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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9일 월요일 ~ 4월 15일 일요일


업무

1. 1학년 : 월요일과 목요일에 수업이 있었고, 일요일 보충은 콥틱 부활절이라 휴일인 관계로 휴강을 하게 되었다. 다음 주 월요일은 이집트 공휴일이라 수업이 없고, 연이은 휴일 때문인지 학생들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수업에 못 온다고 해서 다음 한 주는 휴강 예정이다. 이번 주에도 학생들이 좀 빠져서 평균 6명 정도만 출석했는데, 수업하는 입장에서는 한 명 한 명 발음 고쳐주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오히려 편한 부분도 있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 봤더니 시험 전 마지막 주에는 이제까지 배운 것을 총 복습했으면 한다고 해서, 무리하게 진도를 나가는 대신 그렇게 하기로 했다.

2. 3학년 : 한동안 3학년 학생들과 화기애애하게 수업을 잘 해왔는데, 이번 주 수업에서는 잔소리를 좀 했다. 이전보다 수업이 많이 늘었기 때문에 숙제를 많이 내 주면 부담이 될 거라는 생각에 일기 쓰는 숙제만 내고 있었는데, 내 의도와는 달리 충분히 시간을 들여 배운 것을 복습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 학생들을 보면 그저 수업하는 시간만 많으면 실력이 늘 거라고 생각하는데, 자기가 머리 속에 집어넣는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그만큼의 효과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좀 답답하다. 잔소리를 하고 나면 아무래도 분위기가 좀 가라앉으니까 수업을 하면서 괜히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을 강조할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생활

이번 주에도 수업 외에는 운동과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거의 6개월 가까이 운동을 하고 있는데, 운동을 하는 만큼 잘 먹어서 그런지 외적으로 큰 변화는 없지만 처음 시작할 때보다 런닝머신 위에서 뛰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 같은 변화는 있다. 게다가 어디 아픈 데 없이 잘 지내는 것도 다 규칙적인 운동 덕분인 것 같으니 돌아가기 전까지 꾸준히 운동해야겠다.

월요일에는 샘하우스에 가서 이번 주 일요일에 있을 콥틱 부활절 선물로 계란 모양 초콜릿을 주고 왔다. 샘 아저씨 딸이 초등학생인데 그 나이 또래에 선물할 만한 것이 마땅히 안 보여서 그냥 디즈니 캐릭터 인형이 들어있는 초콜릿을 골랐다. 이 날도 맛있는 저녁을 먹고 왔는데 지금 보니 사진은 안 찍었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포스팅은 룩소르 생활을 담은 '52주차' 포스팅이다. 그러니까 내가 룩소르에서 산 지 딱 1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일단은 1년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물론 좀 밀린 때는 있었지만) 기록을 남긴 것에 대해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은 그 기록 속에 좀 더 알차고 보람있는 일들을 많이 집어넣을 수 있어야겠지.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의 룩소르 생활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업무

정규 수업과 보충 수업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이집트 학생들의 특성을 잘 알지 못 해 시행착오를 겪은 부분들이 있지만, 추가로 수업을 개설할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일했으며 수업 준비에 소홀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2년마다 선생님이 바뀌다 보니 그 때마다 교사가 학생들을 다시 파악하고 수업 커리큘럼을 구성해야 하는 점이 좀 문제가 되는 듯해서, 그 동안 내가 했던 수업을 다른 사람이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간단히 정리하고 학생들의 생활기록부 같은 것을 만들어 놓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한 관광한국어 교재를 완성하는 것도 달성해야 할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인데, 학기 중에는 수업을 하다 보면 짬이 나지 않아서(또는 그런 핑계로) 아직 크게 진척을 보지는 못했다.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다음 학기 개강 전까지 마무리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준비해줬던 케이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과의 관계



전반적인 생활

작년 이맘 때 룩소르에 온 뒤로, 후루가다에 1주일 정도 휴가를 다녀오고 현지평가회의 때문에 카이로를 다녀온 것 외에는 룩소르를 떠나지 않았다. 그럴 정도로 나에게는 룩소르에서 사는 게 편하고 좋다. 한여름에는 좀 덥지만 집 안에 있으면 그렇게 더운 줄 모르고 생활할 수 있고, 카이로 수준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는 없지만 덕분에 휴가 비용을 모을 수 있다. 몇 되지 않는 단원들과 잘 지내고 있고, 숫자는 많지 않아도 믿을 만한 현지인 친구들이 있고, 할 일이 없다 보니 꼬박꼬박 성당에 나가고 있고, 시설 좋은 곳에서 저렴한 가격에 운동을 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고... 장점을 이야기하자면 이 밖에도 많을 것이다.

새벽, 벌룬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

오후, 룩소르의 흔한 하늘

해 질 무렵의 나일강

밤에 찾은 룩소르 신전



채식

처음 룩소르에 왔을 때 '룩소르에서 지내려면 채식만 하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잘 먹고 살고 있다. 아마도 더운 여름을 나다 보면 입맛을 잃기 쉽고 그래서 지칠 수 있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지난 여름은 그렇게까지 덥지 않았고, 또 나는 덜 먹어서 문제가 생긴 적은 없는 사람이라 별 탈 없었는 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슈퍼마켓이 생기기 전에는 여름이면 시장에서 사는 채소가 너무 시들시들해 장 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여름에도 싱싱한 채소를 구할 수 있으니 참 감사하다. 게다가 이집트의 채소와 과일은 한국에 비하면 정말 저렴해서, 아직도 장을 보고 나서 영수증을 확인할 때면 좀 놀라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채식을 하는 것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가 하면,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한국과 비슷한 정도인 것 같다. 이집트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처음 만났을 때 채식을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양해를 구하면 그 뒤로 고기를 억지로 권한다든지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되는 일은 없었다.

무화과의 철이 다가온다

과일 종합 선물 세트

이 정도면 채식인에게 천국



언어

이집트에 올 때 '아랍어를 열심히 배우겠어!'라고 다짐했지만, 룩소르에 살다 보니 아랍어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랍어가 필요한 부분은 물건을 살 때라든지 현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때 뿐이다. 그러다 보니 아랍어를 공부하겠다는 의욕이 낮아져서 1년 전까지 배운 아랍어를 가지고 그럭저럭 살고 있다. 프랑스에 갔을 때와는 너무 다른 경험이라 좀 어색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언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어서 편하고 좋기도 하다. 일단은 기본적인 이집트 구어체 아랍어를 조금이나마 구사할 수 있게 된 것과 꼬부랑 꼬부랑 아랍어를 읽고 쓸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한국에 가면 좌절된 스페인어의 꿈을 이루고 말테다!)

영어를 사용할 일은 많지만, 아무래도 원어민 아닌 사람들끼리의 대화가 잦다 보니 종종 문법 무시하고 쉬운 단어를 사용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고(학생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단어로 이야기하면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영어 또한 별반 나아지지는 않았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많은데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냥 쉬고 있다. 프랑스어도 마찬가지. 아랍어, 영어, 프랑스어가 막 섞이면서 쉬운 프랑스어도 버벅거리게 되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지금까지의 사진을 쭉 훑어보고 있노라니 참 재미있었다. 별 거 아닌 일상이지만 그 속에 소소한 기쁨이 있었고, 매일 비슷하게 보이는 하루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다른 일들을 겪으며 지내온 것 같다. 엄청 신나고 즐거운 날이 늘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가끔 찾아오는 지치고 우울한 날도 결국은 지나가버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곳을 떠나는 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여기 있는 이유에 충실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