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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국내도서>비소설/문학론
저자 : 그레그 모텐슨(Greg Mortenson), 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David Oliver Relin) / 권영주역
출판 : 이레 200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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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읽었을까?
룩소르 이웃 분께 추천을 받아 읽게 된 책이다. 그레그 모텐슨이라는 사람이 우연한 계기에 히말라야 산간 마을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어 처음으로 그 곳에 학교를 짓게 되고, 점차 더 많은 마을로 그 활동을 확대해 나간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점과 '교육'이 중요한 키워드라는 점에서 기대를 안고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 어땠냐고?
비소설 분야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는 많은 울림을 남긴 책이었다. 일단 내용 면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감동이 있었고, 덧붙여 꽤 세련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지지부진하게 했던 말 반복하는 조악한 에세이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올리버 렐린'이 '그레그 모텐슨'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식의 공동작업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 오랜 기간에 걸친 활동을 들려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지루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책 한 권이 매우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독자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아무리 가치 있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도 너무 재미없게 이야기를 해 버리면 읽을 맛이 안 나기 마련인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이 사람들이 정말로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을까? 작가가 어느 정도는 각색을 한 것일까?'하는 의문이 좀 들기도 했지만,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본인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 무슨 생각을 했냐면...

1. '세 잔의 차'라는 이 책의 제목은, 그레그 모텐슨이 처음으로 학교를 짓게 된 '코르페'라는 마을의 촌장 '하지 알리'와의 대화 부분에 등장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빨리 학교를 완성하고 싶었던 모텐슨은 매일 같이 공사 현장을 감독하면서 사람들을 감시하는데, 모텐슨은 그 대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 대로 점차 지쳐가고 있었다. 그 때 하지 알리는 모텐슨의 감독 기구를 모두 빼앗아 궤짝 안에 넣어 버리고, 버터차를 앞에 두고 모텐슨에게 이야기한다. 코르페 마을에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곳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서 이방인으로부터 가족이 될 때까지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이것은 사실 내가 이집트에 와서 생활하면서 느끼게 된 것이기도 하다. 2년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갖고 임지에 온 봉사단원들은 뭔가를 이뤄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지만, 사실 어떤 성과를 내는 것 이전에 그 곳 사람들을 알아가고 관계를 맺는 일이 필요하며, 그것이 '일'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라서 문제이지만.

2. 1번과도 통하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모텐슨은 이 산간 오지에 학교를 짓느라고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뜻을 가지고 있고, 서로를 이해해주고, 문제가 생겼을 때 힘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그런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3. 아직까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 하는 나라들에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고,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노하우를 전하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교육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모텐슨은 학교를 짓고 책과 공책 등의 문구류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 일에 자신의 힘을 보탰다. 그렇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학교 건물이라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즉 학교라는 공간에서 어떤 활동이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인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나는 거기에 대해 참 아는 것이 없다. 교육학을 공부하면 거기에 대한 해답을 좀 얻을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전에 '삶과 교육'을 읽으며 느꼈던 것과 좀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물음만 잔뜩 생겨버렸다. 뭐, 해답은 살면서 천천히 찾을 수 있겠지.  

 
■ 기억하고 싶은 구절

빙하의 신비로운 내부 장치가 내는 삐걱삐걱 소리에 맞춰 의식을 잃었다 되찾았다 하면서 그는 크리스타를 추모하지 못한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였다. 실패한 것은 자신의 육체이지 혼이 아니려니와, 누구나 한계는 있었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절대 한계를 깨달았다.  (28쪽)

"정신 차리게, 그레그. 과속방지턱 몇 개에 걸린 것뿐이야." 라이하르트가 말했다. "자네가 하려는 일은 K2에 오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고." (중략) 루 라이하르트는 힘든 목표를 위해 고생하는 것,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기가 걸으려 하는 길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를 알아주자, 모텐슨은 자기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아직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156~157쪽)

"우리가 결혼한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늘 충격을 받더군요." 모텐슨의 말이다. "하지만 만난 지 엿새 만에 결혼했다는 게 나에게는 별로 이상한 일 같지 않아요. 우리 부모님도 비슷했는데, 전혀 문제없었으니까요. 나에게 놀라운 일은 내가 타라를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난 인생을 함께 할 운명인,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을 찾아낸 거예요."  (197쪽)

