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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7일 월요일 ~ 11월 13일 일요일


업무

수요일까지는 현지 명절 연휴로 인해 수업이 없었고, 목요일에는 1학년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갔다. 그런데 정말 황당하게도, 휴일이라고 학교 건물 전체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금요일은 원래 쉬는 날이니 목요일은 우리로 치자면 징검다리 휴일에 해당해서 다른 수업들은 휴강을 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전기까지 안 넣어 줄 줄은 몰랐다. 결국 수위 아저씨에게 늦게라도 오는 학생들이 있으면 오늘 한국어 수업은 휴강이라고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생활


이번 주는 수업이 없어서 평소 하던 대로 운동을 하는 외에는 책을 읽거나 베이킹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 동안 만든 것들은, 몰라세스와 중동의 참깨 페이스트 '타히니'가 들어간 브라우니, 스위트콘 알갱이가 쏙쏙 박힌 옥수수스콘, 홍차 향이 향긋한 얼그레이 케이크. 그리고 11월 11일 빼빼로데이를 기념하여 빼빼로와 길쭉한 호두스틱도 만들어 봤다. 완성품들은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룩소르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식회를 가졌는데, 고양이도 옥수수스콘에 관심을 보였으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P

게스트하우스 상주 냐옹이

이상한 자세로 잠을 잔다

사람이 아닌가 싶은 고양이

요즘 룩소르 날씨는 최고다

타히니+몰라세스 브라우니

엄청 촉촉하고 찐득한 브라우니

담백하고 구수한 옥수수스콘

중간중간 옥수수알갱이가 있다

얼그레이 케이크

까만 것은 홍차 알갱이

포슬하고 촉촉한 식감

2011년의 빼빼로

쿠키를 구워 초코렛 코팅

얼그레이 케이크와 함께 배달

호두와 건포도가 들어간 빵

오월의 종의 호두스틱이 생각났다


올해가 밀레니엄 빼빼로데이니 뭐니 하면서 곳곳에서 빼빼로를 엄청 팔아대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상술인 게 분명하지만, 중학교 때 친구들과 빼빼로를 주고받았던 기억(사실 생각해 보면 그냥 각자 하나씩 사 먹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목숨 걸고 주고 받았을까 싶긴 하지만)이 있는 나에게는 이 날이 나름 특별한 날인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빼빼로'라는 물질이 아니라, 늘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날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 그 날을 함께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과 이야기가 아닐까. 작년에 나는 빼빼로를 만들다가 코팅에 쓰려던 초코렛이 제대로 안 녹는 바람에 설탕을 녹여 피스타치오 토핑을 했었고, 그 빼빼로를 들고 천안에 가서 K 선생님을 뵈었고, 고등학교 친구 A와는 함께 채식 뷔페에서 점심을 먹었더랬다. 그리고 그 날은 페루로 사람들이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혹시 비행기라도 눈에 띄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하늘은 올려다보지도 못 했었다. 이런 사소한 것들로 가득한 기억 위에, 올해의 빼빼로데이의 추억이 또 한 겹 쌓였다. 굳이 빼빼로를 사지 않고도 빼빼로데이를 기억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냥 모두가 하는 방식을 따르는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하루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이번 주로 내 나름의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딱 두 달이 되어서, 오랜만에 체중계에 올라가 봤더니 두 달 동안 총 5kg의 살이 떨어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 예전에 먹는 것을 확 줄여서 10kg 정도 감량해 본 적이 있는데 결국 2년 정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정말 정석대로 해 보자는 마음으로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고 있다. 그 때를 돌이켜 보면, 정말 계단 올라가는 것도 힘들 정도로 몸에 힘이 없었는데 지금은 정상적으로 먹으면서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건강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의 목표가 한 달에 2.5kg씩 세 달 동안 7.5kg을 감량하는 것이었으니 일단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운동하는 게 습관이 되면서 하루 이틀 운동을 안 가면 왠지 마음이 무거워지고 다음 날엔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운동이 너무 좋아~' 이런 것은 또 전혀 아니다. 하기 전에도, 하는 동안에도 귀찮고 힘들어서 '오늘은 그냥 여기서 그만할까' 하고 수백번 생각하지만, 그래도 꾹 참고 끝내고 나면 기분 좋고 보람있다.  

갑자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씩 끄적여보고 있는데, 역시 나에게는 길게, 자세하게 쓰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추억이라거나, 전통적인 가족은 아니지만 친밀감을 형성해 나가면서 서로에게 제2의 가족이 되어주는 것- 대강 이런 것인데 이걸 직접 이야기하는 대신 인물, 사건, 배경 이런 것들을 치밀하게 엮어서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 왜 소설가들이 매일같이 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일정 시간을 앉아있어야 하는지, 좀 알 것 같다.  

룩소르도 요즘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가을 느낌이 나고 있다. 언젠가부터 '가을' 하면 전어가 아니라 고구마, 호박 이런 것들이 떠오르게 되었는데, 여기 고구마는 별로 맛있지가 않고(아 그리운 호박고구마와 밤고구마-) 호박은 처음 사 봤는데 딱 늙은 호박 맛으로 괜찮다. 호박을 푹 쪄서 삶아두었던 팥이랑 오트밀을 넣고 호박죽을 끓여서 며칠 동안 아침으로 잘 먹었다. 호박죽을 먹고 있으니 할머니와 호박전도 생각나고, 초량 죽집에서 파는 호박이 엄청 많이 들어간 호박 시루떡도 생각나고, 과외갔다 오는 길에 종종 사먹었던 포장 호박죽도 생각났다. 먹는 것에 대한 기억은 어째 없어지지도 않는다.

메이플 시럽 살짝 뿌린 오트밀 호박죽

팥 알갱이들도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