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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6일 월요일 ~ 4월 1일 일요일


업무

1. 1학년 : 이번 주 1학년 수업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른 무엇보다도 학생들과의 사이에 벽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참 속상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시간이었다. 수업 자체로만 보면 그렇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교재의 구성이 간단해서 그런지, 문법을 간단히 다루고 넘어가서인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진도를 나가고 있고,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간단한 쪽지 시험을 보고 있는데 그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문제는, 수업 중간에 학생들에게 버럭하거나 짜증섞인 말투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곧 내가 수업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마 학생들 또한 내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고 그 자신들도 수업이 그렇게 재미있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버럭한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화가 났을 때 소리를 지르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는 강조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인 것이었다. 문제를 풀 때 한 번만 더 생각을 하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멍하니 앉아있거나,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옆사람과 떠들고 있거나, 틀린 발음을 고쳐줬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볼 때면 학생들에게 집중하라는 의미로,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이것이 학생들에게는 화를 내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 혼자 힘으로는 눈치도 못 챘을 텐데, 목요일 수업이 끝나고 한 학생이 와서 수업 중에 다른 애들이 웃는 것은 못 알아들어서 그런 것이라며 나에게 오해를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도중에 'shout'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순간 마음이 덜컹했다. 나는 소리지르는 한국어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나는 다섯 번 똑같은 걸 틀리는 학생에게 다섯 번 같은 설명을 해 줄 만큼 참을성이 많지도 않고,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웃는 것을 보며 같이 웃을 만큼 너그럽지도 않다. 그렇지만 한국어의 기초를 잘 닦고 싶은 학생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고, 스스로 노력하는 학생에게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선생이기도 하다. 내가 100% 옳지도, 그렇다고 틀리지도 않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직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있기에 오해가 생기는 부분이 있는 것일 테고, 나는 내 나름대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환골탈태해서 내가 아닌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이후로 며칠 동안 내가 학생이었을 때를 떠올려보며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해 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머리를 쓰지 않고 공부를 하려는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어떤 방법으로 머리를 사용하게 해야 할 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내 머리가 아닌데, 니 머린데, 니가 안 쓰면 내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단 말이다 흑흑. 이것도 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해서 나오는 말이겠지. 어쨌거나, 앞으로 길을 택하는 데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은 되도록 피해야겠다는 생각은 좀 더 굳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아닌 것 같아. 


2. 3학년 : 화요일 저녁 보충수업, 수요일 정규수업, 목요일 토픽수업, 토요일 저녁 보충수업. 정말 꽉 채워 수업을 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좀 더 생기면서 그냥 문장을 외워서 시험을 보는 대신 학생들에게 직접 한국어 문장을 만들어 보도록 많이 시키는 편인데, 구체적으로 조건을 주지 않으면(부정문을 만들어 보라거나, 미래 시제를 사용하라는 등의) 학생들은 매일 비슷비슷한 문장만 만들고 앉아 있는다. 내가 외국어를 배울 때를 생각해 보면 단어도 따로 꽤 많이 외웠고, 뭐든 하나 배우면 어떻게든 써 먹어 보려는 욕심으로 문장도 길게 길게 만들었는데 얘네는 어찌 이리 욕심이 없을까 싶어 토요일 수업에서는 학생들을 붙들고 이야기를 했다. 벌써 여러분이 배운 한국어가 꽤 되는데, 그거 쓸 지 말 지는 모두 자신의 선택이라고. 안 쓰면 그냥 아무 쓸모 없이 남아 있는 것이고, 쓰면 그게 여러분의 한국어 실력이 되는 거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더니만 다음 번 작문에서는 5분이 넘게 문장을 만들고 있다. 에고 단순한 녀석들, 귀엽다고 해야 할 지.

