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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2일 월요일 ~ 3월 18일 일요일


업무

1. 학교 파업은 이번 주에도 이어졌다. 처음에는 1주일 동안 학교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했지만 역시나 1주일이 지난 목요일에도 교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수업을 하기 위해 학생들과 나는 이 곳 저 곳을 전전해야 했다. 1학년 학생들과는 야외 카페와 실내 카페에서 각각 한 번씩 수업을 했고, 3학년 학생들의 경우에는 학생 원룸과 학교 앞 학원의 교실을 빌려 수업을 했는데 카페의 경우에는 따로 비용이 들어가니까 학생들 입장에서 부담이 될 것 같아서 여러모로 고민이 된다. 심지어 나는 선생님이라고 차 값도 안 받으려고 해서 더 미안하다. 학생 원룸은 작지만 나름 화이트보드도 마련되어 있어 수업을 하기에는 괜찮은 환경인데, 남학생 원룸이다 보니 여학생 부모님이 꺼려하셔서(이런 부분에서는 확실히 보수적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장소 때문에 머리가 좀 아프지만, 그래도 학교 문 닫아서 수업 안 한다고 좋아라하지 않고 나에게 연락을 해서 한국어 수업은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어 뿌듯한 마음도 든다. 파업을 끝내기 위한 움직임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언제쯤 해결이 될 지는 의문. 얼른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일주일 넘게 정문을 걸어잠근 학교


2. 1학년 : 목요일에는 학생들 사정으로 휴강이었고, 월요일과 일요일에 수업이 있었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정규 수업이고 일요일은 보충 수업인데 정규 수업에서는 Korean made easy 책을 이용하고 보충 수업에서는 한국어-아랍어 그림사전을 이용해서 단어를 가르친 후 외울 시간을 주는 식으로 수업하고 있다. 1학년 학생들이어서 진도를 천천히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보다는 학생들이 잘 따라오고 있어서 지난 주에 1과가 끝났다. 일단 한 챕터가 끝났으니 학생들이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생각으로 쪽지시험을 보겠다고 공지를 하고 이번 주에 시험을 봤는데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점수였고, 간혹 맞춤법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핵심은 다 이해했으니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시험'이란 자신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고, 시험 점수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시험에서도 중요한 것은 15점 만점에 몇 점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부분을 틀렸는지,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실수인지 아니면 정말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인지, 만약에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제대로 알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학생들에게는 그 점수 자체가 너무나 중요하게 느껴졌는지, 자신은 이런 식으로 시험이 나올 줄 몰랐다는 둥(내가 그 전 시간에 어떻게 시험 나오는지 다 설명했잖아!) 점수가 만족스럽지 않으니 다시 시험을 보겠다는 둥(일주일 시간 줬으면 공부를 제대로 했어야지!) 궁시렁거리는 바람에 막 머리가 아파왔다. 게다가 몇몇 학생들이 점수만 확인하고 기분이 상해서 시험지를 접어 넣는 모습을 보고 거의 폭발 직전까지 갔다. 틀린 걸 확인도 안 하고 집어넣는다는 것은 그냥 그 상태 그대로 살겠다는 거 아닌가.

어쩌면 그 학생들은 자신에게 나름 자부심이 있고, 자기가 기대했던 것보다 점수가 낮은 것에 실망을 해서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가끔은 학생들에게 좀 더 칭찬을 해 주고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시험을 내는 것이 필요한 걸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정말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곳에서 내가 깔끔하게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좋은 학생도, 노력을 하는 학생도 본 적이 없다. 두뇌 회전이 빠른 학생들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뭐가 중요한지 알아차리고 그것을 응용할 줄 아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학생은 만나지 못 했고, 내 기준에서의 '노력'이란 하루에 밥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 공부하는 건데 그런 학생도 보지 못 했다. 다들 '자기 나름대로' 똘똘하고 노력을 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진짜로 한국어를 잘 하고 싶다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게 필요한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하는 게 필요하다. 그걸 할 수 없으면 최소한, 자기가 투자하지 않은 부분에서 성과가 나올 것을 기대하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학생들에게 내 기준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복습과 숙제만을 내주고 있고, 성실하게 그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결과에 대해 스트레스를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자꾸 과정 자체는 생각도 안 하고 결과만 보고 징징대는 모습을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런 부분 때문에 우리나라 공교육/사교육 현장에 깊숙히 관여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찌 된 게 여기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게 되니 더 마음이 안타까웠다. 
 