"닥터 그레그, 자네가 당신 마을로 돌아간 뒤에 자네 계획을 의논해봤네." 하지 알리가 말했다. "그래서 문중과 아스콜리의 게으른 인간들에게 자네 돈을 낭비하는 건 바보짓이라고 결론을 내렸어. 그자들은 부유한 외국인이 학교를 짓는다는 걸 아니까 일은 안 하고 시끄럽게 떠들기만 할 걸세. 그래서 우리가 직접 돌을 캐기로 한 거야. 포터 일을 하러 떠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여름 내내 걸렸네.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자네 돈은 내 집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으니까."
"돈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텐슨은 말했다. "하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 지붕을 올리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공부할 것이 있게요."
하지 알리는 모텐슨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자상한 아버지처럼 성미 급한 미국인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자네가 해준 모든 일에 대해 자비로우신 알라께 감사를 드리네. 하지만 코르페 사람들은 600년간 학교 없이 살아왔어."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겨울 한 번을 더 기다린들 무슨 대수겠나?"  (204쪽)

모텐슨이 파르비가 소개해준 스카르두의 솜씨 있는 석수, 마크말을 데리고 코르페에 도착한 것은 금요일 오후였다. 새 다리를 건너던 그는 열 명쯤 되는 코르페 여자들이 그들이 가진 가장 훌륭한 숄을 두르고 아주 특별한 때만 신는 정장 구두를 신고 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한 다음, 주마, 즉 성일을 맞이해 인근 마을에 사는 가족들을 만나러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당일 오후에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코르페 여자들이 금요일마다 가족들이 만나러 가던 거였어요." 모텐슨의 말이다. "다리가 생기면서 친정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 덕에 여자들이 전처럼 단절된 것처럼 느끼지 않고 훨씬 행복해졌습니다. 다리 하나가 여자들에게 힘을 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214쪽)

입천장을 델 것처럼 뜨거운 버터차가 나오자, 하지 알리는 사발을 들고 말했다. "발티스탄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우리 방식을 존중해주어야 하네." 하지 알리는 차를 후후 불면서 말했다. "발티 사람과 처음에 함께 차를 마실 때, 자네는 이방인일세. 두 번째로 차를 마실 때는 영예로운 손님이고. 세 번째로 차를 마시면 가족이 되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 그는 모텐슨의 손에 손을 얹고 말했다. "닥터 그레그,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실 시간이 필요한 거야. 우리는 교육을 못 받았을지 몰라도 바보는 아니라네. 우리는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고 또 살아남은 사람들이야."  (219쪽)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개발 전문가 회의에 참석한 뒤, 모텐슨은 CAI 학교에서는 5학년까지만 가르치고 대신 여학생 수를 늘리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남자는 공부를 시켜놓으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가거든요." 모텐슨의 말이다. "하지만 여자는 고향에 남아 지역 사회의 주축이 돼서 자기가 배운 걸 남들에게 전파하죠. 어느 문화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려면, 여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기본적 위생과 의료를 개선하고 높은 유아 사망률에 맞서 싸우려면, 여자들을 교육시키는 게 답이랍니다."  (302쪽)

촌장이 모텐슨에게 바짝 다가섰다. "나에게는 고된 삶도 문제가 아닙니다." 그가 바이그를 통해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안 돼요. 우리는 먹을 것도 많지 않고, 집도 많지 않고, 학교도 없습니다. 닥터 그레그가 파키스탄에 학교를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에게도 지어줄 수 있겠죠? 땅, 돌, 사람들 모두 제공할 수 있습니다. 같이 가서 우리와 함께 겨울을 나면서 의논해보고 학교를 만듭시다."  (362쪽)

