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1년 10월 17일 월요일 ~ 10월 23일 일요일


업무

1. 1학년 : 두 번째 수업인 월요일, 지난 시간에 왔던 학생들보다 2명이 늘었다. 첫 시간에 들어왔던 여섯 명은 모두 숙제도 잘 해 왔고 정시에 출석하는 모습을 보여 좀 안심이 되었다. 이 날 새로 온 학생 한 명은 영어도 거의 못 하고, 발음에도 좀 문제가 있어서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세 번째 수업인 목요일에는 오지 않았다. 대신 이 날 또 1학년 신입생들이 와서 수업을 들으려고 하길래 '우리는 이미 지난 주에 수업을 시작했고 이제는 더 이상 학생을 받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돌려 보냈다. 최소한 수업 시작하기 전에 와서 앉아 있기라도 해야지, 이렇게 수업 중간에 문 열고 들어와서 수업 듣겠다는 말을 꺼내는 모습을 봐서는 기본적인 성실함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지금 있는 여덟 명도 충분히 많은 수인 데다가, 한 명씩 발음을 지도해야 하는 상황에서 늦게 온 학생들 때문에 기존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지속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굳은 의지로 버틴 한 명의 학생은 결국 수업에 받아주었다. 자음과 모음을 조금씩 가르치고 있어 아직까지는 다들 잘 따라오고 있다. 

2. 3학년 : 수요일 수업이 본격적인 수업으로는 첫 시간이었다. 작년 한 학기 가르친 학생들이어서 내 스타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수업하는 데 별 부담이 없다. 수업은 Korean Grammar in Use라는 문법책을 교재로 문법을 가르치되, 바로 바로 일상회화에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을 최대한 많이 익히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4학년 애들도 같은 책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진도는 걔네에 비하면 조금 느리지만 발음은 오히려 3학년이 더 나은 편이고, 네 명 다 차분한 데다 또롱또롱 수업에 잘 참여해서 전혀 화 낼 일 없이 기분 좋게 수업을 끝낼 수 있었다. 
 
3. 4학년 : 나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아이들. 전체 다섯 명 중에 두 명만 출석한 데다, 문법 가장 기초부터 복습을 하는데 그나마 열심히 공부한다는 이 두 녀석도 발음이 정말 꽝이다. 아직도 '아'와 '애'를 구분하지 못 하는 아이들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1학년이 그러고 있으면 귀엽게 보고 할 때까지 반복해 주겠지만 졸업까지 1년 남은, 이제 곧 룩소르의 유적을 설명하는 것을 배우게 될 학생들이 이러고 있으니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서 자꾸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생활

이번 주에는 집에서 저녁 대접할 일이 좀 있었던 바람에 새로운 음식들을 몇 가지 만들어 보았다. 첫째, 직접 통밀가루로 또르띠야를 만들어 채식 파히타(fajita)를 만들어 먹고, 남은 것은 며칠 뒤에 운동 갈 때 도시락으로 싸 갔다. 또르띠야 반죽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았는데, 좀 촉촉해야 내용물을 넣고 부드럽게 말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바삭하지 않게 굽는 데 포인트가 있다. 둘째, 렌즈콩과 채소를 이용해서 고기 없는 미트로프(meat loaf)를 만들어 먹고, 남은 것은 마찬가지로 또 도시락으로 이용했다. 미트로프는 원래 간 고기와 채소, 계란 등을 반죽해서 빵처럼 덩어리를 만들어 구운 음식인데 사실 먹어본 적이 없어서 내가 만든 것이 제대로 맛을 낸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부드럽게 으깬 콩이 정말 듬~뿍 들어가서 먹고 나니 엄청 든든하고 힘이 나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종종 "채식을 하면 먹을 게 별로 없지 않냐"고 묻곤 하는데, 뭐 그렇지도 않지만,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식단에 활기를 주고 싶다면 다른 문화권의 음식을 시도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대신 처음 만들 때는 레시피를 제대로 따라야지, 없어도 되겠지 하는 생각에 몇 가지 재료를 빼거나 순서를 무시하다가는 국적 불명의 이상한 음식을 먹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 아, 그리고 얼린 바나나를 이용해서 (우유 없는) 초코칩 바나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보았는데, 당연히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움을 따라가지는 못 하지만 나름 괜찮은 후식이 만들어졌고, 대추야자와 캐슈넛, 카카오 파우더를 이용한 생식 초코렛도 꽤 성공적이었다.

운동 후의 점심식사

돌돌 말아간 통밀 또르띠야

속에는 파프리카, 양파, 양상추 듬뿍

오븐에서 구워져 나온 렌틸로프

재료는 강낭콩, 렌즈콩, 양송이 등등

샐러드와 함께 든든한 점심 도시락

초코칩이 들어간 바나나 아이스크림

대추야자와 캐슈넛, 카카오로 만든 생식 초코렛


카이로에서 사 온 녹두로 숙주를 길렀는데, 처음이라 어느 정도를 불려야 할 지 잘 몰랐던 탓에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숙주 밭이 생기고 말았다. 수확 후 숙주 다듬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을 정도니... 어쨌거나, 그 작은 콩에서 싹이 자라고, 며칠만 지나면 이렇게 긴 숙주가 된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숙주 덕분에 볶음 쌀국수는 한결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3일째, 잘 자라고 있는 숙주

5일 정도 길렀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양


목요일에는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아 가면서 후식으로 먹을 '통밀 고구마 머핀'을 만들었고, 토요일에 ACE(Animal Care in Egypt) 자원활동에 가는 김에 가져갈 초코 케이크도 구웠다. 나는 딱 맛만 보았지만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 주어서 흐뭇했다 :) 

오븐에서 나온 통밀 고구마 머핀

고구마가 정말 듬뿍 들어갔다

보자기로 싸서 가지고 가기

파운드 틀에 구운 초코 케이크

먹기 좋은 크기로 잘 썰기

아직 초코렛이 녹아 있는 상태


토요일에는 아침 8시에 ACE에 도착해서 고양이와 개들 밥을 주고 물을 가는 등의 작은 일로 시작해서, 말 씻기기와 같은 꽤 큰 (어디까지나 내 입장에서지만) 일도 하면서 12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자원활동을 하는 첫 날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지 보면서 배우는 게 중심이 되었고, 11시 쯤에 기관을 방문한 스웨덴 커플을 따라서 다시 한 번 시설 구석구석을 둘러 보며 설명을 들었다. 동물에 대해 뭘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어나 아랍어에 능통한 것도 아니어서 '뭘 해야 하는 걸까'하는 생각에 휩싸이는 순간도 종종 있긴 했지만 항상 처음에는 그런 어색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으쌰!

말 발굽을 깎아내고 있는 중

처음으로 내가 씻긴 말, '밥'

운동을 시키는 것 같았다

한 쪽으로 몰고, 반대로 몰고

고양이랑 놀아주는 것도 나름의 일

미안, 이름을 또 까먹었어

기분이 좋은지 가르릉 가르릉

눈 언저리의 혹 같은 것 때문에 수술을 받는 야옹이

정말 어린 고양인데, 얼른 회복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