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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5일 월요일 ~ 7월 1일 일요일


업무

방학이라 수업은 없고, 교재를 만들고 다음 학기 수업 준비를 하면서 방학을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보충수업을 계획했었는데, 이번 해에는 라마단이 좀 일찍 시작되는 바람에(7월 20일 경) 아무래도 라마단 이후에 수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생활

이번 한 주는 줄줄이 예정되어 있는 이별식을 치르느라 몸도 마음도 꽤 바빴다.

먼저, 7월 초에 활동이 종료되는 단원이 두 명이어서, 수요일에는 룩소르 한식당 김가네에서 전체 단원모임을 가졌다. 모임에 가기 전에 택배회사 사무소에 들러 코이카 사무소에서 빌린 책들을 반납했다. 이전에도 송별회는 있었지만 나와는 함께 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단원이라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가는 H오빠와 J언니는 1년 넘게 이곳에서 얼굴을 봐 온 사람들이어서 이전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송별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이 사람들이 떠난다는 게 실감이 안 나서 그냥 오랜만에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고 온 날 정도로만 생각되지만 말이다.  

목요일에는 같은 건물에 사는 일본인 아이샤가 일본에 돌아가기 전에 멍멍이 람시사를 서안에 있는 우리 바웹(건물 관리인) 집에 맡겨 놓으러 간다고 해서 거기에 따라갔다. 전에 일본에 갔을 때는 람시사를 그냥 우리 건물 옥상에 두고 바웹이 하루에 두 번 들러 밥을 주고 산책도 시켰는데, 요즘은 날씨가 너무 덥고 옥상에 혼자 있으면 람시사가 외로울 것 같아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단다.

오늘의 주인공 람시사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

집 주변을 관찰하고 있다


함께 택시를 타고 20분 정도 가니 바웹인 사베르가 사는 동네가 나왔는데,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라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먼저 사베르의 부모님과 동생들이 사는 집에 들러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을 구경했다. 일반적으로 이집트의 시골 마을에서 볼 수 있듯 흙바닥으로 된 집이었는데, 집 한 쪽에서는 당나귀, 닭, 오리 같은 가축들을 키우고 옥상에는 양파, 마늘, 옥수수 같은 식품을 저장해 둔 모습이 흥미로웠다. 

사베르 부모님 집

파란색 창문이 인상깊었다

닭과 오리가 꽤 많았다

당나귀도 있다

옥상에서 내려다 본 헛간

옥수수 알갱이들을 뿌려줬다

옥상에 있는 화덕

버려진 슬리퍼들

수확해 둔 옥수수와 밀

한 쪽에는 빨래를 널어뒀고

양파를 보관하는가 하면

(식용) 비둘기도 키운다

작은 양파들과

한 구석에 있는 마늘

마늘 하나를 선물받았다

응접실에 걸려있는 사진들

집 전체에서 응접실이 가장 좋아보였다


집을 다 구경한 뒤에, 이번에는 본가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사베르의 신혼집으로 갔다. 이집트에서는 결혼을 해도 가족과 같은 건물에 살거나 가까운 곳에 사는 것이 보통이다. 친척끼리 결혼을 하는 경우에는 준비가 좀 덜 된 상태에서 가정을 꾸리기도 하지만, 사베르처럼 집안 식구가 아닌 사람을 신부로 맞이하는 경우에는 집, 혼수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고 한다.

부모님 집이 흙으로 된 바닥에 다소 허름하게 느껴지는 시골집이었던 데 비해 사베르네 집은 새로 지은 깨끗한 건물로, 바닥에는 타일이 깔려 있었고 가구나 가전제품들도 상태가 아주 좋았다. 재미있는 것은, 역시 이 집에서도 응접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거의 스무 명이 들어갈 만한 회의실 같은 느낌인데다 아주 커다란 평면 텔레비전까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점이었다. 분명 매일 손님들이 오는 것은 아닐텐데도 응접실에 가장 비중을 두고 좋은 물건을 갖다 놓은 것을 보면,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목에 신경쓰는 이곳 사람들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 집을 구경하기 전까지는 '바웹(건물관리인) =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현관문 위에 있는 글귀

2층 올라가는 계단에서 본 거실

모두 함께 집 구경하는 중

가장 잘 꾸며진 응접실

거실 텔레비전보다 훨씬 좋다

집 바로 옆에 붙은 정원

무화과 나무도 있다

옥상에서 내려다 본 정원

집 앞에 있는 밭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옆에는 옥수수밭이 있었다


집을 구경하고 나서 조용한 정원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결혼한 두 여동생도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 종종 집에 들른다고 하는데, 이 날도 꼬맹이들을 데리고 와서 가족들끼리 함께 수다를 떠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가져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람시사와 아이샤의 사진을 찍는 김에 사베르 가족들의 사진도 찍어줬더니 다들 좋아했다.

사베르 부부와 여동생, 조카들

예쁜 꼬마 아가씨는 조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줬다

둘째 여동생의 아들인 아흐마드

람시사도 새 둥지에서 한 컷

람시사와 아이샤


그냥 놀러간 것이 아니라 람시사를 맡기고 오는 것이어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는 않았다. 그래도 람시사가 한동안 지낼 곳이 오히려 우리 건물보다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나로서는 이집트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날이기도 했고... 토요일 아침에는 공항으로 떠나는 아이샤를 건물 앞에서 배웅했다. 포옹을 하고서는,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눈물을 보이는 아이샤 때문에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나왔다. 함께 보낸 시간이 아주 길지는 않지만 저녁마다 옥상에서 나누던 대화들과 작은 것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마음 때문에 이제는 소중한 '친구'가 된 사람. 다시 볼 때까지 건강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