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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8일 월요일 ~ 7월 24일 일요일
업무
1. 초급 : 토요일은 이집트 공휴일이어서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화요일, 목요일 이렇게 두 번 수업을 했다. 지금까지 여섯 번의 수업 동안 배운 것들을 복습하는 차원에서 시험을 한 번 봤고, 읽기 겸 받아쓰기도 약간 했다. 나는 시험 문제를 낼 때면 애들이 배운 것을 정말로 아는지 모르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문제를 몇 번 꼬아 만들곤 한다. 이번 시험 문제에서도 다분히 의도적인 함정들 - 이를테면 '우제국'과 '우체국' 같은 - 을 많이 만들었는데 학생들이 너무 쉽게 그 함정에 빠지는 바람에 보람있으면서도 좀 씁쓸했다. 애들이 점차 내 스타일에 적응해 가는 것인지, 이제는 단어도 꽤 잘 외워오고 수업 때 농담하면 웃기도 해서 나 또한 1시간 반 동안 지루하지 않게 즐거운 수업을 하고 있다. 다만 성실하게 수업에 나오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은데도 막상 실력이 별로 늘지 않는 학생을 볼 때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조금만 더 똘똘하면 정말 한국어 실력이 쑥쑥 늘 텐데, 하는 생각에 자꾸 욕심이 생기는 걸 어쩔 수가 없네.
받아쓰기 시험지 |
받아쓰기 대본 |
지금까지 배운 것 총복습 |
2. 중급 : 토픽 문제 풀이를 하던 중, 학생이 단어 뜻도 찾지 않고 문제를 풀어온 것에 열이 받아서 (문법은 어려워서 손을 못 댔다고 하더라도 단어 찾는 것은 노력만 기울이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잔소리를 좀 하게 되었다. 이렇게 공부를 해서는 절대 한국어를 잘 할 수가 없다, 최소한 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너희들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등등의 잔소리를 했더니 그 학생이 자신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 한국어 공부만 한다고, 특히나 작문 숙제를 하려면 사전에서 단어 찾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한국어 실력이 잘 늘지 않는 원인은 지금이 아니라 맨 처음 한국어를 배울 때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데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얘네들의 말만 100% 믿을 수는 없고, 예전 선생님이 어떤 방식으로 가르쳤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 하기 때문에 어떤 평가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내가 느낀 것은, 내가 이 곳을 떠난 후에도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분명하게 남아있을 것이고, 내 행동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가 몇 년, 길게는 몇 십년이 지난 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냥 내가 이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겠구나,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될 필요가 있겠구나- 이런 생각도.
아이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함으로써 얻게 된 또 하나의 소득은, 학생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수업에서 그 날 수업 내용 외의 다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 편이고,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수업에 들어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깐깐한 선생이다. 학생들이 이해를 못 하는 데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이 내 수업을 편하거나 재미있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여기 학생들은 이런 스타일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고 내가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 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참 다행이다. 물론 이게 모든 학생에게 통하지는 않는다. 이번에 졸업하는 4학년 여학생 하나는 거의 매번 지각하는 데다 숙제도 성의없이 해 오기에 차갑게 대했더니만 나와는 사이가 상당히 안 좋아졌다. 그렇지만 뭐 어쩌겠어.
중급 아이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한 후로 수업이 좀 더 즐거워졌다. 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아이들이 나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싶은 생각도 더 커졌다. 교육하는 사람으로 이 곳에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지난 번 쓰기 과제 보충 학습지 |
성격을 표현하는 어휘 모음입니다 |
생활
수요일에는 샘하우스에서 샘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줬다. 완전히 처음부터, 그러니까 자음과 모음부터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것이 상당히 의미있는 경험이 되고 있다. 모음이 큰 역할을 하지 않는 아랍어의 특성 상 이 곳 사람들에게는 한국어의 분화된 모음들이 꽤나 문제인 것 같다. 처음에 잘 잡지 않으면 4학년이 되어서도 ㅏ와 ㅐ를 구분하지 못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들어올 1학년들은 자모부터 완벽하게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실험을 해 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목요일에는 샘하우스에서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 '교육 개발 협력' 쪽으로 공부하려는 분이 있었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이렇게 우연하게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라 좀 신기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약 1년 반 후에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 지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국어 교육'과 '교육 개발 협력'이라는 갈림길 중에 어느 쪽으로 가게 될 지, 아니면 이 두 가지가 아닌 제3의 길이 또 나타나게 될 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여전히 맛있는 것들도 많이 얻어먹고 있다. '할루와'라고 하는, 깨를 곱게 간 페이스트에 설탕을 넣어 만든 스프레드를 바른 샌드위치와 짭짤한 올리브는 적절한 조합이었다 :) 책에서만 봐서 대체 무슨 맛인지 궁금했던 '몰로헤야'도 먹어보았는데 약간 쑥 같은 맛이랄까?
달달한 깨 스프레드를 바른 샌드위치와 올리브 |
얻어온 망고~ 익기를 기다려야 했다 |
몰로헤야 수프와 기본 토마토 샐러드 |
밥과 감자로 만든 코프타 |
간단하지만 맛있는 감자샐러드 |
토요일은 휴일이어서 금,토 이렇게 이틀, 그리 멀지 않은 호텔로 혼자 놀러갔다 왔다. 보충 수업을 해야 해서 후루가다니 다합이니 하는 먼 곳은 도저히 못 가겠고, 몸과 마음을 좀 푹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있고 해서 그냥 셔틀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졸리빌 호텔에 가게 된 것이다. 수영장이 세 개나 있고, 룩소르에서는 가장 좋은 헬스클럽도 있고,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조식도 포함되어 있어서 정말 편안한 휴일을 보낼 수 있었다. [포스팅 예정]
방갈로 식으로 된 방의 내부, 깔끔 |
내가 머물렀던 방갈로 |
수영장 세 곳 중 하나 |
일요일에는 성당과 교회를 다녀와서 점심을 먹은 뒤 한 시에 중급 아이들을 만나 회화 시간을 가졌다. 정규 보충수업 동안에는 읽기 쓰기 문법 이런 거 하는 데만도 바빠서 그냥 따로 짬을 낸 것인데, 몇 장의 사진을 보고 설명하기, 한국에서 있었던 일 이야기 하기 등 내가 전에 CAE 준비하면서 했던 걸 그대로 시켜봤는데 재미있었다. 학교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어서 심적인 부담도 덜하고, 좋았다.
이번 주의 손수굽기는 소다브레드- 사실 이집트에 와서 베이킹 파우더는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베이킹 소다를 찾지 못 해서 항상 고민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 끝에, 여기에서는 베이킹 소다를 슈퍼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약국에서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곧장 약국에 가서 'bicarbonate'라는 이름을 댔더니 작은 통에 베이킹 소다를 담아 주었다! 그 덕분에 구울 수 있었던 이 소다브레드는 일반 빵처럼 쫄깃하지 않고 스콘처럼 부스러지는 질감인데, 통밀과 호두로 만들어 구수한 데다 굽기는 매우 편한 빵이다. 결과물에 만족 :)
다 구워져 나온 소다브레드 |
통밀 100%라 구수하다 |
중간 중간 호두도 박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