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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31일 월요일 ~ 11월 6일 일요일


업무

1. 1학년 : 목요일부터 명절 연휴가 시작되어서 이번 주에는 월요일만 수업이 있었다. 수업은 별 문제 없이 평소 하던 대로 잘 끝났는데 수업 후에 학생들이 안 가고 남아 있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나에게 와서 생일을 물어봤다. 생일을 가르쳐 주고, 명절 잘 보내라는 인사를 하며 돌려보내고 나서 쭈뼛대던 아이들의 모습에 혼자 슬쩍 웃었다. 사실 영어로 수업하는 원어민, 게다가 농담 한 마디 없이 빡빡하게 수업하는 선생님이라니 학생들 입장에서도 참 다가가기 쉽지 않고 말 걸기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닐까. 좀 더 학생들이 편안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배려를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 3학년/4학년 : 이번 주에는 4학년 학생들이 크게 열받을 만한 일을 만들지 않아서 비교적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수업을 했다. 지난 번에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 했던 숙제도 잘 해 왔고. 3학년은 명절 연휴 때문에 하루 앞당겨 수업을 했는데 두 명은 벌써 고향에 간 것인지 나머지 두 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수업에 온 학생들도 이상하게 힘이 없고 축 처져 있어서 수업도 덩달아 좀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가지고 갔던 홍삼 캔디를 쉬는 시간에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왜 이렇게 힘이 없느냐고 했더니 그래도 후반부에는 조금 분위기가 나아지긴 했는데, 휴일을 보내고 온 뒤에는 좀 더 활발하고 적극적인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생활

화요일에는 룩소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단원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각자 한 가지씩 준비를 해 와서 나누어 먹었는데 내가 만들어 간 찐빵 외에 떡볶이(무려 어묵도 들어간!)와 골뱅이 소면, 샐러드 등 푸짐한 한 상이었다. 지난 번에 카이로에 갔을 때 팥을 구해 온 기념으로 이 날 찐빵은 야채찐빵과 팥찐빵 두 가지를 만들었다. 팥 삶아서 으깨고, 곱게 체에 거르고, 거기에 설탕 넣어 다시 앙금으로 만드는 과정은 길고도 복잡하였지만, 남는 게 시간인 이 곳에서라면 못 할 게 없다. 그리고, 아무 가공도 되지 않은 재료에서부터 시작해 완성된 요리를 만들다 보면,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이 정말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게다가 가공되지 않은 재료라고 해도, 실제로는 그 앞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농부들의 시간과 노력이 숨어 있는 것이니 허투루 볼 것이 아닌 것이다. 아무튼 팥을 넣은 쑥찐빵과 야채소를 넣은 통밀찐빵 모두 맛있게 잘 만들어졌다 :)

전 날 만들어 둔 야채소와

시간과 노력의 결정체 팥앙금

반죽도 통밀과 쑥 두 가지 준비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분할하고

그 위에 소를 얹은 다음

동그랗게 오무려준다

완성된 통밀찐빵, 찌기 전

쑥향이 솔솔 나는 팥찐빵

야채소도 쑥 향과 잘 어울렸다


게스트하우스 옥상은 거의 노천 카페와 같은 분위기라서 (손님은 그리 많지 않지만 실제로 그 호텔에서 식당 겸 카페로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책 한 권 가지고 가서 읽고 있기에 참 좋다. 우리 집에는 햇볕이 별로 들지 않아서 항상 불을 켜 놓아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자연광을 느낄 수 있고, 요즘은 날씨가 한국의 늦여름-초가을 정도로 딱 좋기 때문에 밖에 앉아 있으면 선선한 바람도 불어서 정말 딱이다. 또, 옥상에 앉아 있으면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시는 여행자 분들과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되고, 내가 전혀 모르는 세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이 또한 흥미롭다.

게스트하우스 옥상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고

한 쪽에 부엌으로 쓰는 공간이 있다


그래서 나는 돈 되는 손님도 아닌 주제에 한 번 가면 몇 시간씩 앉아 차도 얻어 마시고, 놀러온 주민들과 이야기를 하며 놀기도 한다. 그렇게 신세를 지는 미안함을 덜고자, 하루는 초코칩 쿠키를 구워서 가져갔다. 쿠키는 손이 많이 가는 데 비해 내가 좋아하는 바삭한 정도를 맞추기는 어려워서 평소 잘 굽지 않는 품목이나, 이 날은 어차피 내 입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용감히 대량 생산했는데 먹은 사람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오븐에 들어가기 전

구워지면서 부풀어오른다

완성된 초코칩쿠키


수요일에는 코이카 사무실에 신청했던 책이 택배로 도착했다. 이번에 빌린 책들은 '핀란드 교육혁명', '88만원 세대', '무중력 증후군' 등인데 다행히 명절 전에 도착해서 휴일에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12월 중순에 반납이니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토요일은 ACE에 야옹이와 멍멍이들 밥 주러 가는 날이다. 8시에 도착해서 1시간 정도면 밥 주고 물 갈아주는 일은 모두 끝이 나고, 그 뒤부터는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거나 앉아서 고양이들과 놀아주면 된다. 고양이들만 해도 10마리 정도 되다 보니 여기저기서 쓰다듬어 달라고 붙는 냐옹이들이 많다. 간혹 여행자들이 구경을 오면 안내해 주는 것도 자원봉사자의 몫이지만 나는 아직 그걸 하기에는 내공이 부족해서 따라다니며 관찰만 하고 있다. 이 날은 까만 고양이와 조금 친해졌다. 

온 몸이 새까만 고양이

빨간색과 까만색의 조화?

숨은 고양이 찾기

얌전해 보였던 이 녀석

나중에는 발라당 누워 잤다

ACE 티셔츠 입고 사진 한 장!


이번 주에는 오랜만에 샘하우스에도 놀러 갔었다. 그 동안 샘 아저씨가 한동안 카이로에 가 있었고, 나도 카이로에 다녀온 이후 개강을 해서 바빴던 관계로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서 꽤 오랫동안 보지 못 했다. 늘 그렇듯 나는 먹을 것을 만들어서 갔고, 샘은 먹을 것을 내놓았고, 또 싸주었다. 진짜 오랜만에 코샤리를 먹고(코샤리를 좋아하는데 밖에서 잘 안 사먹다 보니 먹을 일이 별로 없다) 잘 놀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샘이 챙겨 준 종합과일세트를 보면서 괜히 부자가 된 듯한 기분에 흐뭇해했다.

그냥 길거리에서 파는 코샤리

콩의 비율이 높은 것을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편

샘이 직접 챙겨 준 종합과일세트

세어보니 총 11종의 과일이 있었다


일요일에는 성당 가서 오랜만에 고해성사도 드렸고, 교회도 갔다가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은 뒤 운동을 하러 갔다. 아래 사진을 보면 룩소르 신전 앞에 사람들이 꽤 모여 있는데, 아마도 명절 당일에는 이것보다 몇 배는 더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길거리에는 곧 잡혀먹을 운명의 양들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정말로 길에서 양을 잡아 피가 흐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심란해졌다. 다음 주가 되면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