보면서 듣기 연습을 했는데, 짧은 아랍어로 코미디 영화를 알아듣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시간에 공부한 단어들은 따로 시험을 보는 대신 내가 만들어간 예문을 샘에게 확인받았는데, 숙제를 잘 해왔다고 미리 약속된 수박 대신 꿀을 한 병 선물로 받았다 :) 갈 때마다 뭘 받아오는 게 미안해서 이 날은 잡채를 만들어 가져갔고, 가는 길에 제과점에 들러 달달한 아랍과자들도 좀 샀다. 그렇지만 점심도 얻어먹었고 집에 올 때는 꿀에다 바삭바삭 막대기과자인 보으쑤마뜨까지 한 봉지 얻어와서, 자꾸 빚이 늘어만 가는 느낌이다 =_=

룩소르 기차역 옆의 제과점 트윙키

설탕물을 입혀 달달한 과자들

양파, 목이버섯, 표고버섯

빨강 노랑 파프리카와 당근

깨를 뿌려 완성한 잡채

꿀, 막대기과자 보으쑤마뜨, 향신료 두까

커다란 꿀 한 병~ 벌들아 미안 감사히 잘 먹을게 :P


이번 주에는 바빴던 탓에 오븐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티타임을 위해 일요일에 만들었던 애플시나몬케이크가 유일한 손수굽기였다 :) 일요일 저녁에는 남아있던 또르띠야를 이용해서 씬 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바질페스토를 이용했더니 쉽게 맛난 피자를 만들 수 있었다. 이로써 처음 룩소르에 올 때 카이로에서 사 왔던 통밀 또르띠야도 다 먹었으니 이제 먹으려면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겠다. 
 

위에 시나몬슈가가 솔솔

한 조각 잘라서 맛을 보았는데

중간 중간 씹히는 사과조림이 맛있다

페스토 위에 말린토마토와 야채를 얹은 버전

토마토페이스트 위에 야채를 얹은 버전

색깔은 칙칙해도 맛있었던 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