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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6일 월요일 ~ 1월 1일 일요일


업무

1. 화요일에는 주 이집트 대사님과 이집트 코이카 소장님께서 우리 기관에 직접 오셔서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 세 명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행사가 있었다. 기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기관 측에서 이미 룩소르 주지사를 통해 대사님의 스케줄을 전달받고 그에 맞춰 행사를 준비해 놓은 덕분에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급하게 결정된 행사여서 전체 학생들이 참석하지는 못 했지만 최소한 그 자리에 있었던 학생들은 대사님을 만난 것에 매우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좋았고, 또 한편으로 한국을 잘 모르던 학생들에게 새로운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수도와 멀리 떨어진 중소 도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와서 직접 학생들을 격려하고 선물을 준다는 것이 자주 있을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개인적으로 꼭 해 보고 싶은 '한국의 날' 행사도 내년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실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사님과 학교 관계자들

선물을 받은 아흐마드

학교 측에서 대사님께 선물 증정


2. 목요일에 1, 3학년 기말 시험을 보았다. 1학년은 성적은 나쁘지 않았는데, 학생들은 자기들이 100점을 맞으리라 기대를 해서인지 대체로 자신들의 점수에 만족을 하지 못 했다. 시험은 읽기 테스트로 학생들이 70개의 단어를 읽으면 그것을 듣고 내가 O, X를 표시해 점수를 내는 방식이었는데 가장 잘 한 학생이 (70점 만점에) 62점, 가장 못 한 학생이 48점 정도였다. 사실 한국인이 아니니까 발음 상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데다(그렇지만 구강 구조상 아예 발음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연습하면 가능하기 때문에 점수를 줄 수는 없었음) ㅏ와 ㅐ를 헷갈리는 등의 작은 실수를 하다 보면 그 정도 점수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내 입장이었는데, 어떤 학생들은 다른 과목에서는 다 100점을 맞은 데 반해 한국어는 이런 점수를 받아 속상하다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기준 자체가 높아서 100점은 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이 정도면 아주 잘 한 것이니까 실망하지 말고 다만 오늘 문제가 있었던 부분을 고치는 데 집중하라고 이야기했다. 이렇듯, 학생들이 좀 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쉬운 시험을 내는 것과, 자신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좀 어려운 시험을 내는 것 사이에서 항상 갈등하게 된다.

한편 3학년 시험은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서(라기보다 사실은 학생들이 공부를 안 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점수가 매우 안 좋았다. 이대로 성적을 기록해 버리면 한 명 빼고는 다들 낙제를 할 상황이어서 다음 주에 재시험을 보기로 했다. 뭐 학생들의 탓으로만 돌리기 어려운 게, 배운 문법을 사지선다 형식의 문제로 물어보았다면 다들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았을 것인데 내 욕심이 지나쳐 중요한 문장들을 한국어로 쓰게 해 버렸으니 그런 결과가 나올 법도 했다. 그렇지만 한국어를 배운 지 3년 째인데 그 정도 한국어 문장도 못 외워서야 어떻게 내년에 관광한국어를 배운단 말이냐. 공부 좀 해 제발.



생활

화요일에는 룩소르, 아스완 단원이 모두 한식당 김가네에 모여 대사님과 점심 식사를 했고, 이후 저녁에는 소장님과 식사를 하면서 안전교육을 받았다. 카이로에 비하면 큰 시위가 없고 훨씬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룩소르이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될 지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할 것이고 또 너무 밤 늦게 다니지 않는 것이 좋겠지. 다른 것 보다도 단원들이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는데, 교통법규를 거의 지키지 않는 이집트의 운전 문화를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마이크로 버스 운전사들이 험하게 차를 모는 거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걸어다닌다든지 길 건널 때 주위를 잘 살피는 정도라도 스스로 노력해야겠다.  

수요일에는 사무소에서 보내 준 책을 택배로 받았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읽을 책 약 스무 권이 도착한 덕분에 갑자기 책 부자가 되었다. 한동안 수업이 없는 방학이니 이 책들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보충해야겠다.

금요일에는 한 해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자 대청소를 했고, 토요일에는 저녁에 S언니와 함께 샘하우스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평소처럼 이집트 음식을 먹었는데 이 날은 특별한 날이라서 그런지 보통 때보다는 음식이 더 많았다. 밥을 먹은 뒤에는 이집트 전통 게임도 하고,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도 나누다가 돌아왔는데 나올 때 샘이 사과와 귤까지 챙겨줘서 고마움 반 미안함 반이었다. 현지 사람들 중에는 봉사단원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고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다행히 올 한 해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그런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냥 친구가 되려는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토마토샐러드, 렌즈콩 요리

다른 종류의 렌즈콩 요리

풀 (이집트 전통 콩 요리의 이름)


일요일 새벽에는 새해 맞이 벌룬투어를 다녀왔다. 원래 계획은 벌룬을 타고 상공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이었으나, 다른 벌룬들이 출발할 때도 여유를 부리며 벌룬에 바람을 넣고 있던 스탭들은 결국 우리가 땅 위에서 해를 보게 만들고야 말았다. 지난 번에 벌룬을 탔을 때는 나일 강을 건너 집 근처로 갔었는데, 이번에는 그 반대쪽인 카르낙 신전으로 올라갔다. 덕분에 하늘 위에서 카르낙 신전을 공짜로 구경할 수 있어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신 착지할 곳을 찾지 못해 한참 떠돌더니 농경지 가운데로 난 수로 옆에 이상하게 착륙하고 말았다. 2012년이 다이나믹한 해가 될 것이라는 뜻일까?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벌룬들

우리 벌룬은 바람 넣는 중

지상에서 일출을 맞이하다

2012년의 해가 떠오른다

아래로 보이는 카르낙 신전


벌룬투어를 다녀와서는 성당에 갔는데, 새로 김가네에 오신 사장님께서 가톨릭 신자이셔서 함께 미사를 드렸다. 점심 때는 사장님이 한국 사람들을 초대해 새해 떡국을 만들어 주신 덕분에 잡채, 떡국에다 다양한 한식 반찬까지 배부르게 먹고 왔다. 1월 1일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맞이할 수 있어 행복했다. 마음은 여유롭게, 그러나 몸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한 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