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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5일 월요일 ~ 12월 11일 일요일


업무

1. 월요일에는 정말 황당한 생일파티가 있었다. 내 생일은 6월 12일인데, 06/12를 12월 6일로 착각한 학생들이 갑자기 생일을 축하해 준다고 자기들끼리 케이크며 선물을 준비해 온 것이다. 덕분에 여름에 태어난 내가 겨울에 생일을 축하받는 황당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Happy Birthday 김'이라고 적힌 케이크를 보니, 제과점에 가서 직접 '김'을 그려주었을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정말 고마웠다. 아래 사진을 보면 케이크를 자르면서 아주 환하게 웃고 있는 보기 드문 사진이 있는데, 사실은 케이크를 자르다가 칼이 자루에서 분리가 되는 바람에(빵칼도 아닌 식칼 같은 무서운 칼이었음) 어이가 없어서 웃고 있는 모습이다.

초코케이크 과일케이크 반반

케이크를 자르다 부러진 칼

나에게 특별히 '김' 부분을 줬다


2. 여러 학년을 가르치다 보니 학년마다 분위기가 참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먼저 이번에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은 대부분 적극적이고 활발하다. 모르는 것은 확실하게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고, 아는 것은 서로 먼저 이야기하려고 하기 때문에 수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편한 것도 있다. 대신 간혹 수업 분위기가 산만해지는 경우가 있어서, 학생들이 풀어질 만하면 잔소리를 해서 한국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그러고 보면 위의 엉뚱한 생일파티도 1학년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준비한 것이니, 더 오래 보았는데도 낯을 가리는 편인 3, 4학년 학생들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생일파티 후에 나도 1학년 학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뭘 할까 고민을 하는데, 전에 수업 중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한 학생이 모나미 볼펜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한국 볼펜이라고 자랑했는데, 다른 학생들이 이집트 볼펜은 안 좋다고 입을 모아 말했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집에 있는 볼펜도 작은 것이지만 나름의 선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볼펜에다 하나 하나 학생 이름을 써서 선물로 주었더니 다들 좋아했다.
  

학생 아홉 명의 이름이 적힌 볼펜들


그런가 하면 3학년 학생들은 예전부터 이야기했듯 하나같이 조용하고 차분하다. 수업 중에 떠들거나 까부는 학생도 하나 없고, 아는지 모르는지 표현도 명확하지 않다. 나는 일단 조용한 수업 분위기를 좋아하고, 또 실제로는 모르면서 말로는 안다고 하는 경우가 더 문제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아예 말이 없는 3학년 학생들과는 별 문제가 없다. 게다가 아예 자기표현을 안 하는 것도 아니라서 궁금한 거나 부탁할 일은 이야기를 하니까. 사실 개인적으로는 3학년 학생들이 한국어를 좀 잘 하게 되어서 내년부터 관광한국어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소망일 뿐이다. 4학년 학생들은 수업에 열심히 나오는 학생이 반, 안 나오는 학생이 반인데다 열심히 나오는 학생들마저 한국어 기초가 약한 편이어서 매번 수업을 할 때마다 '참을 인'을 되뇌이게 만들고 있다. 3학년 학생들만큼 조용하긴 한데 진지함이나 열의는 좀 부족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수업 분위기에서 미세한 차이가 난다. 그저 '학년'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모아놓았을 뿐인데도 이렇게 분위기나 성향이 다른 것은 서로 서로 미치는 영향 때문인 건가.
 
3. 파견 2차 반기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2차 반기보고서는 파견 1년 시점에 작성하는 것이니 내가 이곳에 온 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는 이야기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 몇 달을 보냈기 때문에 완전히 1년을 채운 것도 아니라서 더 '벌써 1년'의 느낌이 강한 것 같다.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보니 앞으로는 좀 더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

월요일에는 공식적인 손님이 룩소르를 방문하셔서 호텔 일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다른 단원들이 열심히 스시를 먹는 동안에 나는 오이가 들어간 김초밥, 야채 샐러드, 야채 튀김을 먹었고 본요리 옆에 나오는 야채 볶음도 맛있게 먹었다. 사실 처음 채식을 시작할 때는 교수님 같은 어른들 앞에서 채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가 불편해질까 걱정했는데 지금까지 지내면서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보통 주변의 채식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시거나, 건강 상의 문제는 없는지 물어보시는 것이 전부였다. 이 날도 식사를 하던 중 어쩌다가 채식을 한다는 것을 밝히게 되었는데 덕분에 야채 샐러드는 내 것이 되었고 다른 단원들도 '채식을 하지만 더 잘 해 먹고 지낸다, 같이 모임을 할 때 불편한 것은 없다' 등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 주어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화요일에는 샘하우스에 가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을 얻어 먹고 돌아왔다. 요즘 같은 겨울 날씨에 딱 맞는 따끈한 채소 수프와 피티르를 먹었는데, 피티르는 일종의 페스트리 같은 빵으로 얇은 겹의 밀가루 반죽 사이에 기름이 발려 있어 고소한 맛이다. 손님이 찾아와서 샘이 일을 하는 동안에 이 날 장 볼 것들을 생각하면서 끄적 끄적 목록도 만들었다. 여기는 채소가 비싸지 않다 보니 아래 적힌 것들을 모두 사도 만원이 안 나온다. 풀을 먹는 사람에게는 참 좋은 곳이다.

따끈한 국물이 맛있는 채소 수프

쫄깃하고 고소한 피티르

이 날 사려고 생각했던 것들


목요일에는 아주 오랜만에 성경공부 모임이 있었다. 그 동안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여러 번 취소가 되었던 탓에 거의 두 달 만에 모임을 한 것 같은데, 이 날 읽은 부분은 솔로몬 왕 이야기였다. 솔로몬 왕이 하느님께 지혜를 청했을 때 직접 청하지 않은 좋은 것들도 함께 받았던 것, 나중에 가서 외국인 아내들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것 등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작정 '좋은 짝을 보내주세요'라고 청하기 전에, 하느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게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그에 맞는 '좋은 짝'도 만날 수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번 주에 만든 특별한 채식 요리는 '갈비 없는 갈비찜'이었다. 표고버섯, 무, 밤, 감자, 당근, 양파를 주재료로, 배를 갈아넣고 대추야자도 집어넣어서 만든 고기 없는 갈비찜은 (내 기준에서는) 대성공이었다. 사실 표고버섯은 아끼느라 평소에는 많이 쓰지도 않는데, 다음 주에 한국에서 오시는 분이 표고버섯을 갖다주실 예정이어서 이 날은 큰 맘 먹고 10개나 사용을 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갈비찜을 먹은 지 오래되어서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갈비찜 맛이 나서 신기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주인공이 빠진 이상한 음식으로 생각되겠지만, 호랑이 없는 골에서는 토끼가 왕이라고, 갈비 없는 갈비찜에서는 나머지 재료들, 그러니까 버섯과 무와 밤과 감자와 당근과 양파 하나 하나가 다 주인공이어서 진짜 맛있었다. 그리고 지난 주에 식당에 가서 먹었던 렌즈콩 수프도 시도했는데 비슷하게 만들어졌지만 어딘가 1% 부족한 맛이어서 아쉬웠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다음 번에는 토마토를 빼고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어쨌거나 부드러운 렌즈콩 수프가 만들어진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갈비 없는 갈비찜

해초밥과 함께 먹었다

표고, 당근, 감자, 무, 밤까지 총동원

곱게 갈아서 만든 렌즈콩 수프

과카몰레를 얹은 통밀빵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