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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6일 월요일 ~ 8월 12일 일요일


국외 휴가 - 첫째 주


프랑스, 익숙한 곳으로의 여행

처음 이집트에 올 때부터 프랑스로 국외 휴가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꼭 국외 휴가를 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가게 된다면 근처에 있는 터키 같은 곳이 어떨까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갑자기 프랑스, 그 중에서도 파리로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어쩌면 그냥 여기를 좀 떠나고 싶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익숙하고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좀 쉬었으면 하는 마음. 동양 여성으로서의 나를 늘 따라다니는 눈길들과 어디를 가든 끊이지 않는 호객 행위를 벗어나서, 내가 말을 걸기 전에는 아무도 나를 아는 척하지 않는 공간, 그래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바람을 안고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파리의 흔한 거리 풍경

미테랑 도서관과 그 앞에 있는 다리


그냥 집 근처에 있는 성당에 들러 주일 미사

파리의 유기농 시장 구경 :-) 알록달록 너무 예쁜 채소들


이제는 오래된 인연

프랑스로 가는 데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요인은 지금 파리에 살고 있는 친구였다. 2007년, 앙제로 어학연수를 가는 길에 기차에서 옆 자리에 앉았던 J는 지금 파리에서 실내건축을 공부하고 있다. 앙제에서 내가 알고 지낸 한국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 중에서 J는 동갑인데다 성격이 좋아서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 뒤로 자주 만난 것은 아니지만 가끔 연락을 하고 지냈고, 이번 여행에서는 J의 집에서 머무른 덕분에 여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숙박비를 아낄 수 있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는 친구이지만 이번에 만나서 지내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전히 참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내가 뿌듯했다.

J네 집에서 먹은 것들 - 두부전골, 김밥, 떡볶이, 또 두부


한 달 동안 가게 문 닫고 놀러가는 나라

8월에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휴가를 떠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로 한 달씩 가게 문을 닫고 놀러갈 줄은 몰랐다. 여름휴가는 고작 며칠이 전부인 한국 사람이라 그런가, 어떻게 그렇게들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는지 참 신기할 뿐이었다. 많은 가게들이 문에 '8월 29일에 돌아옵니다. 좋은 휴가 보내세요!' 같은 종이를 붙여놓은 것을 보면서, 이런 여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선진국으로의 지위를 유지하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부럽기도 했다. 사실 '여유'라면 이집트 사람들도 남 부럽지 않을텐데, 이집트 사람들이 빈둥거리고 있으면 '게으름', 프랑스 사람들이 빈둥거리고 있으면 '여유'로 보이는 것은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출발선이 달랐기 때문에, 이미 프랑스는 선진국이기 때문에 그런 여유를 부리면서도 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이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에 닥친 경제 위기 때문에 프랑스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채식 3주년 기념! 프랑스에서 채식하기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는 채식을 하기 전이었고, 두 번째 여행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먹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이 사실상 프랑스의 채식 맛집을 둘러볼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였다. 여행을 오기 전에 열심히 조사를 했는데, 안타깝게도 8월은 파리지엥들의 바캉스 기간이라 문을 닫은 음식점들도 꽤 있었다. 여행 내내 되도록이면 유제품도 먹지 않는 완전채식으로 식사를 했고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못 했지만 '아몬드 크로와상'과 '바게트 비에누아즈'의 유혹은 너무 강해서 결국 넘어가 버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치즈가 식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서 피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비건들을 위한 치즈 대용품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고 두부를 응용해 만든 소시지나 패티 같은 것도 많이 있어서 어떤 때는 선택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에서 채식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다만 이집트의 물가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모든 채소와 과일이 너무 비싸게 느껴져서 장 볼 때마다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외식도 마찬가지, 한 끼 식사가 15유로 정도면 만만한 가격은 절대 아니다. 그래도 음식 하나 하나가 다 만족스러워서 먹을 때는 가격을 잠시 잊고 맛있게 먹었다.

한국에도 들어와 있는 팔라펠 샌드위치 가게 '마오즈' - 팔라펠 샌드위치

노트르담 성당 근처에 있는 채식 전문점 'Le Grenier de Notre Dame' - 밀고기 꼬치를 올린 쿠스쿠스

통곡물과 콩 등을 이용한 유기농 음식점 'Soya' - 비건 치즈, 후무스, 구운 야채 등

바스티유 근처의 비건 음식점 'Gentle Gourmet Cafe' - 프랑스식 버거와 감자칩

레알 근처의 채식 음식점 'Saveurs Veget'Halles' - 밀고기 커틀렛과 버섯 소스


아침마다 갓 구운 빵을~ 빵의 천국

프랑스 빵에는 대체 무슨 비밀이 있어서 그냥 막 구운 것 같은 빵도 그렇게 맛있는 건지 모르겠다. 특히 나는 통곡물로 만든 거친 빵을 좋아하는데, 그런 빵도 종류가 참 다양해서 고르기가 힘들었다. 매일 아침 빵집에 들러서 그 날 먹을 빵을 사서 룰루랄라 걸어오는 길이 그저 행복했던 이번 여행 :-)

유기농 시장에서 만난 빵 판매대

건과일과 견과류가 가득한 빵

매일 아침 먹을 빵을 사러 갔던 빵집과 비건 블루베리 요거트와 함께 한 아침 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