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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2일 월요일 ~ 12월 18일 일요일


업무

1. 월요일에 1, 4학년 수업이 있었고 목요일에는 아스완에서 선거가 있어(지역별로 몇 번에 걸쳐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중) 투표를 하러 가는 학생들의 요청으로 휴강을 하게 되었다. 1학년은 드디어 한글 자모음을 모두 끝내고 월요일 수업에서 자음 이름을 공부했는데, 처음에는 '기역, 니은'과 '가, 나'를 헷갈려했지만 금세 잘 따라왔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숙제로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oo입니다.'와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쓰도록 줄이 그어진 A4 종이를 나누어주었는데, 학생들은 하나같이 줄과 줄 사이에 글씨를 쓰는 대신 줄 위에 걸쳐서 글씨를 써 온 것이었다. 아랍어는 기준이 되는 줄이 가운데에 있고 그 아래 위로 글자가 놓인 형식이기 때문에 한글도 그런 식으로 쓴 것인데, 아주 작은 부분인데도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4학년 학생들은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는데, 한 학기 동안 거의 한 번 얼굴을 비춘 학생 두 명이 갑자기 수업에 와서 좀 당황스러웠다. 그 동안 사정이 있어서 못 왔다는데 잔소리를 해 봐야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하던 대로 수업을 했는데, 한 학기 동안 겨우 두 번 수업에 오면서 대체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아예 안 오는 것보다는 두 번 오는 게 그나마 나은 거라고 생각해야 하나.

2. 2주 전만 해도 종강이 언제인지 정확히 모르던 우리 학교. 이번에 다시 찾아가니 12월 중순 이후로 수업은 종강하고 1월 초순에 시험을 본다고 한다. 한국어 수업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2학기에만 시험을 보기 때문에 이번 학기에는 시험이 없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확인하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니 시험을 안 볼 수가 없다. 다음 주로 수업을 끝내고 12월 마지막 주에 기말고사를 보고 나면 짧았던 이번 학기가 마무리 될 것 같다. 


생활

이번 주에는 한국에서 오신 손님이 있어서 오랜만에 동안과 서안의 유적지를 다시 한 번 방문했다. 올해 이고스를 졸업하고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한국어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모하메드가 과연 잘 하고 있는지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지켜본 바로는, 가끔 발음 때문에 되물어야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꼭 필요한 내용을 전달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정도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한국인 여행자들도 '한국어를 하는 이집트인'이라는 사실 자체를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룩소르의 거대한 유적들에 담긴 이집트의 역사, 문화, 그 밖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전달하려면 아직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건 전달 수단인 언어의 문제라기보다 전달하는 내용과 그것을 구성하는 데 관한 문제인데, 지금도 나쁘지는 않지만 좀 더 노력하면 훨씬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결국은 내가 더 읽고 공부해서 빨리 가르쳐야겠다는 것이 결론.

카르낙 신전 대열주실에서, 모하메드


이번에 처음 방문한 하부 신전

카르투쉬를 엄청 깊게 팠다

신에게 뭔가 바치고 있는 파라오


서안을 돌아본 후에 해가 지는 시각을 맞추어 자그마한 돛단배인 펠루카도 탔다. 룩소르에 온 지 8개월이 되었지만 펠루카를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과 한가롭게 앉아서 강변 풍경과 하늘을 감상하다가 오랜만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도 찍었다. 이 날 심지어 마차까지 탔는데 이것도 처음이었다. 길을 걸을 때 마차 아저씨들이 부르면 매번 '나 여기 살아~ 안 타' 이러고 지나가곤 했는데, 처음으로 마차에 앉아서 익숙한 길을 지나다니고 있으니 마치 관광객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좀 신기했다. 과한 호객행위와 바가지 요금만 아니면 간혹 기분전환 삼아 탈 만 할텐데 안타깝다.

처음으로 타 본 펠루카

한가로운 나일 강의 오후

펠루카 천과 하늘의 조화

간혹 다른 펠루카들이 지나갔다

5시 즈음이 되니 해가 진다

조용히 앉아서 지는 해 보기

그러다 날아가는 새들 발견

아주 길게 늘어서서 날아가고 있다

나일강의 풍경

멤논의 거상 앞에서

펠루카 위에서, 명/암


금요일에는 덴데라 신전에 다녀왔다. 덴데라는 룩소르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북쪽으로 떨어진 곳인데, 하토르 여신의 신전이 있다. 전 날 벼락치기로 덴데라 신전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보존상태가 꽤 좋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과연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곳이었다. 신전 내부의 분위기에서부터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지하실과 그 안의 조각, 천장에 그려진 하늘의 여신 누트와 12 별자리, 신상이 보관되어 있었던 감실, 신전 바깥 벽의 정교한 조각까지, 볼 것들이 참 많아서 한 시간 반이 금세 지나갔다. 개인적으로는 이제까지 본 신전들 중에 가장 좋았던 곳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토르 여신 머리를 한 기둥

천장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얼굴이 여신 누트

감탄하게 만들었던 지하실 벽의 조각

신전 바깥 벾의 조각도 매우 정교하다


이건 개인적으로 수집(?)하고 있는 '옛날 낙서 컬렉션' 중 몇 개다. 200년도 전에 이미 이 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자기 흔적을 남기고 갔다는 것이 왠지 나에게는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대강 펜으로 끄적인 낙서가 아니라 공들여 파 놓은 낙서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문화재 파손'이지만, 지금은 이것도 유적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룩소르 유적에 있던 옛 낙서

1800년대 여행자들이 파 놓은 것

덴데라 신전에도 어김없이 낙서가


룩소르에는 내가 좋아하는 빵(통곡물로 만든, 겉이 거칠고 딱딱한 빵)을 파는 곳이 없어서 이제까지 계속 만들어 먹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졸리빌 호텔에서 빵을 사 봤다. 운동하러 간 김에 혹시나 싶어 레스토랑에 들러 빵을 사 갈 수 있냐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종류 별로 가격 리스트까지 가지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었다.  500g 정도 되는 한 덩어리가 18기니였으니 슈퍼마켓에 파는 빵이나 현지 베이커리 빵보다는 꽤 비싼 편이지만, 만들어 먹는 수고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심지어 이 날 사온 빵 안에는 호밀인지 뭔지 모를 곡물 알갱이까지 박혀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빵칼로 잘 썰어 냉동실에 넣어두었으니 2주 정도는 걱정이 없겠다 :)

랩으로 포장된 빵

빵칼로 슥슥 썰었다

곡물 알갱이가 보이는 통밀빵


앞서 말한 '한국에서 오신 손님' 편에 몇 가지 물건을 전해받았다. 표고버섯, 들깨가루, 들기름, 곶감 같은 먹거리와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들어가는 배터리, 운동복 바지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것들 덕분에 완전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주소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룩소르에 살다 보니 편지도 소포도 받을 수 없어서 좀 불편하고 아쉬울 때가 많지만, 대신 '인편'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낄 수 있고 한국에서 온 물건들이 그만큼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것은 장점(?)일 것이다.


이제 곧 성탄이고, 그러고 나면 2011년을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된다. 하나를 잘 마무리하고 또 다른 하나를 잘 맞이하고 싶은 마음은 매년 똑같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고 대충 흘러보내지 말고 하루 하루 잘 살아야겠다는 뻔한 말로 35주차의 기록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