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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0일 월요일 ~ 2월 26일 일요일


업무

이번 주에 개강을 했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개강 첫 주에는 거의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고향이 다른 도시인 학생들은 아직 룩소르로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라 (사실 어떻게 개강인 걸 알고 오는지 그게 더 의문이다) 수업은 다음 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 학기 수업 계획을 짜고 있는 중인데 2, 3, 4학년 학생들은 기존 수업에 더해 토픽 대비 수업을 일주일에 두 번 더 할 생각이고, 내가 전담한 1학년 학생들도 보충 수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일주일에 4시간의 수업 가지고는 도무지 얘네들의 한국어 실력을 향상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 1년 있어보고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더불어, 학과장을 몇 시간씩이나 괴롭힌 끝에 후임단원 신청서를 사무소에 제출하게 했다. 사실 지금 같이 일하는 J언니의 후임단원이 제 시간에 맞춰 인수인계를 받으려면 진작에 한국에서 선발이 되었어야 하는 것인데, 내 후임단원 신청서와 함께 제출이 되었으니 늦어버렸다. 잘못하면 한국 돌아가기 전 마지막 학기는 혼자서 전체 학년을 감당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중인데, 그렇다고 걱정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그냥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생활

수요일에는 성당에서 재의 수요일 미사를 드렸다. 평소 내가 가는 9시 주일미사에는 사람이 5~6명밖에 없는데, 이 날은 현지인과 여행자들을 합쳐 30명은 되는 사람들이 모여 평상시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이번 사순 시기에는 좀 더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들을 나의 십자가로 생각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기 전에는 잠깐 룩소르 신전 근처에 있는 현지 까페에 들렀는데, 깔끔하고 별로 시끄럽지 않아 좋았다. 여기서 내가 계속 찾고 있던 그림의 식탁보를 발견한 것은 의외의 소득.

벽에는 혁명에 관련된 사진들이

기차역-룩소르 신전 길에 위치

단순하지만 귀여운 느낌의 식탁보


이번 주부터 약 1주일 동안 룩소르에서는 아프리카 영화제가 열리는데, 마침 상영관(?) 하나가 운동하러 가는 길에 있어 토요일에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고 왔다. 올해가 첫 해인데다 사람들에게 홍보가 잘 되지 않아서인지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은 거의 영화제 관계자 뿐인 것 같았다. 이 날 본 영화는 '내 사랑 안달루시아(Andalousie, mon amour)'라는 모로코 영화였는데, 스페인으로 밀항하려고 모로코 해안 마을로 간 2명의 청년이, 실제로는 범죄자인 그 마을 이장 일당과 엮이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코믹 영화였다. 스페인 해안에 도착한 것으로 알고 법적 지위를 찾을 때까지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마약 만드는 일에 종사했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스페인이 아니라 모로코였고 지급받은 유로 화폐는 위조지폐였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스페인어 방송마저 다 가짜였던, 너무 슬프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는 감독과의 대화 시간도 있었는데, '그리스, 스페인 등의 경제가 위태로운 요즘도 여전히 모로코의 청년들은 유럽으로 떠나고 싶어하는가', '이러한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다룬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이 나왔다. 정말 오랜만의 영화관 나들이였던 데다 생각할 거리까지 주는 영화를 만나 더 좋았다.    

룩소르 아프리카 영화제 포스터

전체 일정을 담은 소책자

룩소르에서 보기 드문 문화시설

상영 전에 감독의 인사가 있었고

영화를 본 다음

감독 및 배우와의 대화


요즘에도 이것저것 잘 해 먹으며 살고있는데 막상 사진으로 남긴 것들은 별로 없다. 일단 한 번 해 본 요리는 사진을 잘 찍지 않아서이고, 요즘 먹은 것들이 주로 콩을 으깨 만든 스튜나 말린 나물 같은 것들이어서 찍어도 그닥 예쁘지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마 (비주얼이) 괜찮은 것들을 찾으니 아래의 제철 딸기를 듬뿍 올려 먹은 팬케이크와 콩을 듬뿍 듬뿍 넣어 만든 칠리스튜가 나왔다. 레시피의 Chilli powder와 Chille powder를 구분하지 못 하는 실수가 있긴 했지만 (찾아보니 Chilli powder는 고춧가루에 오레가노, 커민 등이 혼합된 것이고 Chille powder가 그냥 고춧가루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담백한 콩과 토마토, 파인애플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맛있는 스튜가 만들어졌다. 양이 많다 보니 한 번 끓이면 두 끼 분량 정도는 냉동시키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뒀다 먹는데 여기다 적당한 빵과 신선한 샐러드만 더하면 한 끼 식사가 쉽게 해결된다.

딸기를 올린 통밀 팬케이크

두 종류의 콩이 들어간 칠리스튜

옥수수빵+발사믹소스를 뿌린 샐러드


지난 주에 도서를 반납하고 다시 사무소에서 빌린 책들이 도착했다. 거기에 국내훈련 때 썼던 편지도 들어있었는데, 지금 읽으면 좀 오글거릴 것 같아서 아직 읽지는 않았다. 살짝 펴보기만 했는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거꾸로 한글 쓰기 방식으로 편지를 쓴 것을 보니 그 때 꽤 심심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바로 읽기에는 민망할 거라고 생각했거나. 아무튼 조만간 마음의 준비가 되면 편지를 읽고 처음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는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