화요일 보충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비빔밥을 맛보게 해 주려고 아예 수업 자료를 만들고 비빔밥도 준비해 갔다. (아래 사진은 분명 '업무' 사진입니다!) 룩소르에도 한식당이 있지만 학생들이 가기에는 너무 부담이 되는 가격이라, 내가 혼자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한국 음식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제일 만만한 게 비빔밥이었다. 채식하는 내 입맛대로 고기는 빼고 다섯 가지 고명을 준비, 고추장에는 꿀을 섞어 너무 맵지 않게 만든 다음 알루미늄 그릇에다 1인분씩 포장했다. 수업에서는 비빔밥에 대해 공부만 하고 집에 가서 먹어보라고 했는데 다음 날 수업에 온 학생들이 맛있었다고 말 해 줬다. 고추장이 맵지 않을까 좀 걱정했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고추를 많이 먹어서인지, 맵지 않고 괜찮았다고 했다. 

표고버섯과 당근

오이, 양파, 애호박 볶음

밥 위에 재료를 얹고

가운데 고추장과 참기름 뿌려 마무리

비빔밥 학습지



3. 4학년 : 개강 한 달 만에 드디어 4학년을 교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도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그저 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수업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일단 이번 주에는 지난 학기와 마찬가지로 문법 수업을 했는데, 학생들이 두 번 수업 모두 관광 한국어를 공부했으면 한다고 해서 그렇게 변경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관광 한국어 '수업'을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배울 수준이 아직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인데 그렇다고 배우고 싶다는 걸 못 하게 할 수도 없고. 어렵다. 


생활

월요일에는 아침에 운동을 가려고 셔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예정된 시각에서 20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걸어서 호텔에 갔더니 호텔 정문 앞쪽 길에 택시들이 줄지어 시위를 하고 있었다. 운동을 하고 셔틀 버스를 타려고 하니, 리셉션에서 오늘은 셔틀 버스가 아닌 셔틀 보트를 운행한다고 선착장으로 가라고 했다. 인생사 새옹지마, 이 기회에 공짜로 보트를 타는구나, 하고 룰루랄라 보트를 타고 룩소르 시내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출발

나일강을 따라서

지나가는 크루즈도 구경

느긋한 호텔 숙박객들

서안의 집들도 구경했다


문제는 다음 날 발생했다. 아침에 셔틀 버스가 또 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직도 택시기사들이 시위를 하나 생각하면서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갔는데 택시들로 인한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리셉션에 가서 확인해 보니 원래 6번 운행하던 셔틀 횟수를 4번으로 줄이면서 9시 셔틀과 2시 셔틀이 없어졌다고 했다. 수업이 오후와 저녁에 있는 날이면 늘 9시 셔틀을 타고 가서 운동을 했던 터라 이 소식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매니저를 만나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그러면 직원용 셔틀을 탈 수 있게 해 준단다. 알고 보니 직원용 셔틀은 고객용 셔틀보다 차량은 구식이지만 훨씬 자주 운행을 하기 때문에 운동하러 가는 게 더 편해지게 되었다. 새옹지마!

수요일에는 룩소르 몇몇 단원들과 함께 샘하우스에 가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평소에 나는 계란을 안 먹으니까 샘이 항상 오믈렛 실력을 보여주고 싶어하면서 아쉬워했는데, 이 날은 다른 사람들이 있어 솜씨를 뽐 낼 수 있었다 :) 나는 평소처럼 샐러드와 렌즈콩 수프, 감자 샐러드 만으로도 만족. 여기에다 아이쉬 발라디 (납작한 이집트 빵) 하나만 있으면 무엇도 부럽지 않다.

기본 샐러드와 감자, 렌즈콩, 빵

다른 사람들을 위한 오믈렛


목요일에 1학년 수업이 있은 뒤로 너무 생각을 많이 했는지, 아니면 수업이 평소보다 많아 몸이 피곤했는지 금요일에는 몸살 기운에다 배탈이 겹쳐서 하루 종일 침대에서 골골거렸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면 이렇게 몸이 반응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뭐 하루 그러고 나서는 다시 회복되어서 토요일 저녁 수업도 다녀올 정도로 기운을 차렸다.

일요일인 오늘은 4월의 첫 날이다. 벌써 1/4분기가 다 지나가버렸다. 생활비가 들어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이렇게 훌쩍 훌쩍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보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련이 남는 것은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후회는 남기지 않고 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만우절이라고 하는 거짓말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