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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일 월요일 ~ 10월 7일 일요일


업무

10월도 되었겠다, 이제는 정말 학기가 시작된 것이라 생각하고 지난 학기에 가르치던 본 교재로 돌아갔는데 학생들의 출석률은 여전히 저조한 상황이다. 12월 중순이면 학기가 끝나는 데다 10월 말에는 이슬람 명절도 있어서 한 주 정도 수업이 없는 탓에 가뜩이나 수업할 시간이 모자란데, 어째 마음이 바쁜 것은 나 혼자인 것 같다. 사실 지금과 같이 느슨한 이집트의 교육 시스템 자체가 바뀌지 않는 이상 지금 내가 느끼는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거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뭔가 해서 조금이라도 바꿔 보고 싶은 게 여전히 욕심을 버리지 못 한 내 마음인가 보다. 수업에서는 그냥 내용을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데 필요한 좋은 습관(예를 들어 각 단어를 10번씩 쓰도록 시킨다거나 복습을 하도록 적당한 숙제를 내 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도 만들어줘야 해서 가끔은 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목요일 2학년 수업 후에는 학생 한 명이 와서 따로 자기에게 발음이나 읽기 같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처음에는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에 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더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주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니까 좀 더 고민을 해 보아야겠다.


생활

이번 주에 우연히 만난 한국 여행자에게 아스완의 이상한 날씨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믿기 어렵지만 아스완에 비가 와서 길이 물바다가 되는 등 난리였다고. 룩소르에도 아주 잠깐, 그러니까 1분 정도 하늘에서 물이 떨어졌다고는 하는데 나는 보지 못 했다. 그러고 보니 하늘에도 평소와는 달리 구름이 좀 많았던 것 같긴 하다.

맑은 하늘이긴 하지만 구름이 제법 많다

평소에는 아주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샘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지 벌써 3주 정도 되었다. 조금씩이지만 매일 가르치니까 전보다는 훨씬 진도가 빠르다. 샘도 예전보다 훨씬 열심히 수업을 듣고 나름 복습도 잘 하고 있는데, 나처럼 엄하고 욕심 많은 선생님을 만나 고생을 하고 있다. 사실 다른 것보다 공부 습관 때문에 잔소리를 하게 될 때가 많다. 전에 가르쳐 준 것을 까먹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데, 그걸 제대로 정리해 두지 않아서 배웠는지 안 배웠는지도 모르는 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그 날 배운 내용을 공책에다 정리해 두면 나중에 생각이 안 날 때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할 수 있는데, 그런 기본적인 노력도 안 하고 그냥 모른다고 말만 하는 게 얄미운 건 나 뿐인가? 아무튼, 자꾸 자기는 나이가 있으니 이해해달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공책에 손으로 쓰고 눈으로 읽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또 잔소리를 했다. 나도 이 다음에 더 나이가 들어서 샘의 마음을 이해할 때가 되면 '아이고 내가 참 못되먹은 인간이었구나'하고 반성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한 건 스스로의 선택이니까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거고,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그 핸디캡을 극복할 만큼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게 힘들다면 굳이 한국어를 배우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낫다'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뭐 이렇게 말은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려고 나름 노력 중...

수업 때문에 자주 샘하우스에 가다 보니 이것저것 얻어먹을 일도 많다. 하루는 채식을 하는 나를 위해 샘하우스 직원 중 한 명이 직접 집에서 이집트 전통 음식 '따긴'을 만들어왔다. 원래 따긴은 한국으로 치면 뚝배기 같은 그릇을 말하는데, 거기에 재료를 넣어 오븐에서 익힌 스튜 같은 음식이다. 그 직원 집에서는 현대식 오븐이 아닌 돌로 된 전통 화덕에다 정기적으로 가족들이 먹을 빵을 굽기 때문에 그 날을 맞춰 따긴을 만들어 막 구운 빵과 함께 가져다 줬다. 보통 고기나 생선을 함께 넣어 요리를 하다보니 채소로만 만든 따긴은 이번이 처음이라 화덕에서 꺼낼 때까지도 다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먹어보니 아주 맛있었다 :-)

콩 샐러드와 토마토+오이 샐러드

빵, 렌즈콩 수프, 타히니 소스

이집트 남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쉬 샴씨'(태양 빵?)

감자, 애호박, 가지, 양파 등 채소로만 만든 따긴

 
늘 하는 말이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가고 있다. 벌써 10월이니까 이제 내가 여기에서 보낼 시간도 3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나보다 파견이 빨랐던 다른 나라 동기들은 이제 한국에 돌아갈 때가 다 되어간다.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눈에 보이는 뭔가 특별한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에 너무 실망하지는 말고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잘 지내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