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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4일 월요일 ~ 5월 20일 일요일


업무

이번 주 수요일과 목요일에 기말고사가 있었다. 수요일에는 3학년과 1학년, 목요일에는 4학년과 2학년 시험이 각각 10시와 1시에 치러졌다. 지난 주에 봉해서 학교 측에 맡겨둔 시험지를 매 시험 전에 찾아오는데 그 때 시험지마다 학교 측의 도장을 찍었고, 시험이 끝나면 그 시험지를 다시 본부에 가져가 학생들의 인적사항을 적은 종이를 시험지에서 분리하고 번호를 부여받은 후 우리가 채점을 해서 다시 본부에 갖다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중간에 1학년 시험지가 어디로 갔는지 몇 부 사라져서 찾으러 다니고, 각 학년 본부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이리저리 헤매다니는 일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작년에는 정말 어떤 식으로 기말고사가 진행되는지도 모르고 일본어과의 보조교사가 도와주는 대로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했는데, 이번에는 대강 어떤 절차인지 파악을 했으니 잘 정리해뒀다가 후임 단원에게 인수인계해야겠다.

다른 학년들은 몇 명 되지 않아서 시험 감독을 하는 데 별 힘이 들지 않았으나 1학년은 교실을 꽉 채운 10명이 혹시라도 곁눈질을 하지는 않는지 감독을 하느라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1학년은 내가 모든 수업을 맡고 있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J언니가 1학년 학생들을 만난 건 이번이 거의 처음이었는데, 언니도 1학년 학생들이 상당히 개성이 강한 것 같다고, 그 동안 수업하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주어서 큰 위안이 되었다. 정말로, 2, 3, 4학년이 좀 게으르고 의욕이 없지만 순한 양 같은 학생들이라면 1학년은 각자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의욕이 충만한 학생들이라(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실력과 의욕이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점) 내가 한 마디 해도 각자 알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아서 가끔은 학생들을 만날 때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이게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이 이렇게 마음을 위로할 수가 없었다 :P

시험지 겉장, 가운데 종이가 인적사항

3학년 기말고사 문제

예문에서 출제한 거라 쉬운 편

2주 비운 사이 모래가 쌓였다

조용히 시험을 보는 3학년 학생들

1학년은 10명이라 교실이 꽉 찬다

 
내가 시험을 출제한 두 학년 모두 시험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볼 때 최소한 한 학기 동안 배운 기본적인 것들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시험을 그렇게 어렵게 내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에 비해서는 살짝 점수가 낮아서 학생들이 실수를 한 것인지 아니면 틀린 문제들이 정말로 헷갈리고 어려운 것인지 좀 고민을 하게 된다. 방학 때 보충수업을 하게 되면 그런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 같다.


생활

이번 주에는 옥상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전에는 막연히 옥상이 더울 것이라는 생각에 잘 올라가지 않았는데, 지난 주에 포트럭 파티를 하면서 있어 보니 해가 지고 난 뒤에는 선선하게 바람이 불어서 상쾌하고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4층에 사는 일본인 아이샤가 키우는 개 람시사가 늘 옥상에 있기 때문에 덩달아 아이샤도 옥상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래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간단한 저녁을 챙겨 올라가 옥상에서 먹거나, 가끔은 너무 더워지기 전인 7시쯤 아침을 거기서 먹곤 했다.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면 주로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앞에서 음식을 먹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내가 뭘 먹었는지도 모르게 될 때가 많다. 그에 비해 열린 공간에서 밥을 먹으니까 한결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음식을 먹게 되어서 좋은 것 같다. 또, 평소에는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을 하다가 공동공간인 옥상에서 만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마치 프랑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때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이 정도의 거리가 딱 좋다.

아이샤는 매일 새벽 람시사를 데리고 산책을 가는데, 어느 날은 근처 들판에서 바질, 무화과, 파슬리 같은 식물들을 채집해 와서 옥상에 있는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나는 식물을 길렀다 하면 말려죽이는(심지어 선인장도!) 몹쓸 인간이지만 그래도 길러 먹는 푸릇푸릇한 것에는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한 번 따라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고, 마침 리에도 시험이 끝나 여유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토요일에는 셋이서 새벽 산책을 하게 되었다. 작년 여름에도 종종 5시 반쯤 나일 강변을 따라 걷곤 했는데 해가 막 뜰 무렵이라 아주 선선했던 기억이 난다. 이 날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 아주 좋았고, 사람들이 아직 활동하지 않는 시간이라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아 참 평화로웠다.

산책에서 아이샤가 가져온 것들

바질(을 구할 수 있었다니!)

아직 익지 않은 무화과

아이샤, 리에와 함께

외출에 신난 람시사

당나귀와 멀리 떠 있는 벌룬

양떼를 지켜보는 람시사

우리 옆을 지나쳐간 양떼

엄청난 흙먼지를 일으켰다


학교에서도 일상에서도 바쁘게 지내며 잘 생활한 일주일이었지만, 이번 주에는 유달리 내가 만난 이집트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서 머리가 좀 복잡했다. 나는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 외에 이집트 현지인들을 만날 일이 많이 없는데, 그 적은 숫자의 사람들 중에서도(적어서 더 그런가?) 처음부터 끝까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흉을 보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만난 이집트 사람들 중에 대다수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쉽게 하고, 진실이 아닌 말을 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곤 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을 다 도와줄 것처럼 말했지만 얼마 지나 아무런 연락도 없이 증발해 버린 사람도 있다. 그렇다 보니 이 곳 사람들을 진심으로 믿고 친구가 되는 것이 참 힘들다고 어렵다,는 것이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많은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봉사단원으로 이 곳에 온 것이니 만큼 일단 여기 사람들을 믿고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데, 1년을 넘게 생활한 지금 내리는 결론이 '쉽게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라면 좀 슬픈 일일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미디어에서 종종 보여주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 같은 개발도상국(을 비롯해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우리가 어떤 환상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난하다고 해서 다 착한 것은 아니고, 그들 고유의 문화나 관습이 다른 세계와의 만남이나 앞으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인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들이 가난하고 착해서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어떤 나라는 엄청 잘 살고 어떤 나라는 뭘 해도 지지리 못 사는 상황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뭐라도 해 보려고 여기 온 것이니까, 그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것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서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니다. 어쨌거나 여기에도 분명 좋은 사람들은 있고, 믿기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해서 꼭 나쁜 사람들은 아니고... 이 부분은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생각을 잘 정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