모텐슨은 소중한 모든 것이 달걀만큼이나 깨지기 쉬운 이런 암울한 시기에 하지 알리라면 뭐라 했을지 상상하려 하면서 일어섰다. 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바람의 말을 듣게."
모텐슨은 귀 기울여 들어보았다. 브랄두 계곡을 불어 내려오는 바람이 가을의 끝과 눈의 소문을 실어왔다. 그러나 히말라야 산 위에서 인간들이 이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이 약하디 약한 바위 턱을 불어 지나는 산들바람에서는 코르페 학교 안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마지막 가르침이라는 것을 모텐슨은 뜨거운 눈물을 훔치며 깨달았다.
"저 아이들을 생각해라." 그는 생각했다. "늘 저 아이들을 생각해라."  (374쪽)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들이 이제 탈레반도 없는데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은 왜 아직도 부르카를 찾용하느냐고 물을 거예요." 버그맨이 말했다. "난 보수적인 사람이라서 이게 편해요." 우즈라가 말했다. "그리고 부르카를 찾용하면 훨씬 안전한 기분이 들죠. 모든 여성 교사들에게도 바자에 나갈 때는 부르카를 착용하라고 한답니다. 우리 여학생들의 학업을 방해할 구실을 주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도 자유로운 미국 여성들은 그런 좁은 틈으로 밖을 내다봐야 하는 게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지 알고 싶어 할걸요." 버그맨은 질문을 계속했다. 우즈라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모텐슨은 그녀의 그런 환한 얼굴을 처음 보았다. 부르카를 벗은 지금, 그는 그녀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쉰의 나이에 아직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놀랐다. "우리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교육을 통해 빛을 봅니다. 옷감에 뚫린 구멍을 통해서가 아니라요." 우즈라가 대답했다.  (415쪽)

"전 테러와 싸우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의사당에서 당장 쫓겨나는 일이 없게 표현을 신중히 골라가며 말했다. "아이들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겁니다. 테러와 싸우는 건 제 우선사항 순위에서 7,8위쯤 될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면서 전 몇 가지를 배웠습니다. 테러가 발생하는 건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데서 몇몇 사람들이 어느 날 별안간 우리를 미워하기 결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죽음이 아니라 삶을 선택할 만큼 밝은 미래가 아이들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419쪽)

냉담한 복도로 돌아와 군 수석 참모진에게 브리핑을 할 방으로 향하며, 모텐슨은 국방부에서 느껴진 거리감이 이곳에서 내려지는 결정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자신이 목격한 모든 것, 감자 장수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 바람에 칠판이 날아간 여학생들, 지뢰와 클러스터 폭탄에 신체의 일부를 잃고 남은 사지로 카불 거리를 걸으려 하던 그 많은 부상자들이 노트북 모니터에 찍힌 수치에 불과하다면, 전쟁 수행에 관한 자신의 감정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421쪽)

모텐슨은 이어서 그 지역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 그에 따르는 부족 전통에 관해 이야기했다. 적대 당사자들은 전투를 벌이기 전에 지르가를 열고 손실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지 협의했다. 승자에게는 그들이 무찌른 패자의 미망인과 고아를 돌볼 것이 기대되기 때문이었다.
"그쪽 사람들은 죽음과 폭력에 익숙합니다." 모텐슨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 아버지가 죽은 건 유감이지만 당신 아버지는 아프가니스탄의 자유를 위해 순교한 것'이라고 하면서 적절한 보상을 해주고 그 사람들의 희생을 기려주면, 사람들이 우리를 지지할 겁니다. 심지어 지금에 와서도 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 바로 희생자들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그 사람들을 '부수적 피해'라 부르고 사망자 수조차 세려 들지 않는 거죠. 그 사람들을 무시하는 건 곧 그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일인데, 이슬람 세계에서는 그것만큼 큰 모욕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겁니다."  (421쪽)

"오사마를 만들어낸 건 파키스탄이나 아프카니스탄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미국 덕분에 오사마가 집집마다 있게 됐어요. 군인으로서 난, 상대방은 총 한 방 쏘고 도망가서 숨을 수 이는데 이쪽은 영원히 경계해야 하는 그런 전쟁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적의 힘의 원천을 공격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그건 오사마도, 사담도, 누구도 아니에요. 적은 무지입니다. 그걸 무찌를 수 있는 방법은 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교육과 비지니스를 통해 현대 세계로 데리고 나오는 것뿐이에요. 안 그러면 싸움은 영원해 계속될 겁니다."  (4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