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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4일 월요일 ~ 11월 20일 일요일


업무

1. 1학년 : 명절을 보내고 오랜만에 하는 수업. 이제까지 배운 내용 것을 잘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한 명씩 인터뷰 형식으로 문답을 진행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별 문제가 없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아직도 한글 쓰는 순서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대부분의 글자와 달리,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기 때문에 한글 쓰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하고 있었고, 또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경 써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데 아직도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답답했다. 아무리 어렵다기로소니 내가 내 준 숙제를 제대로 된 방식으로 하기만 했다면 이제는 몸에 익을 법도 한 것 아닌가! 그래서, 정 어려우면 지금이라도 다른 언어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했으나 이 학생은 그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 했고, 다른 학생들이 중간에서 통역을 해 줬지만 어쨌거나 그럴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단순히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 해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열심히 공부해도 그런 상황이라면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 학생 본인을 위해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인데 학생의 입장에서는 이런 내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겠지. 다음 수업에서도 발전이 없으면 그냥 강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학생은 다음 수업에서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서 문제 없이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까불거리는 학생 하나 때문에 좀 정색을 할 일이 있었다. 무스타파라고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한국어 수업에 합류한 학생인데, 머리가 좋은 편이라 가르치는 내용을 금방 이해하고 발음도 좋고 영어도 좀 하는 편이어서 자기 뜻을 잘 전달한다. 다만 진지해야 할 때 농담을 던지거나 자기 편한 대로 하고 넘어가려는 경우가 있는데, 이 수업에서도 그 전에 명절을 보내느라 인터뷰를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너무 당당하게 이야기를 해서 까칠한 김선생을 열받게 하고야 말았다. 내가 '정말로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냐, 아니면 공부를 할 시간은 있었는데 안 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후자라고 했다. 그런 거라면 너는 그냥 게으른 학생인 것이고, 나는 게으른 학생을 가르칠 생각이 없다, 공부를 못 해 왔다면 적어도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다음 시간까지 열심히 해 오겠노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고 따졌더니 그제서야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가끔 이런 식으로 예의가 부족한 태도 때문에 정색을 할 일을 만들기는 해도 전반적으로 똘똘한 학생이니 잘 가르쳐야겠지.

2. 3학년 : 숙제도 잘 해 왔고, 쪽지 시험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지지난 주에 결석한 여학생 와르다가 이번 주 수업에도 눈이 아파서 못 온다고 문자를 보냈다. 일단 문자로 미리 자신이 못 온다는 것을 알린 것까지는 좋은데, 몇 번 되지도 않는 수업에 빠지는 것을 보니 좀 속상했다. 아예 한국어를 포기한 학생이라면 나도 그냥 신경을 안 쓸 텐데, 남아 있는 3학년 학생들은 다들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을 하는 학생들이라 더 그런 것 같다. 이번 학기가 정확히 언제 끝날 지는 아직 모르지만 12월, 늦어도 1월에는 끝날 것이라 생각하면 그 때까지 남은 수업도 몇 번 안 된다. 교재로 쓰는 문법책의 절반은 커녕 이제 2과 진도를 나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전반적으로 좀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 중이다. 
 
3. 4학년 : 학생 하나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다른 학생들에게 연락을 해서 이번 주 수업은 쉬게 되었다. 지난 학기에도 종종 이런 식으로 개인 사정 때문에 수업을 미뤘던 학생이어서 이번 학기에는 그런 일이 생기면 그냥 이 학생을 빼고 수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아닌 다른 학생들에게 연락을 해 와서 결국은 휴강을 하게 되었다. 4학년 홍일점인 여학생인데, 다른 남학생들은 워낙 우유부단하고 순해서 그 학생이 어떻게 하자고 말을 하면 그냥 따르는 편이다. 이집트의 우먼 파워를 보는 것 같아서 좀 재밌기도 하고, 뭐 그렇다.    


생활

화요일에는 샘하우스에 갔다가 커다란 호박 한 덩이를 받아왔고, 수요일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저녁 초대를 받아서 밥을 먹으러 다시 샘하우스에 갔다. 주 메뉴는 스페인식 오믈렛이었는데, 계란을 안 먹는 나를 위해서는 콩으로 만든 샐러드 두 종류와 이집트식 샐러드가 준비되어 있었다. 샘이 만드는 샐러드는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내가 집에서 만들면 그 맛이 안 나기 때문에 초대받았을 때 열심히 먹는 수밖에 없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그 비법을 알아내야 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

두 종류의 오믈렛과 샐러드

렌즈콩 샐러드, 로비야 샐러드, 이집트식 샐러드


화요일에 샘하우스에서 받아 온 호박 덕분에 이번 주에는 전부터 꼭 만들어 보고 싶었던 호박 케이크를 구울 수 있었다. 호박 퓨레와 시나몬, 넛맥 같은 향신료가 들어가서인지 오븐에서 굽는 동안 매우 향긋하고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났다. 호박 퓨레 남은 것으로는 호박 와플도 굽고, 호박과 두유를 섞어 호박 라떼도 만들었다. 그야말로 가을의 맛. 호박 한 덩이 덕분에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다 구워진 호박 케이크

촉촉하고 부드럽다

호박 와플과 오렌지, 호박 라떼

와플 위에는 대추시럽과 해바라기씨

호박 라떼 위에는 시나몬 약간


호박 케이크 굽는다고 오븐 돌리는 김에(오븐이 꽤 크다 보니 한 가지만 구우면 왠지 아까운 느낌이 든다) 주변 사람들 나누어 줄 다른 빵도 몇 종류 같이 만들었다. 옥수수 스콘은 만들기도 쉽고 맛도 괜찮아서 한 번 더 구웠고, 예전에 만들었던 데이트 스퀘어스, 그러니까 대추야자 페이스트를 넣어 구운 쿠키 비슷한 빵도 구웠는데 처음 구웠을 때보다 더 낫게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빵들은 다시 하나 하나 싸서 주변 코이카 단원과 한국인 이웃, 샘 아저씨 등등 여러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선물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지 실험(?)해 보는 의미도 있다. 빵을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취미이기 때문에 이걸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정말 잘 만들게 되면 그 때는 좋은 취지 아래 내가 만든 빵을 팔아서 기금을 마련하는 Bake Sale 같은 것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 때까지 괜찮은 레시피들을 많이 모아둬야지 :P

옥스스 스콘과 대추야자 쿠키빵

호박 케이크

이렇게 한 종류씩 사람들에게 선물


요즘 룩소르의 날씨는 아주 최상이다. 새벽과 밤에는 약간 쌀쌀하지만 낮에는 선선하면서도 햇볕 때문에 따뜻해서, 한국의 가을과 비슷한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 룩소르 여행의 최적기가 시작되는 것인지, 여름에 비하면 길에 여행자이 많은 편인데 이것도 혁명 전에 비하면 엄청 적은 수라고 한다. 게다가 타흐리르 광장에서 군부가 물러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다시 시작되면서 살짝 늘어나던 여행자들이 다시 줄어드는 것 같아 좀 걱정이다.

운동하러 가다가 본 정말 예쁜 하늘

솜사탕 같은 구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