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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 10월 28일 일요일


업무

1. 2학년 : 월요일 수업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수업 중간에 학생 두 명이 쓰던 펜에 문제가 생겨서 밖에 펜을 구하러 갔다 온 것 정도? 한국에서는 필통에 여러 자루의 필기구를 가지고 다니는 게 보통 학생의 자세인 데 반해, 여기에서는 필통은 커녕 펜도 제대로 안 가지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필기구가 없으면 내가 혼내는 걸 아니까 다들 펜은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데 딱 하나씩만 가지고 다니다 보니 어쩌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친구한테 빌릴 수도 없는 것이다. 사실 학생들이 연필이나 샤프가 아닌 펜으로 쓰다가 실수를 해서(실수가 적으면 몰라) 찍찍 긋고 다시 쓰는 것도 내 마음에는 영 안 드는 부분이지만 이것까지 간섭하자니 너무 기력이 달려서 포기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초등학교에서부터 펜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러니 좋은 습관이 들 수가 없는 것 같다. 수요일 수업에서는 또 한 번의 좌절을 겪었다. 한 과를 끝내고 복습을 한 다음 연습문제로 총정리를 하는데, 학생들이 답을 써 놓은 것을 보니 기가 막히지도 않았다. 그 단원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룬 '-에'와 '언제'가 답인 문제에 적혀있는 '-이에요', '며칠이에요' 같은 것들을 보니 대체 내가 지난 수업에서 무엇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멀쩡히 수업을 잘 들을 학생들이 그러고 있는 것을 보니 그저 가슴이 답답할 뿐이었다. 게다가 이전 수업을 몇 번이나 빠졌던 학생이 와서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에 또 한 번 마음이 무거웠다. 귀국을 두 달 앞 둔 지금도 이런 상황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2. 4학년 : 이번 주 목요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명절이라 수업이 없어 월요일에만 수업을 했다. 지난 시간에 가르쳤던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어서 보충 프린트로 복습을 하면서 추가적으로 주의해야 할 부분만 강조하는 식으로 수월하게 수업이 진행되었다. 영어로 뜻을 설명해도 모를 만한 단어가 있어 직접 아랍어-한국어 사전에서 찾아 가르쳐줬더니 학생들이 좀 신기해하면서도(보통 교실에서는 아랍어를 안 쓰니까) 쉽게 이해했다. 지난 시간에 느꼈듯, 내 상태에 따라 수업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는 것을 실감하면서 앞으로도 좀 더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활

수업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이번 주에는 두어 번 카페에 갔었다. 룩소르에는 카이로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스타벅스, 커피빈, 코스타 같은)은 없고,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저렴한 로컬 카페와 외국인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카페로 나뉜다. 호텔 커피숍도 후자에 해당하는데, 비싸도 25기니 정도면 차/커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조용하게 쉬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추천할 만한 곳이다. 특히 대다수 호텔들은 나일 강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경치는 보너스 :) 이번 주에 갔던 곳은 나일팰러스(Steigenberger Nile Palace)와 윈터팰러스(Old Winter Palace)였는데, 나일팰러스가 가격 면에서도(각각 15/25) 분위기와 경치 면에서도 더 좋았다.

호텔 수영장과 너머에 있는 나일 강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휴식

작은 포트에 담겨 나오는 커피

차를 주문하면 마카롱(이라고 하기엔 좀..)이 나온다

웅장하긴 한데 좀 부담스러운 분위기


이번 주에도 샘하우스에 가서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요즘 들어 슬슬 지쳐가고 있는 중이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샘이 학생들과 너무 같은 패턴으로 나를 힘들게 하고 있어서, 이걸 계속하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 고민을 하고 있다. 배울 이유가 있고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좀 더 쉬운 길을 제시하고 같이 걸어주는 것이 내 역할이지, 게으른/의지가 없는 사람을 질질질 끌고 가거나 걸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최소한 내가 여가시간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이제 1년 반이 넘게 봐 온 샘은 채식을 하는 나를 늘 배려해주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위로도 해 주는 참 좋은 친구인데 학생으로는 다소 문제가 있다. 계속 한국어 수업을 하다 보면 좋은 사이까지 나빠질 것 같아서 걱정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뚝딱 만들어준 채소 요리

늘 먹는 샐러드도 함께


이번 주 금요일부터 아이드 알 아드하(Eid Al Adha), 그러니까 '희생제'라는 이슬람 명절이 시작되었다. 양을 잡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이 희생제는 아브라함이 신의 명령에 따라 아들을 희생하러 갔던 것을 기념하는 명절이고, 메카로의 순례인 '하지'가 끝날 때이기도 하다. 솔직히 이 명절은 나에게는 상당히 무서운 기간인데, 얼마 전부터 길거리에 돌아다니던 양들을 잡는 것이 바로 이 때이기 때문이다. 직접 양을 잡는 것을 볼 일은 다행히도 없었지만, 공기 중에서 느껴지는 피냄새와 시뻘개진 흙바닥만으로도 좀 오싹하달까. 그렇지만 겉보기에는 끔찍할지언정 이렇게 양을 잡는 것에는 상당히 좋은 의미가 숨어 있다. 먼저 양을 잡는 것은 (흔히들 추측하듯) 동물의 희생으로 죄를 씻는다는 뜻이 아니라, 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어떠한 중요한 것도 희생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렇게 잡은 양의 1/3은 가족과 친지들이 먹고, 다른 1/3은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 1/3은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나눔의 관습도 있다. (정말로 이렇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예전에는 양을 잡는 것이 큰 희생이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큰 희생이 아닌 시대가 되어버렸으니, 이제는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을 희생하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Thanksgiving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수의 칠면조를 죽이는 것이 본래의 취지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듯, 이 '희생제'도 양들의 희생은 좀 줄이고 본인의 희생을 늘이는 쪽으로 갔으면 하는 것은 고기 안 먹는 사람이라 하게 되는 생각인가?