3. 3학년 : 참 신기한 것은, 3학년 학생들은 1학년 학생들과 또 180도 다른 타입이라 시험을 어렵게 내서 점수가 바닥이어도 끽 소리도 안 하는 학생들이라는 거다. 어떤 면에서는 이제까지 스스로 성취한 경험이 너무 적거나 자존감이 좀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 편하다. 그렇다고 4학년 학생들처럼 아예 한국어를 버리거나(개강을 했는데도 연락이 없다) 의욕이 부족한 것은 아니어서 이번에도 보충수업을 좀 더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자신들은 시간이 많다고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학기와 마찬가지로 문법 책을 가르치고 있는데 가만 보아하니 정규수업만 가지고는 이 책을 다 끝낼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일주일에 두 번, 저녁에 보충수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 원래 수업 2개에 현재 토픽 특별수업이 2개 (J언니와 반씩 나눠하고 있음) 여기다가 보충수업이 2번, 이렇게 일주일에 총 6개의 수업을 듣게 되는 셈이니 이러면 아인샴스 한국어과 꽁무니라도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고 있다. 물론 아인샴스 애들은 원래 똘똘한 애들이라 그만큼 한국어를 잘 하게 되기는 어렵겠지만, 머리야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부분인 거니까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도 손을 대 보기로 했다.

토픽 특별수업은 4월에 있을 시험을 대비하려고 하는 건데, 사실 우리 학생들 수준에는 어려운 문제들이 많아서 합격은 기대하고 있지 않다. 그래도 시험 대비 수업을 듣다 보면 단어도 좀 더 많이 알게 되고, 한국어를 잘 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깨닫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번 주부터 수업을 해 보니 진도를 빨리 나가지는 못 하지만 문제를 통해서 문법과 어휘를 가르치고, 동시에 그걸 활용해서 회화 연습도 조금씩 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수업하는 내 입장에서는 재미있었는데 학생들 입장에서는 어땠을지 모르겠다. 뭐 공부라는 게 팽팽 노는 거 만큼 재미있을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써 먹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라는 건 분명 있는 거니까! 그걸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생활

음식 포스팅에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서 오랜만에 맘 잡고 카메라 꺼내둔 채로 칠리를 만들었다. 금요일에 있는 성경공부 때 돌아가면서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번이 내 차례라 그 때 가져갈 뭔가가 필요하기도 했다 :) 사실 나는 누가 만들어 준 '정통' 칠리를 먹어본 적이 없고 그냥 인터넷에서 보고 맛있어 보이는 레시피로 만들어 본 게 전부라, 만들고 나서도 이 맛이 맞는 건지 아닌지 좀 아리송했다. 그렇지만 일단 콩이 듬뿍 들어가 있는 데다 옥수수 알갱이도 톡톡 씹히고, 푹 끓인 토마토의 새콤달콤함과 고춧가루의 매콤함이 조화를 이루어서 맛있었다. 금요일에 먹어본 사람들도 접시는 싹싹 비웠으니 이 정도면 성공!

양파, 파프리카 등을 볶다가

토마토와 콩을 듬뿍 넣고 끓이면

매콤새콤한 칠리 완성


요즘 금요일에는 오전에 운동을 한 뒤에 가져간 도시락을 먹고 책을 읽다 돌아온다. 이 날 내가 가져간 것은 렌즈콩 수프와 샐러드였고, 함께 운동하는 언니가 가져온 것은 떡볶이(귀하디 귀한 떡을!)와 과일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에, 맛있는 음식과 예쁜 풍경이 더해지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귀한 떡볶이와 과일

렌즈콩수프와 샐러드


일요일에는 거의 두 달 만에 룩소르에 돌아온 샘 아저씨를 만나러 샘하우스에 갔다. 그 동안 아픈 허리를 치료하러 카이로 집에 가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지나간 생일도 축하하지 못 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특별히 케이크를 만들어 갔다. 파인애플을 밑에 깔고 구웠다가 뒤집는 'Upside-down pineapple cake' 레시피로, 만들기는 엄청 간단한데 샘을 비롯해서 다들 맛있다고 완전 좋아하면서 정말 계란도 안 들어간 거 맞냐고 물었다. (아, 요즘 사순시기라 콥틱 기독교인들은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다) 맛있다고 잘 먹어주는 걸 보면 참 기분이 좋다. 나도 오랜만에 샘하우스에서 밥을 얻어 먹었는데, 렌즈콩 수프를 한 입 떠 먹었다가 닭죽 맛이 나서 순간 깜짝 놀랐다. 이거 정말 채식 맞냐고 확인을 했을 정도였는데, 알고 보니 마늘과 기름이 듬뿍 들어가서 삼계탕 또는 닭죽 맛이 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걸 보면 우리가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동물성 식품의 '맛'이 소금과 기름의 결합이라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암튼, 나도 다음 번에는 렌즈콩 수프를 만들 때 통마늘을 넣어봐야겠다.

다 구워진 케이크를

뒤집으면 파인애플이 듬뿍

거꾸로 파인애플 케이크

닭죽 맛이 나는 렌즈콩 수프

이집트 콩요리와 토마토 샐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