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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3일 월요일 ~ 2월 19일 일요일


업무

개강을 1주일 남겨 둔 이번 주. 시간표를 확인하러 여러 번 학교에 들렀지만 그 때마다 '내일 오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처음부터 그럴 거라고 예상을 하고 갔기 때문인지 이제는 그냥 담담할 뿐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이집트 식 일처리에 너무 적응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살짝 두렵기도 했다. 이 곳 사람들이 미래의 일에 대해 항상 '인샤알라(신의 뜻대로)'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본인을 합리화하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해 왔었는데, 요즘의 나를 돌아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을 닮아가지 않기'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생활

목요일에는 룩소르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룩소르 성당에서 한국어로 미사를 드릴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 살고 계신 교포 분들이었는데, 그 중에 신부님과 수녀님도 계셔서 미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작년 3월 말 이후로 처음 한국어로 미사를 드리는 것이었는데, 내가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익숙한 언어로 함께 기도드리고 성가를 부른다는 일만으로도 그렇게나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 시간이었다. 1년 남짓, 이곳 생활에 조금은 지쳐가고 있던 때에 의외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토요일에는 룩소르의 새로운 맛집탐방 차 'Regal Lounge'라는 이름의 영국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 식당은 룩소르에 사는 영국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고 여행자들에게도 인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내부를 둘러보니 이집트 식당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베지테리안 메뉴가 있는 Roast Dinner를 주문했는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이름이 Roast Dinner이지 않은가!) 구운 것은 감자밖에 없고 다른 채소(양배추, 당근, 콩)는 푹푹 삶은 것이어서 과연 제대로 나온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원래 Roast Dinner라는 것은 영국 사람들이 주로 일요일에 먹는 식사로, 구운 고기와 삶은 채소, 요크셔 푸딩(밀가루+계란+우유)과 그레이비 소스, 으깬/구운 감자 등이 제공된다고 나와있었다. 그러니 채식으로 먹자면 구운 고기를 제외하고 내가 받은 접시처럼 나오는 것이 맞았던 것이다. 즉, 그 쪽 음식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 하다 보니 생긴 오해였는데, 그러고 보니 룩소르 한식당에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기름이 잘잘 흐르는 중국식 볶음밥이나 풀풀 날리는 쌀을 예상했다가 실제 음식을 받고 간혹 항의를 하는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떠올랐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음식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 접시를 보니 꽤 많은 부분이 냉동/통조림의 냄새를 풍기는 것들이어서 식사를 위해 다시 들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이집트 식당과는 다른 분위기

편안히 앉아 쉴 수 있는 테이블

내가 먹었던 Roast Dinner

피쉬 앤 칩스

치킨 파네 (저 콩은 분명 통조림!)

내가 주문한 식사


한동안 모래 바람 때문에 흐릿하던 룩소르의 하늘은 다시 원래의 푸르름을 되찾았다. 항상 파란 하늘을 보고 생활할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는데, 유럽의 우중충한 날씨를 떠올리게 하는 흐린 하늘을 겪고 나니 새삼스럽게 이런 하늘을 보는 것이 참 감사하게 생각되어서, 한동안 찍지 않던 하늘 사진도 막 찍었다. 요즘 날씨 대로 쭉 갔으면 좋겠지만 곧 있으면 룩소르에는 여름이 오겠지, 흑.

다시 파아란 하늘이 되었다

요즘 졸리빌 호텔은 한창 나무 다듬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