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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6일 월요일 ~ 4월 22일 일요일


업무

이번 주 월요일은 '봄의 날'이라는 이집트 공휴일이라 수업이 없었고, 연이은 휴일로 인해 고향에 간 학생들이 꽤 있어서 휴강을 하게 된 관계로 이번 주에는 3학년 수업만 한 번 있었다. 지난 주에 잔소리를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 이번 주에는 학생들과 웃으면서 수업을 하자고 마음을 먹고 수업에 들어갔고, 다행히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대통령 선거 때문에 종강이 작년보다 한 달 정도 앞당겨져서 다음 주면 마지막 수업을 하게 된다. 이번 학기에는 좀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싶어서 보충 수업까지 개설해 학생들을 더 자주 만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친 분량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도 학기 시작할 때 정말 기초적인 단어도 잘 사용하지 않던 학생들이, 이제는 쉬운 한국어로 몇 가지 의사표현은 할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조금이나마 자신감이 붙은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작년처럼 방학 보충수업을 개설할 생각이 있긴 한데, 아직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 한 상황이라 이 부분은 조금 더 기다려보아야 할 것 같다.


생활

연이은 휴일을 이용해 다른 동네로 놀러가는 단원들도 있었는데, 그냥 룩소르에 있는 것이 제일 편한 나는 따로 어딜 가지는 않았다. 사실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방학도 있고, 수업 스케줄에 맞춰 자유시간을 재량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굳이 따로 휴가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휴일과는 상관 없이 평소처럼 운동, 독서, 요리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봄이 되면 이집트에는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데, 룩소르의 경우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몇 주 동안 계속되는 것은 아니고 가끔 황사처럼 뿌연 모래가 하늘을 뒤덮는 날이 있다. 올해 들어 두 번째로 그런 모래바람이 룩소르를 찾아왔는데 이번에는 첫 번째 것보다 강도가 더 심했다. 학교 갈 때만 해도 맑고 푸르던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길 끝의 건물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공기는 탁해져 있었다. 며칠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다행히 다음 날이 되니 다시 평소의 맑은 하늘이 되어 있었다.

뿌연 모래바람으로 뒤덮인 하늘

모래바람 때문에 칙칙하고 을씨년스럽다

 
지난 번에 OJT를 하러 왔던 기계 분야 신규 단원이 훈련을 마치고 정식으로 룩소르에 파견되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여기 온 이후로 딱 1년 만에 새로운 단원이 온 것인데, 같은 건물에 살게 되어서 자주 마주치게 될 것 같다. 특별히 해 줄 것은 없고 해서 토요일에 집으로 초대해 함께 점심을 먹었다. 평소 잘 하지 않던 한식으로 상을 차리느라 곱게 모셔놓았던 말린 버섯, 곤드레밥용 건나물,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는 들깨가루 등이 총출동했다. 새송이버섯 말린 것은 물에 불렸다가 표고버섯과 함께 양념에 재어두었다 볶았는데 쫄깃하니 맛있었고, 오랜만에 만든 곤드레밥도 나물 특유의 향이 구수하니 좋았다.

양상추와 오이, 김치

들깨가루가 들어간 된장국

나물 듬뿍 넣은 곤드레밥

새송이+표고 버섯 볶음

이렇게 차린 점심 밥상


1년을 여기에서 지내다 보니 심심한 생활에 적응이 되어 잘 모르고 있었는데, 새로 온 단원에게는 룩소르 생활이 정말 무료하게 느껴지나 보다. 하긴 딱히 문화생활을 할 만한 곳도 없고, 특히 여름에는 더워서 해가 지기 전까지는 집에 있는 편이 나으니까 더욱 갈 만한 데가 없다. 게다가 카이로에서 지내다 여기에 온 지 며칠밖에 안 되었으니 룩소르의 더위 때문에 힘들기도 할 것이고. 하지만 아마 1년 쯤 살다 보면 이 정도 더위에는 에어컨 없이 견딜 수 있고, 소소한 일상을 받아들이고 잘 살아가는 단원이 되어있지 않을까. 이런 면에서는 좀 도와주고 싶어도 그러기 어려운 게 난 워낙 혼자 노는 데 익숙한 인간이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